움직임을 통한 정서 조절: 고유감각훈련
우리는 지금까지 뇌와 의식의 존재이유가 바로 움직임이라는 사실을 살펴보았다. 나아가 인간이 지닌 의도가 모두 근본적으로 움직임에 기반한다는 것과 그러한 의도에 기반한 스토리텔링이 바로 의식임을 살펴보았다. 뿐만아니라 의식의 깨어있음이란 곧 움직임을 위한 준비상태이며, 모든 감정의 본질이 바로 고정된 행위유형으로서의 움직임이라는 사실도 살펴보았다. 움직임은 우리의 몸 뿐만아니라 의식도 깨어나게 한다. 이러한 사실들은 마음근력을 키우기 위한 내면소통 훈련에 있어서 움직임이 매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함을 의미한다. 일정한 움직임을 하려는 의도와 그러한 의도가 만들어내는 몸의 변화에 대해 끊임없이 명료하게 자각하고 알아차리는 과정이 곧 움직임 명상이다.
우리 몸의 움직임이 뇌에 전달되는 경로는 다양하다. 귓속의 전정기관을 통한 균형정보나 시각정보를 통한 주변 사물과 내 몸과의 관계 정보를 우리 뇌는 종합해서 나의 움직임에 대해 능동적 추론을 해낸다. 그렇기에 한발로 서서 균형을 잡을 때 눈을 감는 것 보다는 뜨는 것이 더 유리하다. 눈을 통해서 시각정보를 계속 얻는 것이 내 몸의 균형 상태에 대해 보다 많은 정보를 주기 때문이다. 그런데 전정기관이나 시각정보 이외에도 내 몸의 움직임과 관련된 매우 중요한 감각정보가 있다. 그것이 고유감각(proprioception)인데, 몸의 움직임, 위치, 자세 등에 관한 정보를 감지하는 감각 시스템이다.
우리는 계단을 걸어낼 갈 때 일일이 계단의 위치나 높이 혹은 내 발의 위치 등을 일일이 눈으로 확인하거나 하지는 않는다. 이것이 가능한 것도 바로 고유감각 덕분이다. 우리의 몸에는 시각, 청각, 후각, 미각, 촉각 등의 다섯가지 감각 기관만이 있는 것이 아니다. 몸의 위치와 자세와 움직임을 감지하는 고유감각도 있다. 눈을 감고 손을 들어 천천히 움직여보라. 나는 내손의 위치와 움직임을 알 수 있다. 시각이나 촉각이 아니라 바로 고유감각이 전해주는 정보 덕분이다. 뇌졸증으로 고유감각정보를 처리하는 뇌 부위가 손상된 환자는 움직임에 매우 큰 제약을 받는다. 근골격계나 운동신경계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어도 잘 걷지 못한다. 한걸을 떼어 놓을 때마다 계속 자기 눈으로 봐야만 발과 다리의 위치 알 수 있기 때문이다.
고유감각수용체는 근육, 힘줄, 관절 등에 분포되어 있으며 사지의 움직임과 속도, 부하량, 관절의 위치 등을 감지해낸다. 인간의 뇌는 고유감각수용체가 받아들이는 감각 정보를 시각정보와 전정기관으로 전해지는 균형정보와 통합해서 몸의 위치나 움직임, 속도 등을 종합적으로 파악한다. 이를 통해 우리는 팔 다리의 위치, 움직임의 방향, 근육에 걸리는 부하량, 빠르기 등에 대한 정보를 얻는다. 한마디로 내 몸이 어떻게 움직이고 있는지에 대해 실시간으로 알 수 있게 하는 감각으로, 움직임과 의식을 연결시켜주는 중요한 신경시스템이라 할 수 있다. 고유감각 덕분에 우리는 자연스럽게 걷고, 뛰고, 운동할 수 있다.
내부감각훈련과 마찬가지로 고유감각에 대한 자각 능력을 높여주는 고유감각훈련은 감정조절능력을 크게 향상시켜준다. 편도체가 활성화되어 부정적 정서가 유발되는 순간에는 많은 부위의 근육들이 자신도 모르게 습관적으로 긴장되게 마련이다. 이것을 알아차리는 것은 감정조절능력 향상에 결정적인 도움을 준다. 현대 뇌과학은 고유감각에 대한 자각능력을 향상시키면 감정에 대한 인지능력과 조절능력이 향상되고 트라우마 스트레스 장애나 불안장애 우울증 등의 증상 개선에도 도움이 된다고 밝혀내고 있다 (Shafir, 2016; Nan, Hinz, & Lusebrink, 2021; Froeliger et al., 2012).
감정적 고유수용감각이라는 개념을 제안하면서 얼굴 근육이 감정을 조절하는데 있어서 핵심적 역할을 한다는 것을 밝힌 연구도 있다. 보톡스 주사를 통해 얼굴 근육을 특정한 방식으로 조절시킴으로써 우을증 증세를 완화시킬 수 있음을 보인 것이다(Finzi & Rosenthal, 2016). 사실 얼굴 근육이 우울증 치료에 있어서 중요한 것은 우리가 이미 자세히 살펴본 것처럼 뇌신경(cranial nerve)의 일부이기 때문이다. 얼굴 근육 뿐만아니라 뇌신경계와 직접 관련된 여러 근육들(흉쇄유돌근, 승모근, 혀와 턱근육, 안구 근육 등)도 체계적인 방식으로 움직이고 이완시킴으로써 부정적 정서 유발 습관을 완화시킬 수 있을 것이다.
