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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eslobster Jun 25. 2024

네가 날카로운 말로 상처 준다면 난 홍수로 날려버릴거야

내가 승자(winner)였을 때 나는 온 세상에 관대했다. 그러나 패배자가 된 이후로 세상 모든 일에 화를 낸다. 이처럼 승자와 패자를 구분하는 명확한 기준을 체득한 나는 단지 관대하고 화내지 않는 것만으로도 영원한 승자가 될 수 있음을 깨닫는다. 그게 말처럼 쉽지 않다는 것이 문제라면 문제지만 말이다.  

(...)

요사이 친구에게 부탁할 일이 생기면 "내가 최근에 양자역학에 관심이 많아졌어. 양자역학에 관한 다양한 책도 읽고, 이런저런 영상도 찾아보면서 시간이 날 때마다 양자역학에 대해 생각해. 내가 요즘 많이 힘들다는 뜻이지" 이렇게 말문을 연다. 친구들의 대체적인 반응은 "너가 정말 힘들구나!" 일색이다.

 (...)

이처럼 양자역학에 깊이 빠져 있는 동안 깨달은 사실이 하나 있다. 과학자들이 백 년이 넘는 시간 동안 늘 똑같은 방식으로 양자역학을 설명하고 있더라. 원자의 세계는 거시세계에서의 경험과 직관으로는 절대 이해할 수 없는 것이라고 강조해서 듣는 이로 하여금 이해하면 안 된다는 일종의 의무감 같은 것을 느끼게 한다. 21세기 인류인 우리들에게 말이다. 물론 양자역학에서 주요 설명대상이 되는 양자도약(에너지의 기본단위가 연속적이지 않다), 불확정성의 원리(전자의 위치와 속도는 동시에 측정할 수 없다), 양자중첩(관측되기 전 전자는 동시에 여러 곳에 존재한다), 양자 얽힘(양자적으로 상관관계가 있는 두 물질은 하나의 특성이 관측되면 거리에 상관없이 다른 하나의 특성도 확정된다.)과 같은 것들은 직관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현상은 아니다.

한 물리학자는 우리가 양자역학을 이해하지 못하는 이유를 비유적으로 "노랑과 파랑 단 두 가지 색깔 밖에 없는 세상에서 누군가 보라색 옷을 입고 있다면 그곳 사람들은 보라색이 노랑인지 아니면 파랑인지만 알려고 할 것이다"라고 설명한다. 이처럼 누구든 자신의 경험과 인지의 범위 안에 있는 것들만 이해할 수 있다. 관측되기 전에는 어떤 생명체가 살아있으면서도 동시에 죽어있는 상태가 중첩되어 있다는 사고실험(슈레딩거의 고양이)의 의미를 듣고 "뭐? 살아있으면서 동시에 죽었다고? 당연하지."라고 반응한다면 그는 분명 양자역학을 잘못 이해한 것이 틀림이 없다.

(...)

과학자들이 간과한 사실이 있다. 21세기 인류는 적응이 빠르다. 이상한 일들이 참 많은 시대이기 때문이다. 이상한 일들이 왜 많아졌을까 일없이 한번 생각해 본 적이 있는데 역사상 유례가 없는 인구증가가 첫 번째 이유쯤 될 것 같다. 21세기의 인류수가 지금껏 존재했던 인류의 수보다 많다는 많이 과장된 말을 들은 적도 있다. 그만큼 사람이 많으니 이상한 사람도 많은 것도 자연스럽다. 정보교환의 범위가 넓어지고 빨라진 것 그다음 이유쯤 될 것이다. 백 년 전 같으면 동네를 벗어나지 않았을 뉴스가 지금은 전 세계적으로 거의 실시간으로 전해진다. 정보 폭식의 시대에 넘쳐나는 정보들 간의 경쟁도 치열해서 뉴스로 전해지는 것은 이상한 것 중에서도 정말 이상한 것들이다. 무한대에 가까운 TV채널들과 다양한 대중매체는 사람과 사람 사이의 거리를 예전보다 훨씬 먼 거리로 벌려 놓았다. 사람 사람 사이가 너무 멀어져 서로의 마음이 보이지 않는다. 이상한 사람들 투성이다. 21세기에는 이처럼 주변에서 이상한 일이 많으니 적응도 빠를 수밖에 없다.   

박민규 작가의 소설 '아스피린'은 어느 날 갑자기 도심 하늘에 우주선 모양의 대형 구체가 떠올랐는데 조사결과 '아스피린'인 것으로 밝혀진다는 이야기이다. 21세기 인류라면 "아, 아스피린이었구나." 받아들이고 다시 일상으로 돌아갈 일이다. 소설의 결론도 그렇다. 실존하는 현상이라면 21세기는 뭐든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다. 도심 하늘에 뜬  우주선 크기의 아스피린쯤이야, 양자역학쯤이야 이해 못 할 일이 아니다. 과학자들에게 이전 세기와 다른 21세기 맞춤 양자역학 강의를 요구하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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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자역학에 대한 생각이 더 깊어져 왜 양자역학에 관한 과학자들의 설명방식이 100년 넘게 유지되는 것일까에 까지 이르게 되었다. 직관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양자역학의 주요 특성들이 여전히 현실에서 활용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상황이 변한 게 없으니 설명방식도 변할리 없다. 가까운 미래에는 양자중첩 상태를 활용한 양자컴퓨터가 실용화되어 양자역학에 대한 설명방법도 달라질 것이다. 일상에서 사용하는 양자컴퓨터의 작동원리를 들으면 양자중첩이 쉽게 받아들여질 것이다. 조금 다른 이야기이지만 20세기의 어느 시기에는 빛의 속도가 불변이라거나,  그런 이유로 시간이 상대적으로 흐른다는 개념도 직관적으로 받아들이기 어려웠다. 인공위성과 내 자동차의 내비게이션의 시계를 맞추는 방법을 듣고 나면 이해 못 할 게 없다. 더 오래전에는 지구가 둥글다거나, 지구가 태양을 돈다는 것도 이해할 수 없던 시절이 있었다. 요약하면 과학자들이 양자역학에 대한 설명방식을 바꾸려면 시간이 더 필요하다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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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카로운 말들이/나를 상처 내려해도//홍수를 일으켜/가라앉혀 버릴 거야


영화 '위대한 쇼맨' 수록곡인 'This is me'  가사이다. 이 노래를 들을 때마다 가사 중 '홍수'가 '눈물'을 뜻한다고 생각했다. 어떤 상처라도 홍수가 날 만큼 울고 나면 잊을 수 있다 이런 뜻이 아닐까 하고 말이다. 사실 홍수를 낼 만큼 울고 나면 다 잊을 수 있다. 그만큼 많은 시간이 흘렀기 때문이다. 내가 양자역학에 대해 관심을 쏟게 했던 힘든 일들이 더 이상 기억나지 않는 건 아니지만 그 날카로움은 이미 사라지고 없다. 그만큼의 시간이 흘렀기 때문이다. 양자역학 대한 생각들만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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