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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Flying Shrimpy Jun 19. 2016

마음 가는 대로 하자. 적어도 여행 중일 때만큼은 3

비포 선라이즈 같은 순간이 찾아올지도



경영학과 엔지니어링을 복수 전공했다고 한다.

그래서 지금은 전자회사에서 엔지니어로 일하고 있다고.

전혀 다른 두 분야를 전공했다는 게 신기했다.


며칠이지만 그동안 잘 지냈는지 얘기하며 잠시 걷다가,

발이 닿는 대로 한 식당으로 들어가, 대구cod 구이 요리를 화이트 와인 한 잔과 먹었다.

그때까지 포르투갈에서 간 식당 중 제일 별로였지만, 무슨 상관이람.


식당을 나와서는, 자기가 리스본에서 제일 좋아하는 곳으로 가보자고 했다.

사람들이 북적북적한 거리를 지나 걸었더니 코메르시우 광장이 나왔다.

나중에 얘가 독일로 떠나고 나서도, 혼자 매일 갔던 곳.



광장과 타구스 강이 만나는 강변 방파제에 걸터앉아, 이런저런 얘기를 했다.

리스본에서 본 것, 포르토에서 본 것.

독일에서 사는 것, 한국에서 사는 것.


며칠 동안 억수같이 쏟아지던 비가 거짓말처럼 그치고, 밤 날씨가 선선했다.


아, 너무 좋다.

평소와는 다르게, 사진을 찍기 위해 폰을 거의 꺼내 들지 않았다.

그 순간에 집중하고 싶어서.






다시 또 언덕으로, 골목으로, 정처 없이 얘기하며 걷고 있던 중

한 포르투갈인 할아버지를 마주쳤다.

평범해 보이는 할아버지여서 그냥 지나쳤는데, 별안간 우리를 보고 고함을 쳤다.


-이 인종차별주의자(you racist)! 왜 나와 눈이 마주쳤는데 말을 하지 않아!


...약주를 과하게 드셨는지, 리스본에서는 흔하다는 마약을 하셨는지.

깜짝 놀랐지만 웃어넘기며 말했다.


-아시아인 여자애랑 같이 있는 백인 남자한테 인종차별주의자라니. 저 할아버지도 참. 그치?


근데 얘는 잠시지만 표정이 좋지 않다.

그러고 보니 독일인들이 그 단어에 민감하다고 했던 기억이 난다.


그 할아버지 외에도 마약상이라던가, 취한 10대들을 더러 봤지만 별로 무섭지 않았다. 

그렇게 리스본 골목 어디에선가 사람들이 튀어나와서 놀라게 할 때마다, 얘가 내 팔을 꽉 잡고 자기 뒤로 숨겨주고는 sorry,라고 하고는 다시 놔줬기 때문.


덕분에 관광객이 한 명도 없는 리스본의 골목골목을

비가 막 그친 후의 상쾌한 밤공기를 쐬며 걸어 다닐 수 있었다.






호시우 광장 쪽으로 돌아와서는, 혹시 아직 열려있는 바bar가 있는지 둘러봤다.

둘 다 이대로 들어가긴 아쉬웠던 것 같다.


밤 12시가 넘어, 영업 중인 곳이 거의 없었다.

...맞다, 여기 유럽이었지.


그때 광장 언저리에 있는 작은 식당에 아직 불이 켜져 있는 걸 보고,

걸어가 테라스에 자리를 잡고 앉아 맥주를 주문했다.



지치지도 않았는지, 우리는 맥주를 앞에 두고 각자 나라에 대해서 많은 얘기를 했다.

언어, 직장, 결혼, 사회 복지, 가족, 연애...


내가 한참 얘기하는 걸 듣고서는, 잠시 고민하더니 이렇게 말했다.

-너는 네 나라인 한국을 정말 사랑하지만, 동시에 많은 부분이 좀 더 나아졌으면 하는 것 같아.

그리고 그걸 네가 직접 해보려는 의지가 있는 것 같고.

-... 그래?


누군가가 나를 이렇게 진지하게 분석해주는 것.

대화를 하며 순간순간의 주제에 맞장구만 치는 게 아니라, 내가 하는 이야기를 통해서 내 인생의 큰 흐름을 객관적으로 봐주는 것.

오랜만이었다.


-그나저나, 넌 몇 살이야?


...?

서로의 나이도 모르고 있었다는 게 그제야 생각나면서, 신기했다.

처음 알게 되자마자 하는 호구 조사 때가 아니라,

서로가 속해 있는 사회의 이슈를 얘기하면서 자연스럽게 나이를 알게 되다니.

