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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랑하던 보노보노 Aug 17. 2024

만나고 헤어지고, 생겼다가 사라지고.

그래도 또 살고.

 매분매초 '삶' 그 자체를 살아가고 있으면서도 삶이 무언지, 내 몸과 마음을 통해서 그것이 어떻게 만들어지고 또 사라져 가고 있는지 좀처럼 실감하지 못한다. 눈앞에 놓인 (이럴 거면 도대체 궁극적으로 무얼 위한?)과제를 수행하기에 바빠 그런 감지기일랑 꺼두었다는 말이 더 맞겠다.

 그러니 '죽음', '헤어짐' 같은 것들이야 오죽하랴. '삶'에 비하자면 당장에 일어나지 않고 있는 일에 속하는 그것들은 더욱이 뼈와 살에 잘 와닿지 않곤 한다.



 위독하시다는 이야기를 전해 들은 지 한두 달 정도 된 어르신이 소천하셨다는 소식을 어제저녁 무렵 듣게 되었다. 하던 일을 멈추고 멍하니, 이제 상주가 되실 지인분들의 안녕을 걱정함도 잠시간. 다시 바삐 손을 놀렸다. 원래대로라면 21시까지만 하다가 중단하고 퇴근했을 일을 24시가 넘도록 계속했다. 움직임을 멈추면 나약한 감정이 뿜어져 나와 온 신체를 지배하게 될 것 같아 그랬나 싶다.


 그리고 바로 오늘 아침은, 가족식사에 참석하러 서울행이 예정되어 있었다. 한 달쯤 전부터 막연히 갈 수 있겠지 하다가, 못 가나보다 체념했다, 다시 갈 수 있네! 했던 게 다시 못 가고 안 가려던 상황으로 이어졌더랬다.

 그치만 최종의 최종에는 타포린백에 1박할 짐을 3분 만에 쓸어 담고, 내가 긴 외출을 마치고 올 동안 방을 홀로 쓸 동거묘를 위해 화장실 모래를 넉넉히 배치하고 하루 반치의 사료와 물을 채워두고 곳곳에 간식을 숨겨두는 것까지. 급한 와중에도 해야 할 일을 다 해낸 뒤 택시를 잡아타고 터미널로 향하게 됐다. 예매해 두었던 버스표는 이미 어제 취소했던지라 부리나케 새로 예매를 하고 시간에 맞춰 나왔는데, 택시 안에서 티켓을 미리 휴대폰 화면에 띄워두려고 보니 서울에서 거제로 내려오는 여정이었다. 다행히 수수료 없이 취소를 하고 40분 뒤에 거제에서 서울로 출발하는 티켓을 다시 구매했다.


 붕 뜬 시간을 터미널 근처 어디에서 보내볼까 생각하다 근 반년 전에 생일선물로 받은 올리브영 상품권이 떠올라 시내에서 제일 크겠다 싶은 올리브영에 들렀다. 급히 나오다 에어팟을 두고 왔기에 왕복 10시간 버스여행을 함께 견뎌줄 백만 년 만의 유선이어폰도 고르고, 여러 이유들로 찢기고 가라앉은 영육을 조금이나마 끌어올려줄 향기로운 로션도 선정했다.

 한층 더 묵직해진 타포린백을 들쳐메고 터미널로 다시 돌아가는 길에는 오늘의 구호물품을 선사해 준 친구에게 오랜만의 안부 연락을 넣었다. 푸릇한 녹음을 배경으로 무심히 들어 올린 로션 포장재가 싱그러워 보인 만큼이나 유쾌상쾌한 친구의 답장이 이내 도착했다. 꽤 오래전 할까 말까 고민만 했던 일을 요즘 해보고 있다는 소식이었다. 건강하고 밝은 에너지가 무형의 전파를 타고 자그만 화면 너머 나에게까지 생생히 전해져 왔다.

 여유 있게 올라탄 버스에서는 천 원의 투자로 영혼까지 씻겨 내려가는 듯 시원한 맹물 오백미리를 단숨에 들이켰다. 가까스로 정신이 조금 차려진 것 같아 더 늦어지기 전에 조의를 표하는 메시지를 꾹꾹 눌러쓰고, 깜냥 이상의 부조금을 동봉했다. 


 앞으로, 앞으로만 향하는, 끝이 보이지 않는 고속도로를 달리는 버스의 맨 앞자리에 앉아서 엊저녁부터 어쩐지 사로잡혀 한곡반복을 하고 있는 노래를 뇌에 무한으로 공급했다. 그러다 보니 문득, 한낱 미물인 나에게 시시각각 일어나는 감사한 일이 너무 많아 아연실색할 지경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고개를 들었다. 세상 풍파를 정면으로 맞으며 정적인 투정들로 침잠하던 지난 몇 개월이 스쳐 지나가며 어금니를 앙다물게 되었다.

 긍정적인 사람이 혹사당하기 십상인 세상. 주변인을 모조리 긍정에너지를 뿜는 분들로 재정비해내거나, 그럴 수 없다면 주변에 쉽사리 물들지 않을 만큼 단단한 내공으로 스스로를 지켜내야 하리. 그렇지 않으면 20대 중반 시절까지 '나'를 표현하던 가장 큰 키워드 중 하나였던 '긍정'을 이대로 영영 잃어갈 것만 같다.



 오늘의 긴급 구호물품을 반년 전 사랑으로 마련해준 것뿐만 아니라 메말라가던 긍정에너지의 물꼬까지 터준 그 친구와는, 스물세 살 초봄에 서울 복판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며 만나 지금까지 돈독하게 지내는 사이다.

 그 말인즉슨 어느새 10년이 넘은 시간 동안 때로는 지구 반 바퀴 너머에서 서로를 응원하던 시기도 있었고, 지금만 하더라도 400km 거리를 두고 각자의 삶을 살아내고 있다는 것. 연간 단 1회도 대면하지 못하고 메시지나 통화로만 연락을 이어온 때도 있어왔다는 것.

 그럼에도 여전히 내게 꼭 필요한 에너지를 건네줄 수 있는 존재로 건재하다니, 어찌나 감사한 일인가.

 또 그 언젠가 누군가가 나에 대해 물었을 때 '내가 아는 사람 중에 제일 좋은 사람'이라고 답해준 적이 있었더랬다. 당시 그 말에 진심이 몇 퍼센트나 들어갔든, 지속기간이 얼마나 되었든 간에 그 짤막한 영광의 순간을 수액 삼아 기대어 떨치고 일어난 내 안의 수많은 순간들도 있었음을 어찌 감사하지 않을 수 있을까.


 고로 오늘도 부질없어질지 모를지언정 언제나처럼 이 다짐을 되새겨본다.

 내게 이미 주어진 것들에 흠뻑 적셔져 감사할 줄 아는 사람으로 살아가자고. 나아가 내 안에서 흘러넘치는 감사의 에너지로 아래, 위, 앞, 뒤, 옆을 스치는 모든 주변 이들을 촉촉이 적실 수 있도록 정진하자고.


 부고를 듣고 덩달아 무너지려는 마음을 다잡는 것을 시작으로 삶을 다시 긍정할 수 있는 에너지가 내 안에 남아 있어 다행이라 여기며, 아직 곁에 계신 소중한 분들께 더욱 감사를 표현할 수 있도록 노력해 보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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