고유감각의 활성화를 낮추면 과도한 부정적 정서 유발을 억제할 수 있다는 사실은 수십년전부터 알려져 왔지만(Gellhorn, 1964), 고유감각 훈련을 통해서 트라우마나 정서조절장애를 본격적으로 치료하기 시작한 것은 비교적 최근의 일이다. 그 선두 주자 중의 하나가 타이치, 기공, 요가 등의 동작을 이용해서 "소마틱 경험"(Somatic Experiencing: SE) 요법을 개발한 르빈과 페인이다(Payne, Levine & Crane-Godreau, 2015). 이들은 움직임에 대한 내적인 알아차림을 강조하면서 근육과 움직임에 집중하는 고유감각훈련과 내장(visceral)의 느낌에 내부감각(interoception)훈련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특히 르빈은 오래전부터 트라우마가 인지적 혹은 감정적 경험을 통해서는 치료가 어려우며 몸과 움직임에 집중할 필요가 있음을 역설해온 바 있다. 특히 트라우마 장애란 마치 뚜껑이 꼭 닫힌 주전자 속에서 물이 펄펄 끓고 있는 것처럼 부정적 정서로부터 야기된 폭발적인 내적 에너지가 몸안에 갇혀있는 상태이므로 적절한 몸의 움직임을 통해서 마치 뚜껑을 조끔씩 열어주는 것처럼 감정적 에너지를 조금씩 배출해내야 한다는 독특한 주장을 펼치기도 했다 (Levine, 1997; 2010).
그 밖에도 많은 연구들이 고유감각 훈련의 성격을 지닌 움직임 명상의 불안장애 치료에 대한 효과를 입증했다. 한 메타 분석 연구에 따르면, 움직임 명상의 효과에 대한 무선배치 실험(randomized controlled trials: RCTs)을 실시했던 36개의 연구 중에서 25개의 실험에서 확실한 효과가 발견됐다. 움직임 명상이 가만히 앉아서 하는 명상보다 더 큰 효과가 있음이 입증된 것이다. 그리고 개인별 명상 훈련보다는 그룹 훈련이 더 큰 효과를 보였다. 한편 부작용은 어떠한 실험에서도 보고되지 않았다(Chen et al., 2012). 또 다른 메타분석 연구에서는 67개의 무선배치실험 결과를 분석했는데, 움직임 명상은 불안장애와 우울증에 대부분 효과가 있었다. 그 중 6개 실험은 면역과 염증 반응 조사도 포함되었었는데, 모두 코르티졸, 싸이토킨, CRP, 이뮤노글로빈-G 등의 수치가 유의미하게 낮아진 것으로 나타났다. 고유감각 훈련과 내부감각 훈련의 요소를 모두 지닌 타이치와 기공의 효과는 거의 동일하게 나타났다(Jahnke, et al., 2010).
한편 다트머스 의과대학의 페인 교수팀은 타이치, 기공, 하타 요가, 알렉산더테크닉, 펠덴크라이스 요법 등 다섯가지의 소매틱 운동을 "명상적 움직임(meditative movement: MM)"이라 개념화하여 우울증과 불안장애 치료에 적용하기도 했다(Payne & Crane-Godreau, 2013). 트라우마와 만성스트레스 환자에 대해서도 명상적 움직임을 통해 고유감각과 내부감각에 반복적으로 집중하도록 훈련시킴으로 유의미한 효과를 보았다(Schmalzl, Crane-Godreau & Payne, 2014).
엄밀하게 말하자면 고유감각 훈련이나 운동 명상의 효과를 입증하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단지 움직임 명상이 부정적 정서 완화에 도움이 준다는 사실을 밝히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왜냐하면 고유감각 훈련이나 움직 명상이 부정적 정서 완화에 도움을 주었다고 할 때, 그것의 주된 원인이 규칙적인 호흡의 결과인지, 고유감각에 집중한 알아차림의 효과 덕분인지, 아니면 그냥 일정 시간 긴장을 푼 명상의 효과인지, 혹은 평소 운동 안 하던 사람이 그나마 운동을 좀 규칙적으로 해서 혈액순환이 잘 되어서 생긴 일종의 운동 효과인지, 또는 여러 사람과 함께 어울리면서 운동을 한 덕분에 긍정적 정서 레벨도 높아지고 사회적 친분 관계도 맺었기 때문인지, 또는 그냥 플라시보 효과 덕분인지 등을 가려내기란 매우 어렵기 때문이다. 이러한 모든 가능성을 다 고려해야만, 즉 부정적 정서완화 효과를 가져올 만한 모든 변인들을 모두 통제한 상태에서 고유감각 훈련의 효과만을 정확하게 살펴볼 수 있는 실험 디자인을 해야만 운동명상의 효과를 입증했다고 할 수 있는 것이다. 또 다른 방법으로는 뇌영상 연구의 도움을 받을 수도 있다. 운동명상이 부정적 정서 완화와 관련된 뇌의 변화를 가져온다면 상당한 정도로 효과를 입증했다고 볼 수 있다.
움직임 명상에 관한 많은 연구 결과들에 대한 한 메타분석은 특히 소매틱 훈련이 부정적 반추(rumination)와 관련된 뇌 부위를 안정화시키는데 매우 효과적임을 보여주고 있다(Payne & Crane-Godreau, 2013). 특히 소매틱 명상은 부정적 반추로부터 지금-여기에 집중하는 현재지향적 알아차림으로 뇌의 활성화패턴을 바꾸는데 큰 효과가 있다. 불안장애나 우울증 등 정서조절 장애의 특징적인 증상 중에 하나는 부정적 사건에 대한 기억이나 나쁜 경험을 끊임없이 반추하는 것이다. 일종의 부정적 내면소통의 습관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명상을 하게 되면 후방대상피질 (posterior cingulate cortex:PCC)이나 설전부(precuneus) 등 자기부정적 강박 사고와 관련된 뇌 부의의 활성화가 현저하게 줄어든다. 그와 동시에 인지조절력이나 주의력과 관련이 깊은 전전두엽 피질 부위들(dlPFC, mPFC)이 활성화된다. 이미 앞에서 살펴보았듯이 이러한 뇌부위는 마음근력의 기본이 된다. 특히 고유감각이나 내부감각 등 나의 내면의 감각에 집중하는 훈련은 현재 나에게 일어나는 일에 대해 주의를 집중하는 능력과 관련된 디폴트모드네트워크(DMN)를 활성화시킨다. 자신의 부정적 경험을 자꾸 반추하는 시스템은 디폴트모드네트워크가 활성화되면 약해진다(Brewer et al., 2011).
