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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준성 Nov 14. 2023

백마리 개, 죽일 놈

15. 영웅이 되고 싶었던 사람

실책이었다. 젊은 커플은 영웅이 되길 원했다. 나에게 영웅이 되는 방법을 물었다. 원하는 답을 얻지 못하자 그들은 날뛰었다. 영웅과 악당은 한 끗 차이라던 만화 속 대사를 내가 내뱉고 있었다. 악플은 쏟아졌고 모르는 번호에서 욕이 들려왔다. 창 밖으로 PC를 집어던지고 폰을 꺼버렸다.




잘 나가던 때였다.


한 달 수익이 3천만 원을 넘기기도 했었다. 직업 군인 전역 후에 소일거리로 시작했던 펫시터가 자리를 잡으면서 적지 않은 돈벌이가 되었다. 그래서 교만해졌을 것이다. 잘난 체하고 건방졌다. 개에 대해 누구보다 잘 안다고 생각했다. 돌보는 개마다 더 나은 모습으로 바뀌었고, 이에 대해 보호자들은 찬사를 보냈다. 신중하지 못했던 말 한마디도 여기서부터 시작되었다.



심장사상충 같아요. 내일 검사해볼게요.



내가 뱉은 말이다. 나는 수의사가 아니다. 짧게라도 공부를 했던 적도 없었다. 지금이라면 절대 못할 말을 그때는 당당하게 내뱉었다. 입이 방정이라는 말이 남의 이야기가 아니었다. 이 말을 들은 젊은 커플의 눈에 신뢰와 존경이 보였다. 길에서 데려온 노견에게 희망의 빛이 비치는 상상을 했을 것이다.




늦은 밤에 전화가 걸려왔다.


길에서 만난 노견이 죽어가는 중이라고 했다. 젊은 커플이 구조를 하고는 맡길 곳을 찾는 중이었다. 새벽에 도착한 노견은 상태가 좋지 못했다. 숨은 차올랐고 혼자 일어서지 못했다. 하얀 털의 백구로 추정되는 흙먼지 뒤덮인 노견이었다.


심장사상충 같다는 나의 얘기를 듣고 젊은 커플은 고개를 끄덕였다. 내일 검사를 하기로 하고 돌아갔다. 남겨진 노견은 당장이라도 죽을 것 같았다. 병원 문이 열기에는 몇 시간이 남았고 뜬 눈으로 아침을 기다렸다. 젊은 커플이 돌아가는 길에 무슨 짓을 하는지도 모른 채 노견의 숨을 붙잡고 기다렸다.


심장사상충 치료를 위한 모금이 젊은 커플의 선택이었다. 밤새 병원을 다녀간 것도 아니었지만, 내가 뱉은 말 한마디에 이미 노견은 심장사상충으로 진단되어 있었다. 하루 만에 두세 마리도 치료할 수 있을 만큼 후원금이 모였다. 일은 걷잡을 수 없을 만큼 커져가고 있었다.




아침이 되었다. 


병원 문이 열리는 순간 나도 그 자리에 있었다. 끌어안은 노견을 진료실에 눕히고 곧장 검사가 시작되었다. 예상과 달리 심장사상충은 없다는 결과가 나왔다. 안도의 한숨이 나왔다. 기쁜 마음에 젊은 커플에게 곧바로 연락을 했다. 스마트폰 너머 한숨이 들려왔다. 나와 달리 안도하는 숨이 아니었다.


내게 따져 묻기 시작했다. 수많은 사람들에게 영웅이라 칭송받았을 젊은 커플의 두려움이 전해졌다. 노견을 치료하기 위한 모금이 거짓이 되어 버렸다. 사실대로 해명하면 되었지만 그들에게 그만한 용기가 없었다. 그래서 피해자가 되기로 선택했고 가해자로 나를 지목했다. 나의 가해를 입증할 때까지 따져 물을 기세였다.


다음 날 들이닥친 젊은 커플은 노견을 데리고 갔다. 길에서 주운 물건은 임자가 없으니 주운 사람 마음이라고 했던가? 길에서 주웠다던 노견을 봇짐 마냥 끌고 나갔다. 대학병원으로 옮겨진 노견은 숨만 쉬는 실험체가 되어 온갖 검사를 받았다. 앞선 상황을 병원에 제대로 전했을 리 없었다. 병원으로 왜 빨리 옮기지 않았냐는 수의사의 질타는 나를 향한 비난이 되기에 충분했다.




노견이 온 첫날,

인터넷 카페에 소식을 전했었다.


그 게시글에 악플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노견을 위해 후원한 사람이었을 것이다. 아니면 젊은 커플을 통해 노견의 사연을 전해 들은 누군가이었을 것이다. PC를 들어 창문 밖으로 던져버렸다. 저녁에는 스마트폰까지 꺼버렸다. 밤에는 집 앞을 스치는 차량의 헤드라이트에 신경까지 곤두섰다. 죽일 놈이 되어버린 세상에서 숨을 곳을 찾기란 쉽지 않았다.


3일 후 노견은 죽었다. 여전히 숨만 쉬는 상태로 대학병원의 어디 차디찬 입원실에서 죽었다. 아무도 말해주지 않았지만 알 수 있었다. 노견은 끝내 쉬어가지 못했다. 이후로 '노견과 젊은 커플' 같은 이들을 수없이 만났다. 그들은 나에게 영웅이 되는 법을 물었고, 나는 끝내 영웅은 없다고 답할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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