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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원진 Jun 20. 2021

피고 지고_1

열다섯

흔히 봄은 꽃이 피는 계절로 여겨진다. 옳다. 나 역시 이번 봄, 꽃피는 걸 봤다. 목련, 벚꽃, 매화. 하지만 그것들이 지는 걸 본 계절도 봄이었다.

이 짧은 계절 안에는 피고 짐이 같이 있다. 그래서 누군가는 피는 걸 보고 누군가는 지는 걸 본다. 내가 매 봄마다 듣는 가요 두 곡에도 이런 피고 지는 순간이 담겨 있다. 먼저 이야기할 곡은 <버스커 버스커>의 '꽃송이가'이다.      



장범준은 봄을 '꽃이 피는 계절'로 보는 사람이다.

그가 이별 노래를 만든 적도 있으나 대표곡 대부분은 '사랑이 시작되는 순간'이 담겨 있다. 만약 사랑을 여러 단계로 나눠 계절로 비유한다면, 그가 데뷔부터 지금까지 꾸준히 노래하고 있는 건 봄일 테다.  

그에게 '이야기한다'라는 표현은 무척 잘 어울린다. 왜냐하면 그의 곡 대부분은 '스토리텔링'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대중가요를 듣는다는 건 어느 정도 곡에 자신을 대입하여 체험하는 일이다. 단순히 감정과 멜로디가 엮일 땐 '감정의 체험'하게 되지만(이 역시도 훌륭한 곡이 많다), 이야기가 되면 감정과 더불어 '상황의 체험'이 된다.



또한 일상적인 대상이나 지명을 가사에 끌어오는 능력도 탁월하다. 이런 작법을 사용하는 작사가는 여럿 있지만, 그가 구별되는 건 대상을 감정에 은유하는 능력이다. 예를 들어 그가 작사한 '여수 밤바다'는 단순히 친근한 지명으로만 기능하지 않는다. 만약 그랬다면 지금처럼 노래를 듣고 여수 바다를 찾는 이들이 많지 않았을 것 같다. 이 바다가 특별한 건 스토리텔링에 의해 '너와 함께 걷고 싶은 바다'로 받아드려지기 때문이다.

  

 

'꽃송이가' 역시 마찬가지다. 이 곡에서 꽃송이는 이제 막 피어난 꽃이면서, 노래 속 화자와 상대를 바라보는 시선이다.  

이 곡은 데이트를 구애하는 형식으로 시작한다. 상대는 이런 구애에 '안된다는 말'이 없다. 특이한 건 '안된다는 말이 없었지' 앞에 놓인 '그래'이다. 이는 단순한 추임새처럼도 보이지만, 곡이 진행될수록 상대방을 향한 긍정의 표현임이 드러난다. 마치 감정을 숨기지 못해 내뱉어진 말처럼 곡의 중간 중간 불쑥 등장한다. 그런 까닭에 나에겐 이 곡에 쓰인 모든 '그래'는 순간순간의 고백처럼 들린다.



 <넌 한 번도 그래 안되는다는 말이 없었지>

<그 꽃 한 송이가 그래 그래 피었구나>  



후렴으로 들어가면 이 마음을 더욱 분명하기에 두 번이나 반복한다. 마치 '진실로 진실로 내가 그대를 사랑하는 까닭은(황동규, 즐거운 편지)'처럼, 한 번으로는 마음을 다 담을 수 없기에 그 꽃 한 송이가 '그래 그래 피었다고' 노래한다.  

그러나 상대의 마음은 아직 알 수 없다. 알 수가 없기에 어렵다. 내가 수많은 꽃 중 단 한 송이인지 모르기에 '그래'가 될 수 없다. 화자는 이런 자신을 '거리에 수많은 사람들'에 비유하고 '그래'가 아닌 '그게'라는 의문으로 표현한다.



<수많은 사람들 그 길에 사람들

그래 나는 네게 얼마만큼 특별한 건지 그게 어려운 거야>  



이 곡의 멜로디와 가사, 단순한 진행방식 모두 좋아하지만, 가장 좋아하는 부분을 꼽으라면 후렴 후 이어지는 하모니카 연주이다. 이 파트를 듣고 있으면 수많은 벚꽃잎이 흩날리는 짧고 아름다운 장면 한가운데 서있는 느낌을 받곤 한다.



장범준처럼 자기만의 스타일로 음악을 만드는 아티스트들이 있다. 이어 이야기할 자우림의 김윤아를 비롯하여 이소라, 10cm, 검정치마까지. 재밌는 건 이들 모두 곡안에 캐릭터와 실제 아티스트 간에 간극이 거의 없다는 점이다. 맹목, 찌질, 예술가, 수줍음, 괴팍, 자기 연민 등등. 이들은 의도했건 하지 않았건 곡 속 캐릭터와 유사하다.   

장범준 역시 캐릭터를 가지고 있다. 하지만 위의 인물들처럼 독특한 성향이 강조되지 않는다. 그는 평범하다. 가끔 예능에 출연한 그의 모습은 화려함과는 거리가 멀다. 천재나 로맨티시스트로 스스로를 포장할 마음도 없어 보인다. 그나마 약간 내비치는 건 은둔자 기질, 엉뚱함 정도다. 그가 만든 노래 속 화자 역시 마찬가지다. 지극히 평범한 20~30대의 모습을 하고 있다. '안경 쓴 샌님'(10cm, 스토커)도 아니며, '내가 사랑하면 사랑한단 말 대신 차갑게 대하는 걸 알잖아'(처음 느낌 그대로, 이소라)식의 자기애를 내세우는 연애도 하지 않는다.  

그저 꽃을 보며 좋아하는 사람을 떠올리고, 노래방에서 상대가 좋아하는 노래를 부르는, 밤바다를 걷다가 문득 전화를 거는 정도의 인물이다. 그리고 이 평범함은 대중성과 연결된다. 나에게 그의 곡은 '흰색 티셔츠'같다. 누구나 가지고 있고 어디에나 아무 때나 어울리는 옷처럼, 많은 이들이 자기 이야기처럼 듣고 공감할 수 있다. 아마도 그런 친숙함 때문에 매 해 봄이 오고 꽃이 피면 이 노래를 듣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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