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건을 본격적으로 버리기 시작한 것은 2020년. 그해 큰일이 있던 것은 아니었다. 그저 놓지 못했던 끝나버린 관계를 자각하고 정리했을 뿐이다.
물건을 버리는 일은 늘 어려웠다. 두면 쓸 것 같은데, 이건 추억이 있는 물건인데, 살 빼면 입을 건데. 버리지 못하는 핑계는 차고 넘쳤다. 거기에 수납을 잘하는 애매한 능력까지 더해져 방과 베란다에 물건을 차곡차곡 쌓았다. 일 년에 한 번 대청소하는 날. 방에 있던 모든 물건을 거실에 쌓고 청소를 했는데, 그 물건을 본 가족들의 반응은 한결같았다. "이게 어떻게 방에 다 들어가?"
차곡차곡, 물건의 종류별로 때로는 추억의 스토리별로 쌓아 올린 물건. 그 성은 빽빽하고 견고했다. 그 견고함이 문제였을까? 막상 버리기 위해 청소를 해도 20ℓ 쓰레기봉투를 채우지 못했다.
그런데 2020년부터는 달랐다. 아이러니하게도 관계에 대한 미련을 정리하자 물건을 버릴 수 있게 되었다. '인연도 끝나는데, 쓰지 않는 물건에 뭐하러 그렇게 집착했을까?'라는 생각이 들자, 평소보다 쉽게 물건이 버려졌다.
물건을 버리는 일은 단지, 형체를 갖춘 물질적 대상만을 버리는 것이 아니다. 그 안에 들어있는 스토리와 추억까지 함께 버리는 일인 것이다. 그래서 물건을 버리는 것이 어려웠다. 한 발 떨어져 보니, 물건을 아끼고 챙기는 다정함이 문제였다.
다정함도 과하면 병이지.
그 애들이 그래달라고 한 것도 아닌데, 혼자서 스토리를 부여하고 아끼고. 우선순위 없이 공평하게 쌓아 올린 물건에서 버릴 물건을 찾는 일이 어려운 것은 당연했다. '티브이나 유튜브에 나오는 물건을 모으는 사람들과 나는 달라. 나는 무슨 물건이 어디 있는지 다 알고 아끼잖아?'라는 다정함을 핑계로 쌓은 장벽. 한발 물러나 보면 본질적으론 다를 것도 없는데, 다름을 핑계로 그은 선. 그 선을 걷어 내자 버리는 일의 장벽이 낮아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