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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Flying Shrimpy May 03. 2018

여름, 영국의 기억

한겨울 삿포로 이야기를 썼으니, 이번에는 여름 영국 이야기.

(삿포로는 무려 4개월 전 글인데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척)


영국은 기억도 잘 나지 않는 아주 어린 시절 한 번, 유치원 다닐 7살 무렵, 그리고 초등학교 5학년 때. 이렇게 세 번이나 갔던 나라인데도 왠지 모르게 계속 낯설기만 했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향수병, 약간의 인종차별, 비싼 물가 등등 때문에 힘들었던 사춘기가 내 기억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어서 그럴 수도.

대학 때 친구와 거의 한 달간 서유럽을 여행할 때도 런던을 가고 싶어했던 친구에게 '이미 가본 곳이라 새로운 곳을 가보고 싶다'는 핑계로 양해를 구하고 건너뛰기도 했다.


그런 영국이었는데.

무슨 이유에선지 작년 3월, 올해 여름은 영국에서 보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마 영국에서 살던 동네(옥스포드)에 다시 가보고 싶다는, 잠깐 일을 쉬면서 (아이러니하게도) 급격히 체력이 떨어지던 엄마가 지나가는 말로 던진 한마디 때문이었던 것 같다. 엄마가 조금이라도 건강할 때, 가고 싶어하는 먼 나라에 같이 가야겠다고 생각했다.

영국에서 지낼 때 엄마는 30대였으니, 나보다 더 많은 추억이 있을 테지.


그래서 표를 끊어 떠나

런던(+옥스포드) - 윈드미어 - 에든버러 이렇게 세 곳을 돌아보고 왔다.


결론부터 얘기하면, 정작 우리 여행의 목적이었던 옥스포드는 런던에서 당일치기로만 다녀왔다.

내내 비바람이 불고 추웠으며, 영국에 있었던 열흘 동안 유일하게 엄마와 싸워서 거의 반나절 동안 서로 한마디도 하지 않았던 곳도 옥스포드였다.

화가 나서 각자 길을 가다가 엄마를 잃어버린 줄 알고 심장이 덜컹 내려앉았던 기억, 유명하대서 먹으러 간 크림티는 차갑게 식어있고 카페에 자리도 없어서 비바람을 스카프 하나로 막으며 오들오들 홍차를 마시던 기억 등등 내가 기대했던 그림은 절대 아니었다. 실제로 내 여행 메모에도 내가 이러려고 옥스포드에 다시 왔나...라고 적은 듯ㅋㅋㅋㅋㅋ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어렴풋이, 엄마는 또렷이 기억하는 옥스포드 메인 거리와 거기에 그대로 있는 몇몇 상점들, 아끼는 지인들에게 선물하려고 마켓 공방에서 산 향초와 핸드크림, 서울과 런던을 두고 굳이 털고 온 옥스포드 자라(?) 등등 지나고 돌아보니 모든 것이 좋은 추억이다.


그리고 (볼거리가 많으니 당연히) 더 많은 시간을 할애한 런던, 윈드미어, 에든버러는 정말정말x100 좋았고, 마음 한구석 이유없이 가지고 있었던 영국에 대한 내 미움은 (물론 물가는 여전히 비싸더라...근데 요즘은 한국이 워낙 비싸서) 이번 여행을 다녀와서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더 나아가 '세상에 아직 못 가본 곳이 얼마나 많은데, 가본/살아본 곳을 왜 두 번 가!' 라는 내 나름의 여행 철학에 변화가 생겼다.

다시 가니 좋더라. 기회가 되면 한 번 더 가고 싶을 정도다.



아래부터는 사진과 간단한 코멘트 :)

* 영국하면 떠오르는 대영박물관, 빅벤, 템즈강 등등 없음 주의...

구글 포토가 모아서 보여주는 사진들 중 유독 기억에 남는 장면들은 그런 랜드마크들이 아니라, 머물다가 만난 소소한 순간들이었다.


런던에서의 첫 날 아침, 관광지로 가는 버스를 타려다 우연히 보고 들른 토요장터


플랫화이트랑 시나몬빵을 사서 자리 잡고 동네 사람들을 구경했다.


