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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Flying Shrimpy May 29. 2016

마음 가는 대로 하자. 적어도 여행 중일 때만큼은 2

비포 선라이즈 같은 순간이 찾아올지도

여긴 비가 지붕 때리는 소리가 엄청 크게 들려. 거긴 어때?


포르토로 넘어와서 머무른 호스텔은 단연 최고였다.


'사람 냄새'가 폴폴 나는 스탭들, 운동장처럼 널찍한 방, 그 방에서 만난 각국에서 온 룸메이트들, 처음 봤지만 우산을 나눠 쓰며 같이 워킹투어를 다닌 사람들 등등.

나의 부족하고도 부족한 표현 몇 줄로는 다 설명할 수 없는 따뜻한 시간을 보냈다.


화랑 같은 입구
아침마다 저 의자에서 무릎을 감싸안고 앉아, 사진과 여행기를 정리하고 가족들과 짧은 통화를 했다.
뭐니뭐니해도 호스텔 선정 기준 0순위는 알찬 조식 아니겠습니까?


포르토 둘째 날 아침.


일찍 일어난 사람들과 도란도란 얘기하며 조식을 먹고, 커피를 한 잔 내려서 라운지로 나와 자리를 잡고 앉았다.

주방에서부터 솔솔 풍기는 빵 냄새, 버터 냄새, 커피 향, 지붕을 세차게 때리는 빗소리,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는, 내 또래 스탭이 매일 아침 선곡해서 튼다는 재즈 음악.

천국이 있다면 여기가 아닐까, 감히 생각했다.

만약 혼자가 아니었고 일정이 여유 있지 않았다면 쏟아지는 비를 보며 안절부절못했을 텐데.


그나저나 얘는 리스본에서 뭐하고 있으려나.

쿠션을 안고 잠시 고민하다 먼저 메세지를 보냈다.


외출 준비 중이었는지 금방 답이 왔다.


-안녕. 연락해줘서 기뻐. 리스본도 아직 비가 많이 오는데, 여긴 공항 근처다 보니 비행기 뜨는 소리 때문에 잘 들리진 않아. 포르토 숙소는 괜찮아?

-완전 좋아. 골목이 전부 화랑이야. 호스텔 자체의 테마도 그렇고. 지금은 커피 마시면서 음악 듣는 중!

-조만간 포르투갈 한 번 더 오려고 하는데, 포르토에 가면 거기 묵어야겠다.

참, 여기 주인이 그러는데 내일 리스본에서 가면 축제가 있대. 현지 사람들이 가면이랑 코스튬 입고 길거리를 돌아다니면서 노나 봐.

같이 구경하면 재밌을 거 같은데 혹시 내일 올 수 있으면 알려줘.


...

뭐라고 보낼까.


파워 J인 나는 피치 못할 사정이 아니면 여행할 때 계획을 변경하는 일은 거의 없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뭐 어때, 라는 생각이 들었다.

한 번 더 만나고 가고 싶은 마음이 더 커서.


-응. 포르토가 워낙 작아서 어차피 여기는 다 봤어. 내일 오전에 아베이로 들러서 반나절 정도 있다가 리스본으로 갈 수 있을 것 같아.

-괜찮아? 너무 일정이 빡빡해지는 건 아니야?

-아니야. 나 즉흥적인 거 좋아해. (오늘부터)

-잘 됐다. 저녁이라도 같이 먹고 축제 보자. 난 여기 5일이나 있었으니 시내 구경시켜줄게. 8시, 호시우 광장에 있는 이 가게 앞 어때?


몇 년째 실시간으로 인스턴트 메세지를 주고 받는 게 습관이 되다 보니, 

이렇게 날짜와 시간, 만날 장소를 미리 약속하는 것만으로도 설렜다. 

신나서 호스텔에서 알게 되어 친해진 언니들에게 재잘재잘 떠들었다.


-그럼 그렇지. 포르토 좋다고 찬양하던 애가 이렇게 빨리 떠나다니!


그 날 밤 다 같이 저녁을 먹고 와인을 마시면서 하루 일찍 리스본으로 가게 되었다고 얘기하니, 

그새 정이 들었던 포르토 숙소의 직원들과 룸메들은 서운해했다. 

그 와중에 아베이로에서 가면 좋을 만한 식당들과 스팟들을 구석구석 소개시켜주고, 

구경하는 동안 짐을 맡길 곳까지 전화로 알아봐 줬다.

사랑스러운 사람들 같으니라구.




아베이로를 거쳐 다시 리스본 역에 도착했다.

포르토에 며칠 있었다고, 거기 머무르다 리스본에 오니 정말 대도시 같다.

시골쥐처럼 한참 주변을 두리번거리다 숙소로 가는 택시를 잡아 탔다.


새 숙소에서 스탭들과 인사를 하고, 방을 안내 받고, 짐을 풀었다.

아베이로에서도 비바람을 맞다 와서 꼴이 엉망이었지만,

다시 씻고 머리 말리고 화장하기엔 약속 시간까지 촉박했다.


아이고, 이러다 늦겠다.

그냥 머리를 질끈 묶고 뛰어나갔다.


...

8신데 왜 안 오지.

독일 사람들은 시간 칼 같이 지킨다더니 딱히 그렇지도 않네.


리스본은 첫 날 제대로 못 봤는데, 확실히 관광객이 더 많고 훨씬 번화하다.

포르토처럼 이 도시도 좋아하게 될까. 시끄러운 건 별론데.


발끝으로 땅을 툭툭 치며 이런저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뒤에서 낯익은 개구진 목소리가 들렸다.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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