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디야를 두고 스타벅스로 가는 이유는 뭘까
단상이 짧은 생각(短想)이 아니라 끊어진 생각(斷想)이라는 것을 알고 계셨나요?
비가 억수같이 쏟아지던 휴일.
출산휴가 시작 후 오후 2시가 되면 늘 그랬듯 집 앞 스타벅스로 향했다.
폭우를 뚫고 문을 열었는데,
자리가 하나도,
정말 바bar 형태 자리 하나도 남은 게 없었다.
어쩔 수 없이 다시 우산을 들고 나서서 잠시 걸으니 바로 옆에 있는 이디야 매장이 나왔다.
밖에서 잠깐 들여다보니, 그 큰 매장이 서너 테이블 외에는 텅텅 비어있었다.
들어갈까 잠깐 고민했지만, 200m 정도만 걸으면 스타벅스 매장이 하나 더 있다는 것이 생각났고, 유효기간이 얼마 남지 않은 스타벅스 기프티콘을 출산 전에 써야할 것 같아 다시 발걸음을 옮겼다.
그렇게 도착한 다른 스타벅스 매장은,
또,
꽉 차 있다.
다행히 콘센트가 없고 홀 한가운데에 있어 인기가 적은 자리 한두개 정도가 남아있어 겨우 자리를 잡았다.
짐을 펼쳐놓고 한숨 돌리고 나니, 생각이 들었다.
"대체 왜 (나를 포함한) 사람들은
이디야(혹은 다른 카페 프랜차이즈)를 두고 굳이 스타벅스를 가는 걸까?"
잠시만 고민해보아도, 스타벅스보다 이디야를 가는 것이 여러모로 합리적으로 보인다.
요즘 내가 마시는 디카페인 아메리카노 기본 사이즈 기준, 스타벅스는 4800원(톨), 이디야는 3700원(라지)이다. 디카페인 아메리카노 외 다른 음료나 디저트 메뉴 대부분이 이디야가 스타벅스보다 저렴하다.
이디야 매장이 작은가 하면 그것도 아니다.
우리 동네 기준만 하더라도, 내가 지나친 이디야 매장은 내가 오늘 들른 스타벅스 2곳 중 한 곳보다는 월등히 크고, 다른 한 곳과는 비슷하다.
메가커피나 컴포즈처럼 홀을 거의 운영하지 않거나 있어도 2인석 2~3개 정도인 매장과는 다르다.
지금이 슈크림 라떼 등 스타벅스의 유명한 시즌 메뉴가 나올 시기도 아니다.
(당장 떠오르는 스타벅스의 유명한 스테디 메뉴는 자몽허니블랙티, 바닐라크림콜드브루 정도...?)
그에 비해서 이디야는 산리오, 허쉬 등 핫한 브랜드와 콜라보도 자주 하고,
시그니처 음료인 토피넛라떼 외에도, 여름에는 수박을 실제로 갈아서 만들어 당류도 낮고 가격도 합리적인 수박주스 등도 유명하다.
스타벅스 커피 맛은...쓰고 탄 맛을 좋아하는 사람이 아니라면 선뜻 '맛있다'라고 하기는 어렵다는 것에 대부분 동의할 것이다.
얼마 전 화제가 된, 코스타리카에 있는 커피 원두 농장에서 일하는 사람의 언급이 떠오른다.
어딘가에서 스타벅스 푸드에서는 '기내식 맛'이 난다는 표현을 봤는데,
스타벅스에서 왠만한 푸드류는 다 먹어본 내가 그동안 받은 느낌을 이 이상 적절하게 설명할 수는 없다고 생각했다.
그에 비해 이디야에서 머핀, 크로크무슈 등 푸드류를 먹어보았을 때 가격이나 맛이 나쁘지 않았던 기억이 난다.
보통 스타벅스는 지하철역 출구 바로 근처 노른자 위치에 입점해있는데, 그것도 하나의 이유일 수도...?
그런데 우리 동네 스타벅스는 이디야보다 지하철역에서 조금 더 가깝긴 하지만 둘은 100m 남짓밖에 차이나지 않고, 서로 250m 남짓 떨어져있는 2개의 스타벅스 모두 늘 손님으로 꽉 차 있고 그 사이에 있는 이디야는 텅텅 비어있다. 우리 동네를 두고 일반화할 수는 없겠지만.
아무리 생각해봐도 '기프티콘 선물과 사용이 가장 활발해서'라는 이유가 가장 큰 것 같다.
그런데 그것만으로 사용 고객 수가 이렇게까지 차이가 날 수 있을까?
...일단 저부터 오늘도 스타벅스에서 이 글을 쓰고 있습니다.
심지어 오늘은 유효기간이 임박한 기프티콘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왜 굳이, 오늘도, 이디야를 두고 스타벅스에 찾아왔을까 생각해보니
스타벅스 특유의 노르스름한 조명, 파트너들의 목소리, 잔잔한 음악, 익숙한 좌석 등에 이미 적응해버린 것 같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