커피 사러 간 엄마 기다리기. 영어 주문 무난하게 성공하신 안 여사님 아쥬 칭찬해


이날 장터에서 사온 빵이랑 과일로 런던에서 매일 아침을 차렸다 :)


런던 에어비앤비에서 매일 아침 내다보던 풍경. 한적했던 우리 동네 (영국 유머 모음집도 있었음)


갈까말까 하다가 동선이 맞아서 방문한 The Wallace Collection. 전시도 좋지만 내부 카페가 정말 예쁘고 아늑하다. 강추!  


커피 한 모금할 때마다 고개 한번 들어 보게 되던 건물 천장과 런던 하늘.


한국에서 미리 표 예약해서 보러 간 London Symphony Orchestra 공연. 앞 자리라 목이 꺾일 뻔 했지만 실황을 듣고 나니 후회는 없었다.


누가 영국 음식 맛없대? 옥스포드에서 먹은 meat pie는 역대급이었다. 지금도 침 나와...


널 어디서 봤더라...보자마자 빵 터져서 애주가 친구에게 카톡으로 보냈다.


부지런히 돌아다닌 후에 집 앞 슈퍼에서 사와서 자기 전에 먹던 맥주와 칩스. 살찌는 소리가 들렸지만 꿀맛!


마지막 날 다시 런던으로 돌아와서 들른 Flying Tiger(AKA 예쁜 쓰레기 천국) 여기서 티세트 피규어 2세트 사서 집에 하나 놓고 하나는 선물!


The Wallace Collection에서 나와서 만난 거리. 택시에 건물까지 여기가 런던이라 외치고 있네. 그 와중에 하늘...


돗자리 대신 보자기 펼쳐놓고 누워서 간식 먹고 책 읽던 평화로운 Hyde Park
흐헤헤헤헤 엄마랑 나랑 발샷


2층 버스 앞에서 사진 찍으니 뒤에서 활짝 웃으면서 포즈 취해주신 기사 아저씨ㅋㅋㅋ


영국 있으면서 꽃 구경 원없이 했다 :) 마지막 날 우리 숙소 근처에 있는 도로변 꽃가게에서 만난 카라. (맞나?)


두 번째 동네는 호수지방에 있는 윈드미어. 게스트하우스가 호텔 못지 않았지만 그 중 최고는 매일 이렇게 나오는 조식...연어는 그 근방에서 잡은 거라고...


윈드미어 근처 다른 마을을 버스 타고 가다보면 종종 만날 수 있는 빈티지 노상(?)들. 전부 1파운드 내외라 엄마 눈 돌아감...


여긴 좀 더 제대로 된 빈티지 가구, 그릇샵. 조금 더 비싸지만 그래봤자 접시 세트가 단돈 몇 파운드. 캐리어에 뽁뽁이랑 자리 좀 구비해놓고 올걸...
비 오는 날의 윈드미어. 늘 한국에서 아련하게 기억하던 비오는 날 영국의 풀냄새(?)를 여기서 찾아서 엄마랑 엄청 반가워했지.


윈드미어 도착 첫 날 비바람을 뚫고 걸어가다 우연히 들어간 레스토랑이 현지인 맛집이었음. 엄마는 맥주, 나는 와인 한 잔씩 하면서 정말 많이 웃고 수다 떨었다 :)


세 번째이자 마지막 동네는 에든버러. 길을 걷고 있는데 백파이프 소리가 들리고 차려입은 사람들이 하나 둘 택시에서 내려서 보니 결혼식이었다!! 여자 하객들 모자 너무 예쁜 것...


에든버러를 한 눈에 보러 올라간 Holyrood Park. 꼭대기까지 가면 Arthur's Seat을 볼 수 있는데 길을 잘못 들어서 지쳐서 중간에 포기했다ㅜㅜ


인도 레스토랑에서 정말 맛있게 배부르게 먹고 소화 경 야경 보러 올라간 Calton Hill. 너무너무너무 행복해했던 저녁이라 기억에 남는다.


이거 쓴 사람 최소 나


더 이상 말이 필요없이 완벽했던 에든버러 에어비앤비. 주인인 Suzie도 정말 멋진 여자! 여기 때문에 에든버러 또 가고 싶을 정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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