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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시나비 Feb 11. 2020

몬트리올의 겨울, 낭만적 ep.3

몬트리올에 눈이 내리면

며칠 째 몬트리올은 겨울왕국이다. 


하루 종일 오고, 또 오는 바람에 길 가에 눈이 1미터가량 쌓여 있다. 이 와중에 차도 버스도 그대로 다니는 걸 보면 대단하다 싶다. 눈이 많이 오니까 자연스럽게 눈 관련 산업들이 발달하나 보다. 제설차도 무척이나 다양하고 가정에서 눈을 치우는 도구도 가지각색이다.


한 번 오면 왕창 오니까 차가 눈에 파묻히기 십상이다. 말 그대로 차를 눈에서 '파내야' 한다. 엊그제 경찰들이 차를 세워놓고 딱지를 끊길래, 신호를 위반했거나 안전벨트를 안 했나 했더니만 차 위에 쌓인 눈을 치우지 않아서란다. 족히 이십 센티는 될법한 눈을 그대도 얹고 다니다가 길 위에 쏟아지거나 뒤차의 유리창에 날리면 사고를 낼 수도 있겠다 싶긴 하다.


여기는 겨울에 접어들면 무조건 스노우 타이어로 4개 모두 교체해야 한단다. 하나에 무려 1,000달러 가까이 나간다고 하니 서민들에게는 적잖이 부담이 되겠다. 시내를 달리는데도 사륜 구동이 아니면 운전하기가 쉽지 않아 보인다.


공부하는 두 엄마 


사정이 이러하니 눈이 제법 온 다음 날에는 학교가 쉰다. 여차하면 수일 동안 휴교하니까 아이들은 신이 나겠지만 일하는 엄마들은 죽을 맛이겠다 싶다. 아닌 게 아니라, 우리 어학반 6명 중에 4명이 지난 금요일에 나타나지 않았다. 죄다 남미 사람들이라서 눈을 감당치 못해 안 오나보다 했다.


주말이 지나고 월요일인 오늘도 또다시 눈발이 씩씩하게 휘날리길래, 오늘도 안토니오랑 나랑 둘이만 수업하나 보다 했는데 뒤늦게 클라우디오와 디에고가 나타났다. 1시간 반 수업이 지나가고 쉬는 시간이 거의 끝날 무렵 발렌티나가 문으로 들어섰다. 일곱 살 정도 되어 보이는 아들을 데리고! 누가 봐도 20대 중반의 앳되어 보이는 발렌티나에게 아이가 있다는 말을 안토니오를 통해 슬쩍 듣기는 했지만 저렇게 큰 사내아이일 줄이야.


아이는 교실 구석에 자리를 잡는 즉시 엄마에게 스마트폰을 건네받았다. 엄마가 수업받는 동안 싱글거리며 뭔가를 열심히 시청하고 있었다. 신경은 좀 쓰였지만 그렇게 조용히 앉았다 가려나 보다 했는데, 중간에 뭐가 문제가 생겼는지 엄마와 스페인어로 시끌벅적 대화를 주고받았다.  나도 모르게 얼굴이 찌푸려졌다.


'뭐야, 어학원에 애를 데리고 오면 어떻게 해? 다른 사람 생각은 안 하나? 어학원에 허락은 받은 거야?'


몇 번이고 시간을 확인해도 두 번째 시간은 천천히 흘러갔다. 수업을 진행하는 로망 선생님도 애써 티를 안 내려고 노력하지만 불편해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다만 디에고는 발렌티나와 간간히 이야기를 주고받기도 하고, 아이를 흐뭇하게 바라보기도 하면서 지지를 보내는 모습이었다.


드디어 수업이 끝났다. 다른 날보다 서둘러 짐을 챙겨 나오면서 문득,


'아이 이름을 물어볼까?'


생각이 스쳐갔지만  끝내 묻지 않았다. 내가 참 못 됐구나, 싶었다. 지각하면서도 아이를 데려와 절반이라도 수업을 들으려는 어린 엄마의 마음은 오죽했을까, 그제서야 생각이 거기에 미쳤다.


2009년에 처음 시민단체를 세우고 일을 시작했을 때 둘째 한결이가 딱 저만 했는데... 기억이 났다. 혹여나 아이가 눈병이 나서 학교에 못 가는 날이면, 한쪽 눈이 벌겋게 부어오른 아이를  사무실에 아이를 데리고  나가 한 구석에서 조용히 그림을 그리거나 책을 읽게 했었더랬다. 주말에 행사라도 할라치면 애들 둘을 양 손에 하나씩 붙들고 허겁지겁 현장에 도착해, 핸드폰을 건네주고 게임을 하게 시켰다. 금기의 세계가 활짝 열리자 아이들은 '이게 웬 떡'이냐며 싱글벙글 좋아하곤 했다. 땡볕에 머리에 내리쬐는데도 아랑곳하지 않고.


엄마가 공부를 한다는 것도 일을 하는 것만큼이나 쉽지 않다. 가뜩이나 브라질에서 와서 눈이 익숙하지 않을 텐데, 폭설 때문에 아이를 옆에 끼고 남들 눈치 보며 공부해야 하는 발렌티나는 몬트리올의 무지막지한 눈이 얼마나 원망스러울까.


다음에 또 발렌티나가 아이를 데려오면 이름을 물어봐야겠다.

눈에 파묻혀 버린 차. 하룻밤 사이에 저렇게나 쌓여 버렸다. 아침이면 삽을 들고 차를 구출하는 사람들을 흔하다.

어느 건물 주차장에 생긴 눈 언덕. 눈썰매를 타도 되겠다. 남다른 몬트리올 눈의 클라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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