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이 버거운 그대에게
둘째 아이를 차로 등교를 시키고 돌아와 엘리베이터를 타려는데 문이 열리자 식구 중 한 명이 내린다. 우리 집 귀염둥이 막둥이가 이제 학교에 가려는 길이다. 그 짧은 만남이 반갑고도 아쉬워 참새 같은 입맞춤을 하고 서로 각자의 길로 향한다.
엘리베이터에 올라 버튼을 눌렀다. 나는 10층을, 함께 탄 이웃 분은 7층을 눌렀다. 그때 이웃이 물었다.
“아이인가 봐요?”
“네.. 언니 오빠 옷을 입고 가네요. 오빠가 알면 싫어할 텐데 말이에요...”
내 걱정 사이로 나보다 나이가 10년은 더 되어 보이는 아주머니께서 한마디 하신다.
“저때가 좋아요. 우리 아이들은 다 커서 나가고 없거든요.”
애절한 표정에서 진심이 느껴진다. 그런 그녀의 얼굴에 나의 대답은 반격에 가까웠다.
“저는 그게 목표인데요, 빨리 커서 다 나갔으면 좋겠어요!”
“안 그래요. 다 나가고 나면 너무 허전하고... 지금이 좋은 거예요”
웃으며 짧은 인사로 그분은 내리시고 나도 집으로 들어왔다.
엘리베이터에서 나눈 짧은 이웃과의 격이 없는 대화, 요즘같이 삭막한 세상에 흔한 일은 아니지만 어디서 많이 들어본 대화다.
‘그때가 좋은 거야., 좋을 때다~!’
남보다 결혼을 조금 일찍 해서 이젠 아이들이 엄마인 내손을 덜 탈만큼 키웠더니, 한창 손이 가는 유아기 아이를 키우는 엄마들의 부러운 시선을 느끼곤 하는데 한결같이 하는 말과 표정은 ‘좋겠다, 부럽다, 난 언제 키우지?’ 뭐 이런 종류다.
누가 내게 그렇게 물어오면,
“그때가 좋은 거예요. 애들 어릴 때는 몸만 힘들면 되는데, 조금 더 키우면 몸은 편해지지만 신경 쓸 게 더 많고 마음 쓸 일이 많아져서 더 힘들거든요.” 제대로 볼멘소리를 하곤 한다.
생각해 보면 나도 아이들이 어렸을 때 내 아이가 빨리 컸으면 했다. 조금만 더 키우면 여유가 생기고 그래서 더 행복해질 것만 같았다. 그때가 행복하지 않았던 건 아니다. 하지만 그때는 갖지 못했던 그 무엇을 갖게 되면 정말 살만해질 것 같다는 생각을 하곤 했던 것이다.
우리는 모두가 그렇게 지금을 놓치고 있나 보다.
조금만 더 있으면, 이것만 지나면, 다음엔 하늘에서 꽃 가루라도 쏟아질 거라고 믿는 걸까?
과거의 한순간을 만지고 싶은 듯 그리워하고, 미래의 어느 순간을 꿈처럼 기대하며, 오늘은 지금의 째깍이는 이 순간을 손안에 쥔 모래알 빠져나가듯 바라보는 건 아닐까.
이제 막 한창 손이 가는 어린아이 육아에 정신 줄 빼놓고 사는 엄마들에게 나중이 더 힘들다고 지금이 낫다고 말한 것이 못내 미안해지곤 한다. ‘내게도 자유가 오는 날이 있겠지... 내일이 오늘보다 낫겠지. 이렇게 까무룩 하고 힘든 날도 언젠가는 지나가겠지’ 하는 그들의 희망을 무참히 밟아 버린 것 같아 속상한 마음에 스스로 머리를 쥐어박는다. ‘이그.. 입방정이다... 그냥 애처로운 표정으로 많이 힘드시죠.. 하면 될 것을’ 자책이 꼬리를 문다. 대부분은 작은 위로의 표현이라도 하려고 하지만, 가끔 툭하고 대책 없는 하소연이 나오는 걸 보면 나도 누군가의 위로가 필요한가 보다. 그렇게라도 뱉어내야 직성이 풀릴 만큼 그날은 또 엉킨 실타래를 품고 있었나 보다.
나중이 더 힘들 줄 알았다면 버틸 수 있었을까? 몰라서 지나왔다. 때로는 몰라서 약이 될 때가 분명히 있다. 지금처럼 생각지도 못한 일들이 우후죽순 툭툭 터질 거라고는 상상도 못 했던, 몰라서 다행이던 푸른 시절이 나에게도 있었다.
내가 더 이상 초록의 싱그러움을 가진 오뉴월이 아니어도, 나뭇잎 무성한 한여름의 풍성함이 아니어도 괜찮다. 싱그러운 봄의 푸르름은 가을이 올 것을 모르는 듯 마냥 천진난만해서 예쁘고, 가을은 겨울이 올 것을 알고 준비하기에 곱지 않은가. 스산한 바람에 잎을 떨구게 될 날이 온다 해도 나는 이대로이고 싶다. 사는 동안 내내 내 안에 잔잔히 물이 흐르기를 소망하며 불어오는 바람에 가끔 흔들리며, 꺾이지 않는 유연함으로 계절을 맞을 것이다. 내 마음이 미리 봄 마중을 나가지 않고, 떠오르는 해와 지는 해에 감사하며, 하루를 살고 계절을 느끼는데 집중하며 살 것이다. 내가 할 수 있는 오늘을 위한 최선의 방법은 그것뿐이다.
BGM_넬_기억을 걷는 시간
_소향_바람의 노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