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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랑하던 보노보노 Apr 20. 2024

기억의 조각쯤이야 쉽게 사라져버리는 나날

메모 습관을 들이자!

오늘은 사진을 나열하는 대신, 이브닝페이지라도 30분 정도 써 보도록 하겠다.


오늘도 오늘이 마감인 것을 아침부터 근무를 하는 와중에도 잔뜩 의식하고는 있었다. 그래서일까 손을 바삐 움직이다 말고 번뜩 그럴싸한 글감이 한 문장으로 떠올랐다.

와! 이것으로 오늘이야말로 제대로 글을 쓰면 되겠다, 생각을 하곤 쓰기도 전부터 이미 뿌듯했는데. 막상 퇴근하고 글을 쓸 수 있는 시간이 되자 그 문장이 무엇이었는지 정말 까맣게 잊어버렸다. 아무리 다시 떠올려보려 해봐도 그저 하얗다. 뇌가 백지만 남겨둔 채 퇴근을 해버린 모양이다.

몽롱한 와중 문득 '까맣게' 잊어버렸다는 표현과 머리가 '새하얘졌다'는 표현의 대비가 흥미롭게 보인다.

재작년 한창 카페일을 하던 당시, 선천적 카페인 과민증을 앓고 있는 '카페-인력'에게 '카페인-력'이 미치는 영향에 대해 이야기한 적이 있었다.

스스로를 커피 애호가라고 말하기에는 일반적인 애호가분들에 비해 턱없이 모자란 모수만을 가지고 있을 뿐이지만, 맛있는 커피를 좋아한다는 사실만은 틀림이 없다. 맛이 있는 커피만을 좋아한 나머지 보통은 커피를 잘 마시고 싶지가 않다. 고작 그저그런 맛의 커피를 마시고서 카페인 과민증세를 견뎌내야 할 이유가 없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일터에서는 손님들께 모모스커피의 시그니처 블렌드 중 '에스쇼콜라'라는 원두로 커피를 대접한다. 커피 내리는 법을 정식으로 배운 적이 없지만 스무살 무렵부터 온갖 카페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며 어깨너머 배운 어설픈 동작으로나마 나름대로는 정성스럽게 추출을 하곤 한다. 원두 자체가 호감형이라 대부분의 손님들께서 만족하시곤 한다.

오늘 마감할 글은 조금 더 밀도 있게 써보고픈 마음에 식후에 아아를 세 모금이나 마셨었다. 그 힘으로 노동은 바짝 잘 해낸 듯한데, 글을 쓸 시간이 되자 평소처럼 방전상태가 목전이다. 이왕 마실 거 두어모금 더 마실 것을 잘못 생각했나보다.

오랜만에 <초속5센티미터>라는 영화를 틀어둔 채 생각을 적어내려가고 있다. 이미 여러 번 보고 또 본 영화나 드라마를 틀어두면 영어나 일어를 매일 더 많이 잊어버리고 마는 상황 속에서 조금은 도망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다. 내겐 그렇게 수십 번을 돌려보는 영화가 아마 열몇 작품 정도 있다. <아메리칸 셰프>도 그 중 하나다. 그런 영화들은 장면 속에서 한 인물이 먼저 대사를 하면 내가 대답을 할 수 있는 정도로 외워져 있다. 그렇게 반복 시청하는 영화가 되는 나름의 조건은, 대사와 배경음악의 음량이 지나치게 차이나지 않을 것, 배경음악이 매혹적일 것, 엔딩이 찝찝하지 않고 어떤 식으로든 카타르시스를 줄 것 등이 있다.

오늘 저녁은 실리만 무수분 찜기에 양파 슬라이스 한 줌, 방토 10여 개 하프컷, 하림 닭가슴살을 가위로 조각낸 것 위에 달걀 3개를 깨서 노른자는 포크로 찔러주고 피자치즈를 조금 올려 렌지에 5분 돌려 꺼낸 뒤 바질잎과 함께 먹었다. 간은 아무것도 더하지 않았지만 치즈의 짭짤함과 토마토의 상쾌한 단맛과 양파의 아삭함, 닭가슴살의 고소함에 마냥 만족스럽게 배가 부르다.

이제는 그만 쓰고 자야할 것 같다. 내일은 아침 7시 30분부터 밤 9시 30분까지 하루의 14시간을 일에 쓰는 날이다. 어느새 3주째 무리한 스케줄을 소화해내고 있는데 이조차 많이 적응이 되었다. 적응의 동물이라 다행이다. 오늘밤도 평안히 잠들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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