고유감각훈련 - 실습
장력운동
고유감각에 집중하는 훈련의 핵심은 움직임 속에서 내 몸이 주는 여러 신호를 주의 깊게 관찰하는 것이다. 대표적인 것이 요가, 필라테스, 스트레칭과 같은 장력운동이다. 이러한 운동을 할 때 주의할 점은 특정한 자세를 외형적으로 따라하려고만 해서는 유연성만 향상될 뿐 고유감각 훈련의 효과는 생겨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고유감각 훈련의 목표는 특정한 자세를 비슷하게 흉내내는 데 있지 않다. 그 보다는 특정한 자세를 취하기 몸을 움직이는 과정 속에서 내 몸이 나에게 주는 다양한 신호들을 명료하게 알아차리는 데 집중해야 한다. 가장 중요한 것은 근육과 관절들이 주는 느낌에 계속 주의를 집중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단 한순간도 호흡을 놓쳐서는 안된다. 자세 그 자체보다 더 중요한 것이 호흡을 놓치지 않고 따라가는 것이다. 내가 숨을 들이쉬고 있을 때에는 "들이쉬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려야 하며, 내쉬고 있을 때에는 "내쉬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려야 한다. 매 호흡 그렇게 해야 한다. 그리고 한 호흡 한 호흡마다 내 몸의 어느 부위에서 어떠한 감각이 느껴지는가에 집중해야 한다.
근력운동
고유감각 훈련은 장력 운동을 통해서만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웨이트 트레이닝과 같은 근력 운동을 통해서도 할 수 있다. 같은 동작을 반복하는 근력운동을 할 때에도 호흡을 놓치지 않으면서 동작 하나 하나에서 근육과 관절에 느껴지는 느낌에 순간 순간 계속 집중하면 된다. 고유감각수용체는 근육에 많이 분포되어 있기 때문에 어떠한 근력운동을 통해서 효과적인 고유감각훈련을 할 수 있다. 근육의 움직임과 부하에 집중하면서 근육을 수축시킬 때 뿐만아니라 이완시킬 때에도 긴장을 풀지말고 움직임이 주는 미세한 느낌까지 알아차릴 수 있도록 집중한다면 훨씬 더 큰 근력운동의 효과를 얻을 수 있다.
유산소 운동
유산소 운동을 통해서도 물론 고유감각 훈련을 할 수 있다. 달리기를 할 때에도 호흡에 집중하면서 꼬리뼈부터 정수리까지 일직선을 유지하면서 긴장을 푼다. 목과 어깨와 팔과 다리와 몸통 그 어느 부분도 긴장되는 부분이 없도록 살피면서 호흡에 맞추어서 달리는 것이 요령이다. 특히 복부의 긴장을 풀고 배를 되도록 툭 풀어준다는 느낌으로 달린다. 머리는 편안하게 곧게 세워서 정수리가 계속 하늘쪽으로 올라간다는 느낌을 갖도록 한다. 한편 승모근이 긴장되어 어깨가 들어올려지지 않도록 계속 어깨를 툭 떨어 뜨린다. 귀와 어깨가 점점 멀어진다는 느낌을 갖도록 한다. 5분 정도 달리게 되면 호흡은 점차 안정되기 마련이다. 이 때부터 발바닥이 지면에 닿는 느낌, 팔과 다리에 전달되는 다양한 감각, 얼굴을 스치는 바람, 팔의 움직임이 주는 느낌 등 모든 감각을 되도록 한꺼번에 다 알아차릴 수 있도록 집중한다.
한걸음 한걸음 달릴 때마다 발바닥에 전해지는 느낌이 매번 조금씩 달라지는 것도 알아차리도록 한다. 그러다보면 호흡은 점차 편안해지고 규칙적으로 된다. 케이던스는 분당 180 걸음 정도로 유지하는 것이 자연스럽다. 허리가 펴지고 나는 편안히 명상하고 있는데 나의 두 다리가 저절로 쭉쭉 펼쳐지면서 앞으로 나아가는 듯한 느낌도 난다. 지면을 딛는 발바닥에 실리는 체중이 점점 더 가벼워지는 듯한 감각도 생긴다. 발바닥부터 발목, 무릎, 고관절, 허리, 등, 목 등의 주요 관절이 부드럽고 자유스러워진다. 마치 부드러운 구름 위를 달리는 듯한 느낌이 든다. 어디를 언제까지 가야한다는 의도는 없다. 그냥 지금 여기서 나는 오롯이 존재하며 호흡하고 있을 뿐이다. 지극한 행복감이 온 몸에 퍼져간다. 이것이 달리기 명상이다. 사실 걷기 명상보다 달리기 명상이 훨씬 더 집중도 잘되고 명상의 효과도 크다.
