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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서정 Aug 27. 2016

최초의 선물 시장, 에도 막부와 쌀

17세기 일본 쌀 시장에서 태동한 상품선물거래의 역사


앞서 살펴봤듯, 쌀은 국제 곡물 시장에서 위상이 큰 곡물은 아니다. 우리에게는 가장 익숙할지 모르지만, 쌀은 생산지와 소비지가 대체로 일치하여 교역량이 상대적으로 적다. 또한 전 세계적으로 널리 먹는 밀과 달리 쌀의 주 소비지역은 아시아로 한정되어 있다. 그럼에도 전 세계 곡물 교역에 쌀은 매우 큰 영향을 주었는데, 이는 17세기 말 18세기 초 일본의 쌀 시장에서 근대적 의미의 선물거래소가 최초로 탄생했기 때문이다.


선물계약(先物契約)의 사전적 정의는 "미래의 일정한 시점에, 일정 수량의 특정한 상품을 미리 약정한 가격(선물가격)으로 매매하기로 맺은 계약"을 말한다. 즉, 인도 시점이 미래인 상품을 현재 가격을 정하여(선물가격) 체결하는 계약이다. 미래의 가격 변동을 통해 이익을 보고자 하는 사람이나, 미래의 가격 변동을 피하고자 하는 사람들이 충분히 모여 "거래소"를 형성할 때, 선물 거래소가 생겨나게 된다. 바로 1694년에 세워져 1710년 선물 거래가 도입된 일본의 도지마 쌀시장(堂島米市場)이 이런 근대적 선물 거래소의 역할을 최초로 수행했다.



여기서 잠시, 이 시기 일본의 분위기를 알아야 한다. 도대체 일본에서 무슨 일이 있었기에 현재 세계 선물 시장을 주름잡는 미국, 유럽, 심지어 중국도 아닌 일본에서 세계 최초로 선물 시장이 생겨난 것일까?


다양한 소설, 영화, 만화의 소재가 되어온 16세기 군웅할거의 전국시대를 오다 노부나가가 평정해간다. 그러나 1582년 혼노지의 변으로 노부나가가 죽고 부하였던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그 뒤를 이어 1590년 천하통일의 대업을 완수한다. 히데요시는 이어 1592년 1597년 두 차례 조선을 침공했으나 중간에 죽고 만다. 1600년 건곤일척의 세키가하라 전투에서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이끈 동군이 승리하면서 천하의 패권은 이에야스에게 넘어가고 1603년 이에야스가 쇼군에 올라 공식적으로 에도막부, 도쿠가와 막부가 세워진다. 한편 이 시기는 영국과 네덜란드가 세계 최초의 주식회사라고 할 수 있는 동인도회사(EIC, VOC)를 세운 시기이기도 하다.


니혼바시. 상업과 도시가 번영하는 17세기 일본의 분위기를 잘 보여준다.


에도 막부의 지배 아래 통일된 일본에서는 상업과 도시가 빠른 속도로 발전한다. 삼도(三都)라고 불린 에도(도쿄), 오사카, 교토가 정치, 경제, 문화의 중심인 대도시로 성장하여, 18세기 전반에는 각각 인구 100만, 35만, 40만을 자랑한다. 특히 상업의 중심지였던 오사카에는 서일본과 호쿠리쿠 등지의 물산이 총 집산하였다. 오사카에는 각 번(藩)에서 세금으로 거두어들인 쌀과 특산품을 저장하는 창고가 즐비해있었고, 이를 관리하는 번의 관리들이 거주했다. 일본 전국의 상품이 오사카에 집하된 후 전국으로 다시 출하되었는데, 이는 마치 CBOT 곡물 창고에 미국 전역의 곡물이 집하되고 다시 전 세계로 출하되는 모습을 연상하게 한다.



바로 이런 배경에서 최초의 근대적 선물거래소인 도지마 쌀시장(堂島米市場)이 탄생하였다. 일본 역사에서 그 어느 때보다 상업이 발전하던 겐로쿠(元祿, 1688~1704) 시대의 한 가운데인 1694년에 도지마 쌀시장이 처음 태어났다. 당시 일본의 영주들은 "쌀 몇만 석의 영주"냐로 세력이 표현되었고, 중앙에 납부해야 하는 세금도 쌀로 징수되었다. 막부에서는 지방 영주들이 거두어들인 쌀을 중앙의 오사카와 에도로 다 보내게 했는데, 이 막대한 쌀의 물동량과 함께 도지마 쌀시장이 번영했다. 


하지만 자신의 영지에서 거둔 쌀을 오사카로 보내는 과정에서 영주들은 고민에 시달렸다. 기후의 영향을 많이 받는 농산물 자체가 원래 가격 변동이 극심한데(지금도 농산물 선물 시장이 발달한 이유다), 오랜 시간이 걸려 자신들의 영지에서 오사카까지 운송하는 길에 가격이 떨어지면 여간 낭패가 아닐 수 없다. 게다가 운송하는 길에서 발생하는 각종 비용은 미리 내야 할뿐더러 적잖은 부담인데 목적지에서 쌀 가격이 떨어져 버리면 영주들은 큰 손해를 보게 된다. 한편, 쌀 거래를 통해 이익을 보고자 하는 오사카의 상인들 입장에서는 자신들이 적정하다 생각하는 가격에 원하는 만큼 물량을 확보하면 좋은 것이었다. 즉, 앞에서 본 것처럼 가격 변동을 피하고자 하는 영주들과 가격 변동을 통해 이익을 보고자 하는 오사카 상인들의 이해가 맞물려 도지마 쌀시장의 선물거래가 탄생한 것이다. 이 도지마 쌀시장에서 선물거래로 주고받은 선납 수표가 점차 널리 쓰이면서 일본에서는 동전과 함께 지폐의 유통도 점차 활발해졌다. 도지마 쌀 시장은 메이지 유신으로 에도 막부가 무너진 이후에도 1939년 일본미곡주식회사(日本米穀株式会社)에 흡수될 때까지 존속하였다.




현재는 곡물 선물거래에 있어 전 세계의 표준이 되는 것은 세계 최대 농업국가인 미국 시카고상품선물거래소인 CBOT이다. 19세기 후반에 세워진 CBOT의 곡물 가격은 지금까지 전 세계 곡물 트레이더들이 가장 중요하게 참고하는 지표이다. 하지만 최근 국제 곡물 시장에서 강하게 존재감을 드러내는 것은 중국이다. 중국의 경제가 빠른 속도로 발전하고, 중국의 곡물 생산, 소비, 수입량이 늘어나고 이에 따른 파생상품 거래량도 급증하면서 대련 상품거래소 등 중국의 선물거래 시장이 점차 중요해지고 있다. 마치 17세기 일본이 정치적 안정을 이룬 후 빠른 속도로 상업이 발전하면서 보여준 모습과 비슷하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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