정말 여행 중이고, 서로가 서로에게 외국인이어야 가능한 일이 아닐까.


-스물넷. 너는?

-스물일곱.

-오빠네. 한국에서는 나보다 나이가 많은 사람은 이름으로만 부르지 않고, 언니나 오빠처럼 뒤에 호칭을 붙여.

-ㅋㅋㅋ 뭐?

-오빠.

-진짜 웃긴다. 독일어로 오빠(Opa)는 할아버지야.


이렇게 실없는 소리도 하는 동안

맥주는 벌써 두 잔째 비어 가고 있었다.



둥근 테이블에서 마주 보고 앉지 않고,

둘 다 광장을 향해서 비스듬히 옆으로 앉아있었다.


중간중간 잠시 대화가 끊길 때마다 나는 계속 이마를 쓸어 올리고, 눈을 마주치지 않고 광장 쪽만 바라봤다.

그런 나를 얘는 웃기다는 듯이 계속 빤히 쳐다보고.

아, 옆통수가 민망하다.



-근데, 독일 남자들이 원래 연애를 오래 하는 편이야?

-그건 왜?

-나 미국에서 공부할 때 친했던 독일인 친구들은 다들 3, 4년씩 사귄 여자친구가 있더라고. 

여자친구 자랑도 많이 하고, 미국에서 다른 여자 만나지도 않고, 돌아가면 결혼할 거라 했어.

인상 깊었지.

-글쎄. 어느 나라든 그렇겠지만, 사람마다 다른 거 같아.

나는 제일 긴 연애가 1년 반이었어. 뭔가 잘 질려하는 것 같아.

... 그래서 여자친구, 뭐 지금은 전 여자친구지만, 랑도 헤어졌지.


...?

분명히 ex와 broke up이라는 단어를 들었다.

정말?


-왜 전 여자친구야?

-사실 걔랑 같이 포르투갈 여행을 예약했어.

와서 리스본 구경하고, 마데이라 섬에 같이 살 집을 사려고 넘어가려 했는데. 

여기 오기 2주 전에 헤어져서 나 혼자 오게 됐어.


한국어로도 영어로도 위로가 서투른 나는 순간 어떤 표정을 지어야 할지 몰랐다.


-친구로 10년 넘게 지내다가 내가 걔가 너무 좋아져서 고백했는데, 거절하더라고.

원래 우울증이 심한 애여서 자기는 누구와 함께 있으면 상대도 힘들어진대나.

그래도 내가 워낙 외향적이니, 나와 함께 있으면 괜찮을 거라고 설득해서 1년 넘게 만났어.

괜찮을 줄 알았지. 근데 실제로도 많이 힘들더라고.






-들어가는 거 보고 갈게.

-아니야, 굳이 이 동네까지 와주고 리스본 구경도 시켜줬는데.

나는 바로 앞이 숙소니까 너 가는 거 보고 걸어가면 돼.

-... 그래 그럼, 들어가서 꼭 메세지 해.


택시 앞에서 한 번 꽉 안아주고는 차에 탔다.

아, 서양권 문화 중에서 이런 일상적인 허그가 제일 좋아.


기사 아저씨한테 5유로를 주면서 잘 데려다 달라고 했더니, 얘가 빵 터진다. 

-너, 누나(big sister) 같아.


택시가 시야에서 사라질 때까지 한참 보고 서 있었다.

그제야 긴장이 풀리면서, 숙소로 털레털레 걸어왔다.


아쉽다.

정말 즐거웠는데 아쉬워.

영화 비포선라이즈Before Sunrise  주인공들 기분이 이랬을까.


일찍이 잠든 룸메이트들을 깨우지 않으려고 조용히 방에 들어와서,

세면도구를 챙겨 씻고 와 누웠다.



그때 휴대폰에 짧은 진동이 울렸다.


잘 들어갔어?





* 1년 반이 지난 후 쓰는 에필로그


(계속 페이스북 친구 상태였기 때문에)

귀국 후에도 종종 '아, 이 사람 요즘 이렇게 살고 있구나' 정도는 알 수 있었다.

그러다가 몇 주 전 결혼(!)을 했다는 중요 이벤트 알림을 봤을 때의 충격이란...


혼자여행 중 우연한 만남의 묘미와 설렘을 알게 해 준 사람이 결혼을 한다니 기분이 싱숭생숭했지만, 

차라리 좋은 추억 한 페이지로 남길 수 있어서 더 잘됐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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