생각해보면 난 참 병원을 자주 들락날락하는 것 같다. 평소 사람 많은 곳이면 질색 수준을 넘어서는 나에게 병원은 조금 예외적인 공간이라 할 수 있다. 나는 과거에 다치는 일이 많았고, 지금도 다치는 경우가 많아 병원에 자주 가는데, 꼭 다칠 때만 가는 것은 아니지만 어쨌든 병원을 많이 간다. 병원에 도착하면 난 매번 바글바글 거리는 인파에 사색이 되어 도망치고 싶지만, 치료를 받기 위해 꾹 참길 여러 번. 나는 나만의 도피 방법을 찾았다.
접수를 할 땐 어쩔 수 없이 사람들 사이에 있어야 한다. 그럴 땐 계속 다른 생각을 하며, 인기척을 지우기 위해 노력한다. 유체이탈이랑 비슷하다고 생각하면 좋을 것 같다. 책을 읽거나 음악에 빠지는 방법도 괜찮다.
접수가 끝난 후엔 최대한 사람이 적은 쪽을 찾아 떠난다. 진료과를 먼저 찾아가야 하긴 하지만, 내겐 안식처 마련이 더 시급하니까. 안식처가 될 만한 곳을 찾은 후엔 다시 고통 속에서 진료과를 찾아간다. 그리고 진료과에 마냥 기다리지 않고, 진료 가능한 시간대를 간호사에게 물어본다.
여기서 천국행 열차냐 지옥행 열차냐가 갈리게 되는데, 천국행 열차는 내가 원하는 대로 진료시간을 전해받고, 안식처로 돌아와 진료시간까지 쉬는 것이다. 사람이 적은 곳에서 몇몇 사람이 지나가는 정도는 인적 드문 카페에 앉아 나른한 오후를 보내는 것만큼 기분이 좋다. 하지만 모두가 천국으로 갈 수 없는 것처럼 나도 매번 천국행 열차를 타진 않는다.
천국행 열차를 타는 것과 비슷한 횟수로 지옥행 열차에 오르게 되는데, 지옥행 열차의 티켓은 “여기서 조그만 기다려주세요”라는 말로 시작된다. 시간이 없거나 성격이 급한 사람에겐 천국행 티켓과 같은 말이겠지만, 나에겐 지옥행 확정인 셈이다. 지옥행 티켓을 받아 들게 되면 최대한 주위에 신경을 안 쓰려 노력하기 시작한다. 아까 말한 것 같이 유체이탈과 비슷한 상태로 나를 최대한 만들려 노력하는 것이다. 어쨌든 지옥행은 시간상으론 생각보다 짧지만, 체감상으론 상당히 긴 시간이 걸린다. 진료가 끝나면 다시 지옥 같은 인파 속을 헤매다가 약을 수령받고, 나에게 보상을 주기 위해 안식처로 향한다. 물론 안식처를 향할 땐 양손 가득 먹을 것이 있어야 한다. 그리고 먹을 것과 함께 글을 쓰기 시작하는데 사실 글을 쓴다기보단 토하는 것에 가까워서, 제멋대로인 글이 나올 때가 많다.
글을 쓰며 다시 생각해보니 병원이 예외적인 공간이 아니었던 것 같다. 그냥 힘든 곳이지만, 다른 곳보다 나름 재미가 있고, 버틸 수 있는 곳? 그 정도가 아닌가 싶다. 앞으로도 병원을 자주 가고 매번 같은 일이 반복하겠지만, 나는 변하지 않을 것 같다. 여전히 사람을 두려워하고 배가 볼록 해질 때가 먹을 것을 먹으면서 글을 토해내겠지. 그게 나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