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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소롱 Dec 04. 2023

x도 없이 안식년 4주차: 걷고 걷고 걷다

소란스러웠던 마음이 잠잠해졌다

제주도에서 걸었던 이유는 단순했다. 자전거도 못 타고, 운전도 서투르니까. 그렇다고 어떠한 이동수단을 이용하지 않고 한 '순수 도보 여행'은 아니었다. 계획한 것은 아니었지만 반쪽짜리 도보 여행이었달까. 


이번에 가서 알게 됐지만, 제주도는 올레길 코스가 잘 되어 있었다(물론 중간중간 찻길인 구간도 있었지만). 올레길 리본을 따라 자연을 만끽하며 걷기도 하고, 버스 배차간격이 너무 길다 보니 그냥 두 다리를 믿고 마냥 걷기도 했다. 방향치에, 길치인 내가 스마트폰 지도 없이 걸어 보겠다고 오기를 부리고 걷다가 관광객은 갈 일이 없을 것 같은, 굽이굽이 엄한 마을 길로 걷기도 하고, 어떤 때는 지름길로 걸어 보겠다고 나의 직감에 의존해서 걸어봤다가 막상 나갈 길이 없어 왔던 길로 한참 되돌아가야 하기도 했다.


세찬 제주도 바람에 따귀를 맞으며 '내가 굳이 왜 힘들게 걸어왔을까'를 혼자 중얼거렸다가도, 마침 "그냥 택시 타고 다녀"라고 언니가 전화기너머 이야기하면 "인생은 원래 고행이죠"하며 또다시 혼자 콧물 훌쩍거리면서 걸었다. 

 

자동차로 가면 편하게 금방 갈 거리를 걷다 보니까 몸은 조금 (아니 많이) 힘들었지만, 나름 재미있었다. 지름길을 찾아 거닐다가 생각지도 못하게 말(horse)이 있어 말과 인사하기도 하고, 고양이를 만나 고양이와 눈싸움하기도 하고, 마냥 걷다가 계획에 없었던 도서관이 바로 앞에 있길래 도서관에 들러 책을 읽기도 하고. 천천히 걷다 보니 그냥 지나칠 수도 있을 법한 주위 풍경도 눈에 들어왔다. 헤엄치는 돌고래 무리들, 골목의 집들과 예쁜 꽃, 특이하게 생긴 돌, 멋진 그림, 여러 이야기가 담긴 글씨와 글들까지. 


책 <철학자의 걷기 수업>에서 작가 알베르트 키츨러는 "여기서 우리는 삶과 걷기의 중요한 접점을 깨닫는다. 천천히 걷다 보면 우리의 몸과 마음은 안식에 이른다. 균일한 형태의 움직임을 반복하면 내면의 긴장이 완화된다. 리듬 있게 걸어 나가는 것은 마치 춤을 추는 것과 같다. 이 춤은 몸과 마음을 동일하게 움직이게 하고, 동기화하고, 조화롭게 하여 평온함과 유쾌함을 선사한다. 긴장되고 소란한 마음은 잠잠해지고 내면의 갈등은 가라앉아 결국 해소된다"라고 이야기했다. 


주변의 소음을 음악으로 막으려고 서울에서는 무조건 이어폰을 끼고 다녔지만, 제주도에서는 귀를 막지 않고 그냥 바람소리, 파도 소리, 나무 소리를 들으면서 걸었다. 보고, 듣고, 느끼며 걸었더니, 그동안 소란스러웠던 마음도 조금 잠잠해지는 것 같았다. 그렇게 x도 없지만 마음은 조용해질 수 있었던 안식년 4주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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