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보나벤투라 Jan 24. 2023

부모로부터의 독립을 결심하다 - (1)

의존적 인격장애

23년 1월 21일 토요일, 설 연휴의 첫날 우리는 정말 바쁜 하루를 시작했다.

클라라와 함께 정동 작은 형제회 수도원에 함께 '혼인성사' 날짜를 확정하기 위해 어젯밤 받았던 신부님의 추천서를 들고 가는 길이었기 때문이다.

정동의 성당이 풍기는 분위기도, 그리고 그곳에 도착하기까지의 덕수궁 돌담길도, 주변의 교통 여건도, 비용도 모든 것들이 우리에게 딱 알맞은 곳이었다.


감사한 마음이 가득한 2호선 지하철이었다. 가던 길에 어머니께 걸려온 전화. 어머님은 어느 때와 다름없이 작은삼촌과 작은 외숙모의 칭찬을 하셨다.


'광양 출장까지 챙겨야 하는 바쁜 삼촌의 일정 때문에, 이번 설은 광주에 방문하기 어렵다는 소식을 전에 들었었는데...

그런데도 밤 중에 들러 과일과 한우 등 다양한 먹을거리를 어머니께 챙겨주러 오셨던 삼촌과 숙모.. 참 내가 잘해야겠어. 감사한 일 투성이네'


딱 그 생각이 들던 때, 전화를 끊었어야 했는데.

어느새 어머니는 내게 불평을 늘어놓고 계셨다.

세상에 나는 혼자라느니, 날 챙겨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느니, 돈도 안 가져다주는 아빠가 답답하다느니...

습관적으로 어머니는 나에게 그 어두운 감정을 호소하셨다.


나는 어머니의 그런 어두운 감정을 받아주기가 힘들고 싫기도 하여

부정적인 이야기를 그만 듣고 싶다며 전화를 끊었다.


어머니도 마찬가지로 이야기를 들어주지 않는 아들의 단호한 이야기에 기분이 상하셨겠지.

통화가 끝나고 다음 이어지는 정적 속에, 끊임없이 밀려오는 불안과 답답한 마음들.


다시 후회가 된다. 다시 어머니께 전화를 걸면 안 됐는데.. 조금 더 침착했어야 했는데..



내가 고등학생이 되던 해, 운전 일을 하시는 아버지는 주차장에서 다른 차와 접촉사고가 있었고

여러모로 생활고로 허덕이는 탓에 어머니께 그 사실을 말씀하지 못하셨다고 했다.

그 일을 혼자 해결하시기 위해 선택한 카드 돌려 막기.


눈 덩이처럼 불어나는 이자를 결국 감당하지 못하셨고,

한참 일이 커지고 나서야 어머니께서도 알게 되셨다.

그리고 우리 가정은 더 더 더 바닥으로 무너졌다.


집으로 찾아오던 채무자와 부모님의 다툼, 그리고 이사.

나는 고1부터 착하고 성실하며, 사고 치지 않는 아들이 되어야만 했다.

 그리고 매 선택의 순간마다 나를 위한 선택보다 '가족과 경제적인 부분'을 우선적으로 생각해야 했다.


어머니께서는 작년   동안 만성적인 발목의 염증으로 일도 그만두게 되셨고, 병원비로 많은 돈을 쓰셨다.

그렇게 어머니의 자존감은 계속해서 바닥으로 내려갔다.


취업 후 타지에 머무는 아들로서 어머니를 챙겨드리지 못하는 안타까움부터, 무엇을 위해 살아야 하는 것인가에 대한 근본적인 고민까지. 작년 한 해, 어머니의 그 고통으로 인해 나까지 불안 증세를 겪었다. 

하필 안 좋은 일은 겹쳐 온다더니.

많고 스트레스풀한 업무강도까지, 번아웃도 함께 왔었다.


나는 심리치료와 수영을 함께 병행하며 마음을 치료해 왔다.

어느 정도 회복했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더 이상 부모님에 대해 느끼는 과도한 책임감을 던져버려야 했다.

그래서 우리 가족, 특히 어머니의 감정선과 경제적인 부분으로부터 독립을 하기로 결심했다.

하지만 그 결심을 얼마나 가져갔을까.


다시 어머니께 전화를 걸자마자 어머니께서 내게 하던 말씀.

"너희 아빠가 돈도 못 벌어오고. 내가 얼마나 힘든지 너는 아냐. 떡국에 넣어 먹을 고기   푼이 없어서 마트에서 홀로 펑펑 울었다" 이야기를 듣자마자 

나는 손과 발이 떨렸다.  괜찮아졌다고 믿고 있었던 불안증세가 시작된 것이다.


최근 아버지마저 기관지 확장증으로 고생을 하셔서 결국 두 분 모두 수입이 끊긴 상황이 발생했다.

어머니의 우울한 그 모든 감정과 그런 아빠에 대한 해결되지 않는 증오들이 다시 걸었던 통화에서 폭발했다.

그 감정의 화살들은 멀리 떨어져 있는 내 가슴에도 수없이 박혀왔다. 너무 마음이 아팠다.


'어머니께서 저렇게 힘들어하시는데, 나는 이렇게 혼인을 해도 되는 걸까? 내가 그 기쁨을 누릴 자격은 있는 건가. 결혼을 미루고 어머니를 좀 더 책임져야 하는 것일까. 내가 외면하면 어머니가 안 좋은 선택을 하시진 않을까. 어떡하지.' 온갖 생각에 휩싸이며 내 손은 어머니께 50만 원을 이체하고 있었다.


그리고 정신을 차려보니, 어느새 내렸어야 할 시청역도 지나버렸다. 

들리지도 않던 옆에 있던 클라라의 말이 들리기 시작했다.


속수무책으로 무너지는 나를 보며, 그리고 어머니께 다시 감정적, 경제적 의존성을 더해주는 내 선택에

함께 옆에 있던 클라라는 나에게 우리의 혼인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 보자고 이야기했다.


덕수궁 돌담길을 걸으며, 클라라와 나는 우리가 만나던 어느 때보다도 침묵의 시간에 빠져있었다.

나는 여전히 과거에, 그리고 클라라는 우리의 미래에 대해 생각하며.


그렇게 서로 생각해 볼 시간을 갖자며 헤어졌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