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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준성 Nov 05. 2023

백마리 개, 꼬리 이야기

10. 꼬리를 반으로 잘랐다.

개가 꼬리를 흔들면 기분이 좋다. 아니다. 10년 넘게 수백 마리와 살아보니 이게 전부가 아니었다. 꼬리를 조금 더 디테일하게 살펴보면 더 많은 것을 알게 된다. 개의 마음을 알고 싶은 사람이라면 읽어보길 바란다.




꼬리의 2등분


꼬리를 반으로 자른다. 실제로 자르는 것이 아닌 상상으로 나누어야 한다. 만약 꼬리가 짧은 개를 키우고 있다면 안타깝지만 이 글은 쓸모가 없다. 누군가 잘라버린 꼬리는 본래의 역할을 잃어버렸기 때문이다. 다시 이야기로 돌아와서, 꼬리 중 엉덩이에 가까운 반쪽을 '엉덩이꼬리'라고 부르고 꼬리 끝이 포함된 부분은 '끝꼬리'라고 부르겠다. 간단한 그림을 첨부했다. 먼저 눈으로 익히면 다음 이야기가 수월하게 들릴 것이다.



수십 마리가 함께 지낸다. 어떤 개라고 하더라도 이런 환경에서 산다는 것은 힘든 일이다. 방목과 방치의 경계선에서 이들에게 도움을 주려 한다. 그런데 도움을 주려면 무엇이 필요한지를 알아야 한다. 내 생각만으로 건넨 도움이 나의 착각이 되어서는 곤란하다. 그래서 나는 꼬리에 제일 먼저 집중한다.


엉덩이 꼬리는 현재의 상태를 말한다. 개가 흥이 나면 꼬리가 올라가고, 반대로 위축되면 꼬리가 내려온다. 내 경험상 이 부분은 확실한 것 같다. 수많은 사람이 연구한 꼬리라고 하더라도 내 눈으로 보기 전까지는 믿지 않는다. 백 마리 모두 이런 이유로 꼬리를 올리고 내리니 분명한 사실이다.


끝꼬리는 원하는 상태를 말한다. 앞으로 어떻게 하고 싶다는 표현이다. 현재 상태와 별개로 앞으로 흥을 내고 싶다면 올라갈 것이고, 반대로 위축되고 싶다면 내리게 된다. 오후에 산책을 하는 다른 집 개를 보았다. 자유롭게 산책하는 모습은 아니었다. 대형견을 통제하는 로망에 빠진 보호자의 발걸음을 맞추고 있었다. 꼬리가 어땠을까? 숫자 5처럼 생겼었다. 엉덩이 꼬리는 아래로, 끝꼬리는 위로 향해 있었다.


엉덩이 꼬리는 아래로 : 기분이 DOWN

"현재 보호자와 발을 맞춰 걷는 것이 답답하고 재미없다."


끝꼬리는 위로 : 기분이 UP

"앞으로 더 신나고 즐거운 산책을 해보고 싶다."




1살을 갓 넘은 두 마리의 개가 사춘기에 접어들었다. 정말이지 매일 야단을 쳐도 소용없었다. 어설프게 혼이라도 내면 더 신나게 뛰어다녔다. 손에 잡힐 듯 말 듯 도망치는 개를 야단치는 것부터 쓸데없는 짓이었다. 그래도 시간은 흐르더라. 최근에 철이 좀 들었다. 야단을 치면 가만히 멈춰서 나를 쳐다본다. 꼬리는 어떨까?



엉덩이 꼬리는 위로 : 기분이 UP

"네가 뭐라 하든 난 지금 너무 즐거워."


끝꼬리는 아래로 : 기분이 DOWN

"그래도 너무 흥분하지 않고 네가 뭐라 하는지 지켜볼게."




꼬리가 말린 개


우선 사과부터 하고 싶다. 저 그림이 최선이었다. 암튼 철이 든 1살 개의 꼬리는 저랬다. 여러분이 키우는 개의 꼬리를 반으로 자르는 상상을 해보자. 개가 꼬리를 흔들어도 안심할 수가 없다. 반대로 꼬리가 쳐져있다고 걱정할 필요도 없다. 나의 경험에 여러분의 상상을 더하면 수십 가지 이야기를 만들 수 있다.


아직도 개의 행동을 정확하게 아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면 실망이다. 우리는 개가 아니기에 모르는 것이 당연하다. 그저 확률이 높은 몇 가지 상황을 유추할 뿐이다. 나는 꼬리로 개의 상태를 상상한다. 만약 개의 꼬리가 뒷다리 사이로 파고들만큼 말려 있다면 여러분이 할 일은 딱 하나다.



극적인 상황을 기대하지 말고 기다리기



우리가 억지로 개의 꼬리를 들어 올릴 수는 없다. 어떤 도움을 주더라도 결국 개 스스로 마음을 바꾸어야만 한다. 몇몇 사람들은 노력으로 개의 마음을 바꿀 수 있다고 말한다. 틀린 말은 아니다. 단, 기다리는 것도 노력이라는 점을 알아야 한다.


여기 오는 개들은 여러분이 상상하는 것 이상으로 움츠린 경우가 많다. 공포에 질려 있다는 표현이 어울리는 개들도 종종 온다. 나는 6개월을 기다린다. 다시 1년을 기다리기도 한다. 어제보다 나은 오늘, 오늘보다 나은 내일이면 충분하다. 0.1mm만큼이라도 나아지면 그것으로 족하다. 그럼 결국에는 보게 된다. 알파벳 V처럼 꼬리의 중간이 아래로 쳐진 모습을 말이다. 무슨 의미인지는 여러분 상상에 맡겨 보겠다.




홀로 명함을 만들어 애견훈련사로 잠시 일을 했었다. 사람들은 꼬리 이야기에 별 관심이 없었다. 자신을 괴롭히는 개의 문제만 해결되기를 바랐다. 어떤 수단을 쓰더라도 상관하지 않았다. 개를 이해하지 못한 보호자가 누릴 수 있는 가치는 없다. 그런 보호자의 개는 문제를 일으켜야만 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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