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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랑하던 보노보노 Nov 09. 2024

익숙한 공간에 새로운 기억 덧입히기

단골집에 묻어 있는 추억 부스러기들

 나는 그 대상이 영화든 드라마든 책이든 또는 연극이나 뮤지컬이든 때론 음악이든 여행지든 간에, 완전히 새로운 무엇을 경험하는 것보다 이미 아는 것을 재차 경험하는 것을 훨씬 좋아한다. 완전히 새로운 경험도 불편하다거나 피하고 싶은 일은 아니지만, 이미 몇 차례 경험해 본 대상이라고 해서 그 대상을 내가 100퍼센트 소화했다고 생각하지 않기 때문이 큰 것 같다. 이미 안면을 튼 대상과 더욱 깊어지고 싶은 마음이, 완전한 새로움을 탐구하고픈 마음보다 거의 언제나 큰 편인 것이다.


 몇 안 되는 단골 식당도 그렇다. 딱히 한 가지 음식만을 꾸준히 탐하는 경우가 잘 없기도 하고, 지난 10년 사이에는 지역 자체도 여기저기 옮겨다니며 지내왔다 보니 일반적인 기준에서의 단골집이라 부를 만한 곳이 많지는 않다. 하지만 가끔일지라도 근처를 방문할 때면 반드시 들르는 그런 단골집이 몇 군데 있는데, 예를 들어 로마까지 갈 일만 생기더라도 웬만하면 피렌체까지 가서 꼭 먹고 오는 그런 곳 말이다.

 그런 곳에는 때론 혼자 가기도 했고, 다른 어떤 때에는 누군가와, 그리고 또 다른 때에는 다른 누군가와 가면서 그 공간에 쌓이는 나만의 추억들을 차곡차곡 덧칠해왔다. 그리 대단치 않은 일이라 여길 사람도 있겠지만, 내게는 좋은 기억으로 남아 있는 무엇을 계속해서 좋은 기억으로 이어가는 것. 심지어 더 좋은 기억을 쌓아버리기도 하는 일이 삶의 고됨을 견디는 큰 힘 중 하나가 되었기 때문이다.


 어제와 오늘은 참 오랜만에 그런 치유의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들를 일이 생긴 덕분에 꼬박 2년만에 방문한 마음의 고향 같은 동네에서, 몇 번이고 들렀던 상점에 다시 들르고 몇 번이나 먹었던 음식을 또 먹었다. 행복하고, 또 행복했다.

 생각했던대로 이루어지지 않는 상황들도 꽤 벌어졌지만 그럼에도 충만해진 마음으로 귀가하며 이런 행복에 겨운 기록을 남길 수 있어서 마음 깊이 기쁘다. 이 느슨한 리추얼들을 언제까지고 소중히 이어가기 위해서 일상으로 돌아가서도 힘을 내 살아가자고 스스로를 다독여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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