수영: 물속 명상
유산소 운동을 통한 고유감각 훈련 중에서 단연 최고는 수영이다. 물속을 떠가는 수행은 전통적으로 명상의 한 종류로 여겨져왔다. 내 몸에 느껴지는 감각에 집중하는 자각훈련에 있어서 물 속에서 하는 움직임 명상 여러가지 면에서 효율적이다. 일상생활에서는 느낄 수 없는 새로운 감각 신호들이 엄청 밀려들기 때문이다. 우선 물에 들어갔을 때 몸 전체에 물이 닿는 느낌이 있다. 그리고 물 속에서는 근육과 관절에 전해지는 중력의 느낌이 매우 다르다. 한마디로 가벼워진다. 동시에 물에서의 움직임은 공기에서의 움직임보다는 훨씬 더 저항이 세다. 따라서 배나 가슴정도 높이까지 오는 수영장 물속에 들어가서 걸어다닌 것만으로도 엄청난 고유감각 훈련을 할 수 있다. 수영장 한쪽 끝에서 반대편 쪽으로 천천히 일직선으로 걷기만 하면 된다. 몸의 중심을 잘 유지하면서 똑바른 자세로 걷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이 때 다리와 팔에 전해지는 느낌, 물 속에서의 체중이동의 느낌, 바닥에 닿는 발바닥의 느낌 등등에 전적으로 집중하면서 호흡을 놓치지 않는다면 훌륭한 움직임 명상이자 고유감각 훈련이 될 수 있다.
수영을 하면서도 물론 움직임 명상을 할 수 있다. 우선 물에 떠가는 느낌을 얻을 수 있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물에 모든 것을 맡기는 듯한 마음으로 수영을 시작해야 한다. 모든 것을 내려놓는 듯한 느낌으로 온 몸에 힘을 빼고, 물에 몸을 전적으로 내맡김으로써 물에 저항하지 않을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 뜬다. 무위자연의 느낌이다. 아무것도 안해도 뜨는 느낌이 있어야 한다.
물에 빠지지 않기 위해서 허우적거리는 것은 수영이 아니다. 물을 거부하고, 물에 저항하며, 강한 팔다리의 힘으로 물을 이겨내며 물살을 헤쳐가야겠다는 마음으로는 어깨와 팔과 다리와 목과 온 몸에 강한 긴장이 들어갈 수 밖에 없다. 물에 저항하지 않는 법을 먼저 터득해야 한다. 물을 받아들여야 물도 나를 받아들이는 이치를 몸으로 체득해야 한다. 물에 뜨는 느낌이 나면 부드럽게 물속의 미끄러져가면 된다. 물이 피부에 닿는 느낌을 즐길 수 있어야 한다. 물이 내 온몸을 받쳐주고 부드럽게 미끄러져가는 듯한 느낌을 계속 느끼도록 한다. 이 때 물과 나는 싸우지 않는다. 자유형을 예로 들자면, 팔젓기하는 손과 팔은 부드럽게 물밖으로 나왔다가 다시 조용히 물속으로 들어간다. 첨벙대고 물방울이 온데 다 튀기는 일은 없다. 엉덩이와 다리는 물 속에서 부드럽게 움직인다. 그래야 물속을 부드럽게 미끄러지며 뚫고 가는 듯한 느낌이 난다. 특히 목에 힘이 완전히 빠져 있어야 한다. 그래야 머리가 물에 뜨는듯한 느낌을 즐길수 있게 된다. 몸통이 고정된 상태에서 팔을 휘젓는 것이 아니다. 몸 전체의 몸통 회전이 자연스럽게 일어나서 부드러운 롤링을 만들어지고 그러한 롤링의 결과로서 팔젓기가 자연스럽게 일어나는 것이다. 호흡 역시 마찬가지다. 고개를 수면 위로 들지 않는다. 고개를 수면위로 들면 목과 어깨에 힘이 들어가고 고개를 드는 만큼 몸은 가라앉게 되어 있다. 호흡을 위해서는 머리 전체가 물위에 떠 있는 느낌을 유지한 채로 롤링과 팔젓기에 의해 고개가 부드럽게 살짝 돌리면 된다. 고개를 드는 것이 아니라 돌리는 느낌이 중요하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입은 수면 밖으로 나와 호흡을 들이마실 수 있게 된다. 입의 반정도만 수면 위로 나와도 된다. 머리를 돌리는 들숨의 순간에도 바치 베개를 베고 편안히 누워있는 듯한 느낌으로 물 위에 머리를 내맡겨 뜨도록 해야 한다. 오른쪽이든 왼쪽이든 계속 한쪽으로만 숨을 쉬어도 되고, 세번 스트로크에 한번 고개돌려 숨쉬는 식으로 좌우로 번갈아 호흡을 해도 된다. 물론 네번 스트로크에 한번씩 숨을 쉬는 긴 호흡을 가져가도 된다. 처음 물속 명상 훈련을 할 때에는 숨을 쉬지 않고 고개를 물속에 뜨도록 하는 훈련을 먼저 하는 것도 좋다. 처음에는 호흡을 하지 않고 해야 몸이 떠가는 느낌을 더 쉽게 잘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물 밖에서의 움직임과 물 속에서의 움직임은 전혀 다른 감각 신호를 우리 몸에 준다. 이 상태를 유지하면서 온몸에 전해지는 물의 느낌, 물속을 미끄러져가는 느낌, 떠있는 느낌 등의 감각에 집중하면서 자연스레 호흡에 집중하면 효과적인 고유감각 훈련이 된다. 이렇게 수영 명상을 하게되면 훨씬 더 쉽고 편하게 또 훨씬 더 빠르게 수영할 수 있게 된다. 이와 비슷한 개념의 수영법은 토털 이머션(Total Immersion: TI) 영법이라고 널리 알려져 있다. TI 영법을 개발한 사람들이 물속 명상이나 고유감각 운동을 강조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보다 쉽고 빠르게 배워서 사람들이 편하게 장거리 수영을 할 수 있는 영법으로 개발한 것이다(Laughlin & Delves, 2004). 하지만 TI 영법의 기본 개념은 전통적인 물속에서의 움직임 명상에 닿아있다고 볼 수 있다. 그런데 사실 TI 영법의 내용을 살펴보면 물에 푹 잠긴다기보다는 모든 것을 다 받아들이고 물에 저항하지 않는 것이 핵심이라 할 수 있다. 따라서 TI 보다는 TA (Total Acceptance) 혹은 토털 억셉턴스 영법으로 부르는 것이 더 적절하리라는 생각을 해본다.
