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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ynnLynnland Sep 29. 2018

숙박업 2년, 해외영업 2년, 그리고 다시 취준생

이십 대 후반이 되어서도 신입으로 입사해야 하는 내 운명

퇴사 후 이직을 준비하며 가장 많이 느낀 감정은 그동안 너무 고민 없이 대책 없이 살았구나 하는 나 자신을 향한 원망스러움이다. 분명 쉬지 않고 달려왔기에 열심히 살았다고 자부했는데 퇴사 후 거울 앞에 서니 그곳엔 직업도 없고 뭘 하고 싶은지도 모르는 초라한 28.8세 여자가 서있었다.


나는 2년 동안 가평 숙박업계의 오픈멤버로 일했고, 그 후 2년은 의류 벤더 해외영업부에서 일했다.

두 경력에 연관성이 없는 이유는 가평에서 생고생을 다하고 나와 도망치듯 들어온 회사가 우연히 의류 벤더 회사였기 때문이다.


숙박업 창업 오픈멤버로의 2년


숙박업을 하는 동안 나는 다른 사람들에게 내가 무슨 일을 하는지 명확히 설명할 수 없었다. (분명 온라인 마케터로 입사한 건데 오픈멤버였던 나는 온라인 마케팅을 할 시간이 없었다. 그것보다 더 먼저 해야 할 일들이 산더미였고 무엇보다 펜션을 다 짓고 오픈해야 마케팅을 하든지 말든지 하지....)

또 4대 보험도 없이 현금 100만 원 받고 매일 밤 10시 넘어서까지 일하는 열정 페이 직원이었다. (법적으론 백수지)


그래도 괜찮았다.


남들과 다른 길을 걷다 보면 그게 나만의 무기가 될 거라고 믿었고 뭘 해도 잘 해낼거라는 자신을 향한 믿음이 있었다. 지금은 월급을 많이 못주지만 이 사업만 잘되면 또래보다 훨씬 큰돈을 벌 수 있도록 모든 지원을 해주겠다는 대표의 달콤한 유혹도 무시하지 못했다.

그렇게 2년을 악착같이 버티고 나서야 이 회사가 안될 회사라는 게 눈에 보이기 시작했고 피부로 느껴지기 시작했다. 나는 지쳐있었다. 결국 그 당시 함께 고생하던 모두는 상처받은 채 뿔뿔이 흩어졌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때의 난 정말 어렸다. 오픈멤버로 일하거나, 숙박업계에 입사하기 전 꼭 고려해보아야하는 사항이 있다는 걸 1도 몰랐다. 순수한 24살 사회초년생이 2년이란 긴 시간을 반납하고 사회경험을 톡톡히 한 것이다.


의류 벤더에서 해외영업사원으로의 2년


그렇게 26살에 의류 벤더로 이직을 했는데 신세계였다. 4대 보험은 기본이고 근로계약서도 작성했다. 합리적인 금액대의 월급이 매달 따박따박 들어왔고 무엇보다 주변 사람들에게 내가 무슨 일을 하는지 한 문장으로 말할 수 있다는 게 가장 큰 기쁨이었다.


"의류회사 해외영업팀에서 일해요!!"


이 한 문장이 주는 자부심은 실로 대단했다.

직장인에게는 너무나도 당연한 일인데, 첫 직장에서 내가 뭔 일을 하고있는지 앞으로 무엇을 하게 될지 설명할 수 없던 나로서는 정말 큰 힘이 됐다. (미국 바이어랑 일한다고 한 문장 덧붙이면 나 자신이 그렇게 멋져 보일 수가 없었다ㅋㅋ)

부모님도 그제야 속내를 털어놓으셨다. 2년동안 개미 똥만 한 월급받으며 집에 들어오지도 못하고 고생하던 딸이 버젓이 월급을 받으니 이제야 마음이 놓인다고. 그동안 참 불안했다고. 이제 우리 딸이 무슨 일을 하는지 정확히 알 수 있다고 좋아하셨다.


그렇게 2년 동안 난 월급뽕과 나직업있어요뽕에 취해 회사를 다녔다. 자비로 부모님 여행도 보내드리고 나를 위한 투자도 아끼지 않았다.(지금 이 맥북프로. 흐흐) 아, 맞다! 2년간 학자금 대출도 다 갚았다.

비즈니스 영어가 어렵긴했지만 업무 자체는 나랑 잘 맞았고, 외국계 회사에서 일해보는 게 이룰 수 없는 소원이라 생각했던 내게 해외영업이란 직무는 글로벌하게 일해보고싶은 욕망을 충족시키기에 충분했다.

지금 생각해보니 꽤 행복했고 스스로 자존감을 높이는 나날을 보냈던 것 같다.


그러나 보시다시피 여러분은 지금 28.8세 백수의 일기를 읽고 있다. 한 달 전 멀쩡히 아주 잘 다니던 그 의류 벤더도 퇴사했기 때문이다.


월급뽕과 나직업있어요뽕이 사라지니 이 일을 언제까지 할 수 있나, 이 일을 계속한다 해도 행복한가에 대한 의문이 들기 시작했다. 진짜 하고싶은 일은 이게 아니라는 고민의 불씨가 점점 커지기 시작했다. 불난데 부채질하듯 요새 의류 벤더 업의 전망 좋지 않다는 말이 여기저기서 들리기 시작했고, 우리 회사도 인원감축을 하고 법인 공장(인도네시아에 있는 본공장)의 직원을 더 뽑으며 현지 교육을 강화하기 시작했다. 우리 팀은 실적이 좋아 당장의 피해는 없었지만 언젠가 그 피해자가 내가 될지도 모르는 일이라고 생각하니 이 업계를 하루빨리 탈출해야겠다는 확신이 들었다.


그렇게 다시 취준생


그렇게 난 지금 백수 한 달 차 취준생이다.

전혀 연관성 없는 커리어를 가지고 있는 28.8세 취준생. 그나마 가지고 있던 스펙인 토익스피킹도 올해 9월 30일이면 만료가 되니 가진 스펙이라곤 면허증밖에 없을 문과 출신의 취준생.

그동안 열심히 살아왔지만 남은 게 없는 것 같아 불안한 마음을 지울 수 없다.

왜 이렇게 오랜 시간을 허비했나, 왜 더 빨리 좋아하는 일을 찾으려 하지 않았을까, 왜 조금이라도 더 깊이 있게 고민해볼 시간을 갖지 않았을까 하는 후회를 멈출 수 없다.


이제 내가 해야 할 일은 위의 커리어를 통해 내가 얻은 것은 무엇인지 고민하고 내가 진정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찾는 일이다. 4년의 경력이 있지만 또 다시 어딘가에서 신입사원으로 시작할 나를 위해.

이번에는 오래오래 행복할 일을 찾기 위한 긴 여정.


비로소 진짜 나를 마주하고 내 인생을 위한 고민을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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