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 난장판이 따로 없다.
초토화라는 말을 절로 나온다. 새벽에는 천둥까지 쳤다. 지붕을 때리는 빗소리에 개들 발자국 소리가 묻힌다. 비상사태였다. 개들이 뭘 하는지 소리에 의존하고 있었는데 더 이상 들리지 않았다. 내리치는 비를 막을 우비는 마당에서 홀로 비를 맞고 있었다. 깜깜한 새벽, 인적이 드문 곳이기에 팬티 바람으로 나서도 상관없었다. 어차피 젖을 운명이었다. 다만, 개들이 할퀴는 발톱에 허벅지가 멍들지는 예상치 못했다.
백구의 주둥이가 지저분하다. 자세히 보니 핏자국이 난 상처다. 펜스 아래 땅을 파서 비집고 나온 흔적이다. 큰 덩치로 나오려면 땅을 깊게 파야했다. 백구는 그저 좁은 틈새로 몸을 욱여넣었다. 바닥 돌멩이에 긁히고 녹슨 펜스에 찍혀 상처가 났다. 멈추지 않았다. 어쩌면 밤새 그랬을지 모른다.
천둥소리에 겁먹는 개들이 있다. 잠시 몸을 움츠리는 정도가 아니다. 천둥이 닿지 않는 곳으로 도망치려는 몸부림이 사생결단 수준이다. 천둥이 끝나면 온몸이 진흙 투성이가 된 개들이 보인다. 밤새 탈출하려고 땅을 팠거나, 좁은 곳에 몸을 숨기려 애쓴 흔적들이다.
여러분은 지금 카페에 있다. 갑자기 한 사람이 호들갑을 떨며 카페를 뛰쳐나갔다. 심지어 가방조차 챙기지 않았다. 십중팔구 여러분도 가방과 스마트폰을 챙기기 시작할 것이다. 이유도 모른 채 말이다. 천둥이 치면 개들 사이에 이런 일이 일어난다. 패닉에 빠진 몇 마리의 어수선한 행동에 주변의 개들까지 두려움을 느껴버린다. 걷잡을 수 없을 만큼 공포가 확산되고 말 그대로 아수라장이 된다. 천둥이 치는 날이면 항상 그랬다.
비 맞지 않을 곳에 사료를 준다. 타이어보다 큰 사료그릇만 10개가 넘는다. 그러나 개는 백 마리이다. 빠짐없이 모두 사료를 먹는다고 단정할 수가 없다. 실제로 사료 그릇을 넘보지 못해 굶는 개도 종종 있다. 다른 개가 넘보지 않을 자리에 사료그릇을 놓아두면 서너 마리 개들이 끼니를 해결한다. 비가 오면 사료가 젖는 그런 자리에서 사료를 먹는다.
비가 오는 중에도 사료를 먹는다. 타공이 된 스테인리스 대야이기에 빗물이 고이지는 않는다. 물론 젖어서 불어버린다. 어떤 사료를 먹느냐는 사람에게 중요한 문제일 뿐이다. 몇몇 개에게는 사료 그릇에 접근하는 것부터 난관이다. 비가 오고 물에 조금 젖은 사료를 마음 놓고 먹는 개를 지켜본다. 마음이 좋을 리가 없다.
물에 흠뻑 젖으면 버린다. 연일 비소식이 잡히면 먹을 만큼만 채운다. 비에 젖어 불기 전에 다 먹을 수 있을 만큼 양을 조절한다. 경험이 쌓이면 비에 젖어도 덜 부는 사료를 알게 된다. 차라리 가득 담아 위에 젖은 사료만 걷어내는 것도 방법이다. 내가 주는 것이 밥이 아니다. 개가 먹어야 그것을 밥이라고 부른다.
베란다에서 들어오는 개들의 발자국이 거실을 뒤덮는다. 청소를 마치고 한숨 돌리는 찰나에 일어난다. 보일러까지 돌려가며 물청소한 바닥을 말려놓았지만 소용없다. 바깥은 더 심각하다. 개들이 물어 꺼내놓은 이불이 비에 젖는다. 그 위에 올라가서 편하게 자리 잡는 개들을 보면 고민이 깊어진다.
하이라이트는 배설물 청소이다. 비에 젖은 배변을 휴지로 집어 검정봉지에 넣어야 한다. 휴지를 듬뿍 쓰는 것도 중요하지만, 휴지가 젖기 전에 집어드는 것이 핵심이다. 이 와중에 옆에서 배변을 보는 개도 어김없이 등장한다. 비를 맞으며 그 개의 배설이 끝나기를 기다렸다. 비에 젖지 않아 치우기 편리하다고 생각했다.
빗물이 담긴 물그릇의 물을 갈아준다. 갈아준 물그릇에는 다시 빗물이 섞여든다. 소용없는 일을 반복하는 바보처럼 느껴질 때도 있다. 그래도 지난밤에 갈아준 물보다는 나은 물이지 않을까? 남들이 보면 왜 저러나 싶을 일들이 종종 있다. 그래도 해야 한다. 비 오는 날에 바보 같은 청소를 하는 것은 절대 쉽지 않다.
오늘 갑자기 백구 한 마리의 하반신이 마비가 되었다. 놀랍게도 종종 있는 일이다. 몇 달이 지나면 다시 걷는 경우도 종종 있다. 솔직히 하반신 마비가 되어도 상관없다. 어떤 상태라도 잘 살게끔 하는 일에는 변함이 없다. 그게 내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