고대진자운동 - 페르시안 밀, 메이스벨, 케틀벨
가장 강력한 고유감각 운동으로는 고대진자운동을 들 수 있다. 페르시안 밀이나 메이스벨(가다) 혹은 케틀벨의 스내치와 같은 고대진자 운동은 기본적으로 자연스러운 진자운동에 몸의 움직임을 맞추어 가는 동작으로 구성되어 있다. 중력에 따라 이루어지는 진자운동이기에 일정한 시간 간격에 따라 리드미컬하게 반복적으로 몸 전체가 좌우 혹은 위 아래로 움직이게 된다. 흔히 페르시안 요가라고도 불리우는 페르시안 밀과 인도 요가수행자들이 하던 가다를 개량해서 만든 메이스 벨의 공통점은 진자운동에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래서 나는 이 둘을 한데 묶어서 고대진자운동이라고 부르고자 한다.
한편 케틀벨의 역사 역시 매우 오래되었다. 세계 각국에서 수천년전부터 돌로 만든 케틀벨 비슷한 운동기구를 저마다 사용한 듯 하다. 케틀벨의 대표적인 운동방법은 케틀벨 두 개를 머리 위로 번쩍 치켜드는 저크, 케틀벨을 가슴쪽으로 들어올리는 클린, 그리고 한 손으로 머리 위로 들어올리는 스내치 등이 있다. 이 중에서 클린 동작이나 특히 스내치와 같은 동작 역시 일종의 진자운동이라 볼 수 있다. 따라서 우리는 케틀벨까지 포함시켜서 페르시안 밀, 메이스벨, 케틀벨 이 세 가지를 고대진자운동이라 부를 수 있을 것이다.
케틀벨의 스내치 역시 진자 운동이다. 페르시안 밀이나 메이스벨에는 긴 방망이 끝에 무게중심이 달려있는 구조이지만 케틀벨은 무게추만이 있으므로 내 팔과 몸통을 일종의 긴 방망이처럼 사용해야 한다. 스내치에서 케틀벨을 내리는 동작에서는 무게추가 거의 자유낙하 운동을 하는 것처럼 팔의 힘을 빼야 한다. 오른손으로 스내치를 하는 경우라면 오른쪽 어깨를 고정점으로 해서 허리를 펴고 팔을 다리 사이 뒤 편으로 쭉 뻗어서 케틀벨이 두 다리 사이를 거쳐 엉덩이 뒤편으로 진자운동을 할 수 있도록 한다. 엉덩이 뒤 최고점에 이르렀던 케틀벨이 진자운동을 통해 다리 사이를 거쳐 몸 앞쪽으로 오는 순간, 최저점을 가장 빠른 속도로 지나는 순간 허리를 펴고 일어서면서서 팔을 머리 위로 들면 스내치 동작이 완성된다. 다시 머리 위에 있던 손을 자연스럽게 떨어뜨리면서 허리를 숙이면서 팔을 엉덩이 뒤로 펴주면 진자운동은 계속 반복된다.
진자 운동의 핵심은 끝에 달려 있는 무게추의 진자의 움직임과 몸의 움직임을 조화롭게 연동시키는 것이다. 진자 운동의 끝에는 무게가 사라지는 지점이 있다. 무게추의 운동 속도가 0이 되는 최고점이다. 반면에 최저점에서는 무게추의 가장 속도가 빠르고 따라서 몸에 전해지는 저항도 강하다. 그 무게를 체중 이동을 통해 온몸으로 받아내면서 무게추가 다시 점차 느려지다가 속도와 무게가 모두 사라지는 바로 그 순간에 살짝 당겨서 어깨나 머리 위에 올려 놓는 것이다.
페르시안 밀은 보통 나무로 만들어진 커다란 방망이를 가르킨다. "밀"은 방망이란 뜻이다. 손잡이로부터 아래로 갈수록 두꺼워져 방망이 끝 부분에 무게중심이 있다. 그것을 양손에 하나씩 들고 어깨 뒤로 넘겨서 등 뒤에서 진자 운동을 시킨 후에 다시 원위치로 끌어온다. 왼손에 든 방망이는 방패를, 오른 손에 든 방망이는 칼을 상징하기도 한다. 한 손으로 방패를 들고 막은 상태에서 다른 손으로 칼을 들어올려 내리치는 모습과 비슷하다. 오른손으로 돌린 후에는 이번에는 오른손에 든 방망이를 방패 삼고 왼손에 든 방망이를 등뒤로 돌려서 칼로 내려치듯이 끌어내린다. 그리고 이것을 좌우로 계속 반복한다.
