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예예YEEYEE Sep 14. 2021

시작은 관계

관계를 정리하자 물건이 보였다.


 물건을 본격적으로 버리기 시작한 것은 2020년. 그해 큰일이 있던 것은 아니었다. 그저 놓지 못했던 끝나버린 관계를 자각하고 정리했을 뿐이다.


 물건을 버리는 일은 늘 어려웠다. 두면 쓸 것 같은데, 이건 추억이 있는 물건인데, 살 빼면 입을 건데. 버리지 못하는 핑계는 차고 넘쳤다. 거기에 수납을 잘하는 애매한 능력까지 더해져 방과 베란다에 물건을 차곡차곡 쌓았다. 일 년에 한 번 대청소하는 날. 방에 있던 모든 물건을 거실에 쌓고 청소를 했는데, 그 물건을 본 가족들의 반응은 한결같았다. "이게 어떻게 방에 다 들어가?"

 차곡차곡, 물건의 종류별로 때로는 추억의 스토리별로 쌓아 올린 물건. 그 성은 빽빽하고 견고했다. 그 견고함이 문제였을까? 막상 버리기 위해 청소를 해도 20ℓ 쓰레기봉투를 채우지 못했다.

 그런데 2020년부터는 달랐다. 아이러니하게도 관계에 대한 미련을 정리하자 물건을 버릴 수 있게 되었다. '인연도 끝나는데, 쓰지 않는 물건에 뭐하러 그렇게 집착했을까?'라는 생각이 들자, 평소보다 쉽게 물건이 버려졌다.


 물건을 버리는 일은 단지, 형체를 갖춘 물질적 대상만을 버리는 것이 아니다. 그 안에 들어있는 스토리와 추억까지 함께 버리는 일인 것이다. 그래서 물건을 버리는 것이 어려웠다. 한 발 떨어져 보니, 물건을 아끼고 챙기는 다정함이 문제였다.


 다정함도 과하면 병이지.


 그 애들이 그래달라고 한 것도 아닌데, 혼자서 스토리를 부여하고 아끼고. 우선순위 없이 공평하게 쌓아 올린 물건에서 버릴 물건을 찾는 일이 어려운 것은 당연했다. '티브이나 유튜브에 나오는 물건을 모으는 사람들과 나는 달라. 나는 무슨 물건이 어디 있는지 다 알고 아끼잖아?'라는 다정함을 핑계로 쌓은 장벽. 한발 물러나 보면 본질적으론 다를 것도 없는데, 다름을 핑계로 그은 선. 그 선을 걷어 내자 버리는 일의 장벽이 낮아졌다.


 그렇게 나는, 버릴 수 있는 사람이 되기 위한 마음의 장벽을 견고히 쌓기 시작했다.





버리기 연습, 에필로그, 시작은 관계, 관계를 정리하자 물건이 보였다.



작가의 이전글 쌍방 과실이지.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