페르시안 밀의 핵심은 등뒤에서 진자운동을 일으키는 방망이에 있다. 등뒤에서 자연스럽게 진자운동이 만들어지려면 손을 목뒤로 가져가면서 동시에 방망이의 무게중심이 자유낙하 운동을 할 수 있도록 손과 손목의 힘을 빼야한다. 방망이가 바닥으로 떨어지지 않을 정도로만 살짝 잡고 있으면서 완전히 힘을 빼야한다. 동시에 체중을 이동시키면서 몸통의 회전의 일으킨다. 방망이의 자유낙하 운동은 목 뒤에 있는 손목을 고정점으로 해서 진자운동을 일으키는데 그 토크를 몸통의 회전과 체중이동을 통해 가속시킨다. 오른손에 든 방망이를 오른쪽 어깨 넘어 등 뒤로 떨어뜨리면서 오른손을 목뒤에 고정시키면 방망이 아래 쪽의 무게 중심부분이 진자운동을 일으킨다. 그 때 체중을 오른발로 옮기면서 몸의 정면이 왼쪽을 바라보도록 몸통을 회전시키면 등 뒤 왼쪽 부분으로 떨어졌던 방망이의 무게 중심은 등 뒤 오른쪽으로 진자운동으로 움직이게 된다. 방망이 끝부분의 무게중심이 오른쪽 등 뒤로 올라오는 순간 방망이의 무게는 거의 사라지면서 속도는 느려진다. 진자운동에서는 최저점에서 가장 속도가 빠르고 강한 무게가 느껴지지만 움직임의 정점인 최고점에서는 추의 속도는 느려지고 무게도 가벼워진다. 바로 그 순간에 몸을 부드럽게 왼쪽으로 틀면서 목뒤에 있던 오른손을 앞쪽으로 당기면 아주 적은 힘으로도 방망이를 당겨올 수 있다. 연이어서 이번에는 왼손으로 들고 있는 방망이를 왼쪽 어깨 뒤로 넘겨서 목 뒤에 손을 고정하고는 힘을 툭 빼서 방망이의 무게중심이 오른쪽 등 뒤에서 왼쪽 등 뒤로 진자운동을 일으키도록 한다. 동시에 체중을 왼발로 옮기면서 몸통은 오른쪽을 보도록 회전시킨다. 그리고 마찬가지로 왼쪽 등 뒤에 방망이의 무게중심이 다다를 쯤에 왼쪽 어깨너머로 가볍게 당겨온다. 그리고 이것을 계속 반복한다.
메이스벨은 원래 인도의 요가 수행자들이 수천년전부터 해오던 "가다"라는 이름의 운동기구다. 대나무 끝에 돌을 매달아 두 손으로 잡고 등 뒤로 돌리는 식으로 운동한다. 가다는 원래 인도의 원숭이 신인 하누만 신이 들고 다니는 일종의 무기다. 서유기의 손오공이 휘두르던 여의봉이 바로 가다다. 서양으로 전해져서는 쇠파이프 끝에 둥근 무게 추를 단 형태로 보급되었고 흔히 메이스벨이라고 불리운다. 마치 커다란 막대사탕과 같은 모양의 메이스벨 역시 페르시안 밀처럼 등뒤로 돌린다. 한손으로도 할 수 있지만 보통 두 손으로 막대 끝을 잡고 무게 추를 등 뒤로 넘겨서 두 손을 목 뒤에 고정시킨 채 진자 운동을 일으킨다. 왼쪽어깨 너머로 무게 추를 넘겨서 왼쪽 등 뒤에서 오른쪽 등 뒤로 진자운동을 발생시켜 오른쪽 어깨 쪽으로 끌어 왔다가 다시 오른쪽 어깨 뒤쪽으로 넘겨서 오른쪽 등 뒤에서 왼쪽 등 뒤로 진자운동을 시킨 후에 왼쪽 어깨 쪽으로 끌어온다. 그리고 이것을 반복한다. 이밖에도 얼굴 앞에 무게 추가 오도록 수직으로 세웠다가 등뒤로 넘겨서 다시 얼굴 앞으로 오게하는 방법도 있다. 어느 방법이든 메이스벨의 추는 등 뒤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진자운동을 일으킨다. 그리고 진자운동의 최고점, 즉 추의 움직임의 속도가 가장 느려지고 동시에 가장 가벼워지는 지점에서 가볍게 당겨온다는 것은 페르시안 밀과 똑같다.
고대 페르시아 전사들이 했다는 페르시안 밀이나 인도 요가수행자들이 했다는 메이스벨의 운동방식은 놀라우리만치 비슷하다. 도구의 생김새는 상당히 다르지만 그것을 다루는 방법은 거의 같다. 핵심은 등 뒤에서 진자운동을 일으키는 것인데 그러기 위해서는 진자운동의 리듬에 몸의 움직임을 맞춰야 한다. 또는 체중이동이나 몸통의 회전 등 몸 전체의 리드미컬한 움직임을 통해 진자운동을 만들어내야 한다. 결국 진자운동과 몸 전체의 움직임이 조화롭게 하나가 되어야 한다. 보통 웨이트 트레이닝에서 덤벨이나 바벨을 다루는 방식과는 완전히 그 개념이 다르다. 덤벨 운동은 대부분 단관절 운동이다. 즉 온몸을 고정시킨채 자극을 주려는 근육만을 고립적으로 움직이는 다양한 동작으로 이루어져 있다. 추의 무게를 특정한 근육에 부하를 걸어주는 것이 보통의 웨이트 트레이닝이다. 그러나 고대 진자 운동은 몸 전체의 움직임으로 추의 움직임과 하나가 되어 움직인다. 그렇기에 단관절 운동인 덤벨로는 도저히 들 수없는 무거운 무게를 등뒤로 가볍게 돌린다. 게다가 긴 막대 끝에 무게 중심을 매달아 놓아 토크를 대폭 증폭시킨 상태에서 수백번의 진자운동을 반복하기도 한다.
고대진자운동은 온 몸의 고유감각을 총동원해야 해낼 수 있는 운동이다. 다른 일반적인 근력운동들과 비교했을 때 고대진자운동의 가장 큰 특징은 시각이나 다른 감각정보가 아니라 거의 전적으로 고유감각에 의지해서 이루어지는 운동이라는 데 있다. 페르시안 밀이든 메이스 벨이든 진자 운동을 직접 눈으로 보면서 통제하지 않는다. 방망이의 주된 움직임은 등 뒤에서 일어나기에 눈으로 보고 통제할 수가 없다. 손과 손목을 통해 전해지는 느낌만으로 진자운동의 정보를 전부 얻어내서 온 몸의 움직임을 그에 맞추어야 한다. 팔, 어깨, 등, 몸통, 다리, 그리고 발바닥까지 전해지는 무게를 고유감각을 통해 얻어내야만 한다. 그래야 진자 운동의 리듬에 맞춰서 체중이동과 몸통의 회전을 조화롭게 이뤄낼 수 있다.
고대진자운동의 고유한 특징은 다음과 같이 정리해볼 수 있을 것이다. 일정한 리듬에 맞추어서 몸의 좌우 회전이나 좌우 교대를 반복적으로 이뤄낸다. 추의 무게 (중력)를 사용해서 진자운동을 일으키는데 몸은 진자 운동을 통제한다기 보다는 자연스러운 추의 움직임을 도와주고 보호함으로써 추의 움직임과 조화로운 하나가 된다. 그러기 위해서는 팔 다리 보다는 코어 근육의 활용이 더 중요하며 몸의 긴장을 계속 풀어야 한다. 일시에 한번 근육에 힘을 주는 것이 아니라 부드럽고도 지속적으로 반복적이고도 규치적인 움직임을 만들어 낸다.
페르시안 밀이나 메이스벨 운동은 겉에서 얼핏 보기에는 손과 팔로 돌리는 것 같이 보이지만 실제로 해보면 온 몸의 리드미컬한 움직임으로 돌려야한다는 것을 금방 알 수 있다. 자연스러운 진자 운동을 방해하지 않으면서 내 몸을 움직여야하기 때문에 사실 내가 방망이를 돌리는 것인지 방망이가 나를 움직이게 하는 것인지 구분하기조차 어렵다. 그야말로 대상과 내가 하나가 되어야 이뤄낼 수 있는 움직임이고, 이러한 움직임을 온 몸의 감각을 통해 이뤄내야하기 때문에 고유감각을 활용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고대진자운동이야말로 고유감각을 발달시키기 위한 최고의 운동이라 할만하다. 페르시안 밀을 다루는 페르시안 요가나 인도 요기들이 사용하던 가다(메이스벨)이 전통적으로 마음을 다스리는 운동으로 전해져 내려온 이유는 분명하다. 모두 강력한 고유감각 훈련이기 때문이며 또 동시에 효과적인 EMDR 훈련의 요소까지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고대진자운동은 몸의 고유감각을 이용한 마음근력훈련의 정수다.
타이치- 고유감각훈련과 내부감각훈련의 종합판
장신경계를 중심으로 한 내부감각 훈련(interoceptive training)을 강조하는 전통적인 움직임으로 타이치, 기공, 쿤달리니 요가 등이 있다. 이러한 움직임 모두 내적인 에너지에 대한 자각 능력을 키우는 것에 중점을 둔다. 이를 통해 미주신경계를 활성화시킨다(Gerritsen & Band, 2018). 사지의 움직임을 통해 횡경막이나 내장의 움직임을 유도하고 그러한 움직임 가져오는 느낌을 자각하게 한다.
타이치는 손과 발의 외적인 움직임을 통해 내장의 에너지와 교감하는 동작이 많다. 실제로 타이치의 투로를 반복하다보면 온 몸의 긴장이 풀리며 내면적인 에너지의 흐름이 느껴진다. 동작의 연결 속에서 내장의 움직임이 느껴지며 나아가 골반과 고관절을 통해 내장의 무게가 그대로 발바닥에 전달된다. 동작은 조용하고 부드럽지만 강한 힘이 느껴진다. 내장으로부터의 에너지를 한순간에 손이나 발, 어깨 등으로 자연스레 뿜어내는 것이 발경이다. 이때 꼬리뼈를 중심으로 한 몸의 기본축은 고정되어 있다. 움직이지 않는 중심점에서 힘이 나온다. 꼬리뼈부터 정수리까지 일직선상에 복부가 똑바로 놓인다. 복부와 꼬리뼈가 일직선 상에서 완벽한 균형상태를 유지하는 입신중정(立身中正)의 상태에 들어서면 뇌신경계와 관련된 모든 근육 부위들이 편안하게 이완된다. 긴장은 불균형에서 오지만 균형을 잡으면 이완된다. 어깨와 팔꿈치도 이완되어 툭 떨어뜨리는 느낌의 침견추주(沈肩墜肘)를 하게되면 승모근과 흉쇄유돌근도 이완된다. 이러한 균형과 이완 속의 움직임을 얻으려면 내 몸이 주는 감각 신호에 주의깊고 명료하게 집중해야 한다. 타이치가 고유감각 훈련인 이유다. 타이치에서 강조하는 입신중정이나 침견추주는 고대진자운동이나 물 속 명상의 움직임에서도 그대로 강조된다.
타이치의 투로 동작은 번개같이 빠르게 움직이는 부분도 아주 간혹 있지만 대부분은 매우 천천히 움직이게 된다. 그 이유는 움직임에 관한 의도 정보와 움직임이 가져오는 결과로서의 감각정보를 면밀하게 자각하면서 움직이기 때문이다. 일반적인 운동이나 움직임에서는 일정한 결과를 기대하는 "의도"를 실현하기 위해서 움직인다. 공을 제대로 맞추거나 상대방을 제대로 타격하겠다는 "의도"를 위해 움직이는 식이다. 그러나 타이치 훈련에서는 나의 의도가 나의 몸을 통해 어떻게 순간순간 드러나는가를 관찰하고 또 관찰한다. 의도만큼이나 중요한 것이 내 몸 내부로부터 느끼지는 감각이다. 그것이 "기"일수도 있도 다른 어떤 에너지일수도 있다. 타이치 투로에서의 움직임은 외부 세계의 어떤 대상을 향하는 움직임이라기보다는 나의 내부로 향하는 움직임이다. 따라서 움직임을 통해 나의 의식으로 나아가는 엄청난 자기참조과정의 여정이다. 타이치가 강력한 마음근력 훈련일 수 밖에 없는 이유다.
고요함과 텅 비어있음으로 꽉 차있는 나의 의식으로 향하는 움직임이기에 타이치의 모든 동작은 고요하다. 공간 속에서 움직임이라기보다는 움직임을 통해 새로운 공간이 만들어지는 그런 움직임이다. 고요함과 공간 속에서 나의 의도와 감각이 한데 어울어지는 그런 움직임이다. 그러면서도 나의 주의는 끊임없이 나의 내부를 향한다. 보다 구체적으로는 나의 내장과 관절로 향한다. 관절은 고정된 실체가 아니다. 뼈와 뼈가 관계맺고 있는 텅 빈 공간일 뿐이다. 내장 역시 마찬가지로 그 본질은 텅 비어 있다. 그 비어있음으로 되돌아가는 움직임 속에서 강력한 에너지가 느껴진다.
한편, 타이치는 입신중정을 유지하면서도 끊임없이 좌우로 체중이동을 하면서 동작을 이어나간다. 사실 타이치의 강력한 에너지는 바로 체중이동에서 나온다고도 볼 수 있다. 타이치의 동작 중 체중이 양발에 5:5로 고르게 실리는 경우는 거의 없다. 투로의 모든 동작은 왼발과 오른발이 허실을 번갈아 담당하면서 체중이동이 진행되고 그에 따라 시선이나 몸통의 방향도 좌우를 번갈아 보게 된다. 나아가 몸의 회전을 통해 동서남북의 여덟방향과 상하의 움직임까지 아우른다. 타이치는 고유감각과 내부감각 훈련의 결정판일 뿐만아니라 그야말로 포괄적이고도 입체적인 SF-EMDR의 완결판이라 할 만 하다. 무수히 많은 연구들이 타이치가 불안장애, 스트레스, 트라우마장애 등에 유의미한 효과가 있음을 보고하고 있다.
기공과 요가
타이치나 기공의 여러 동작들은 고유감각 뿐만아니라 내장의 움직임에 집중하게 함으로써 내부감각을 명확하게 느끼게 해 준다. 토납법 등의 호흡법이나 상하좌우와 대각선으로 사지를 움직여 내부 감각을 계속 일깨우는 오금희 등의 동작은 내부감각에 대한 자각 능력을 효과적으로 키워준다. 단전호흡이나 쿤달리니 요가의 불의 호흡(breath of fire) 역시 내부감각에 집중하는 호흡훈련이다. 나는 단전의 존재는 믿지 않는다. 그러나 단전호흡 훈련의 효과는 믿는다. 단전이라고 믿고 나의 내장 감각에 집중하게 되면 결국 내부감각 자각 능력을 향상시켜주기 때문이다. 내부감각 훈련의 한 방법으로 "단전"이라는 가상의 존재를 가정하고 이에 집중하는 것은 매우 합리적인 방법이다.
쿤달리니 요가에서 말하는 차크라 역시 마찬가지다. 차크라가 의학적인 실체로서 우리 몸에 존재한다고 믿지는 않는다. 차크라가 특정한 색깔과 연관된다는 것은 더욱 더 신빙성이 없다. 색깔은 사물의 본성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기 때문이다. 색이나 빛은 눈과 뇌의 시각 시스템이 특정한 주파수의 전자기파에 반응해 뇌에서 만들어낸 것에 불과하다. 첫번째 차크라나 하단전이 어떤 색이다라는 주장은 사실은 내게는 별 의미없는 이야기다. 사실 몸의 각 부위나 7개 혹은 8개의 차크라, 3개의 단전 등등에 부여된 색깔이나 의미 등은 문화나 종교 전통에 따라 가지각색이다.
나는 차크라의 존재는 믿지 않지만, 차크라를 일깨운다는 쿤달리니 요가의 여러 크리아(일련의 움직임) 요가의 효과는 믿는다. 쿤달리니 요가 동작은 모두 내부감각에 대한 강력한 자각 훈련으로 이루어져있기 때문이다. 쿤달리니 요가는 골반기저 부위에 가장 원초적인 첫번째 차크라가 있다고 가정한다. 그리고 단전 복부 가운데에도 각각의 차크라를 상정하는데, 이곳에 집중하면 자연히 장신경계와 미주신경계를 활성화시키고 우리 몸이 주는 감각신호들을 더 분명하고 명확하게 알아차릴 수 있게 된다(Woollacott, Kason & Park, 2020).
쿤달리니 요가는 다른 하타 요가와는 달리 반복적이고도 리드미컬한 움직임을 강조함으로써 고유감각 훈련의 요소를 강하게 지니고 있다. 쿤달리니 요가의 동작은 일상적인 움직임을 통해서는 경험할 수 없는 새로운 내부감각과 고유감각의 세계를 열어준다. 재미있는 것은 쿤달리나 요가와 타이치나 오금희 동작들 사이에는 신기할 정도로 유사한 동작이 많다는 것이다. 문화나 전통에 따라 개념이나 의미는 다를지언정 모두 내부감각과 고유감각을 향상시켜주는 훈련이라는 점에서는 근본적인 공통점을 지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