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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시나비 Feb 10. 2020

몬트리올의 겨울, 낭만적 ep.2

새로운 시도, 새로운 연결

비건을 향해 한 걸음 가까이


한 주 동안 <아무튼 비건>(김한민/ 위고, 제철소, 코난북스)을 공들여 천천히 읽었다. 아무튼 시리즈는 대략 다 좋지만 그중에 요즘 주목을 받는 책이라고 해서 샀다. 파주 동네책방 <쩜오책방>에 강의 갔다가 산 책 중에 하나다. 2017년 7월에 치앙마이에서 한 달 살이 할 때도 채식을 했었더랬는데, 외국만 나오면 채식을 하고 싶어지니 이상하기도 하다.  JC는 저자를 잘 안다고 했다. 멋진 사람이라고 덧붙이기도 했다. 읽기도 전부터 신뢰가 간 이유이다.


책에 두어 군데 밑줄을 진하게 긋고 귀퉁이를 접었다. 지난번 이사하면서 중고책을 팔 때 밑줄이 있으면 값이 대폭 떨어진다는 사실을 안 후에 밑줄은 금기사항이었는데 어쩔 수 없었다. 너무 강하게 와 닿았으니까.


"역사상 한국이 이토록 잘살았으나 이토록 이기적인 때는 없었다." (72쪽)

"우리는 과학적 발견을 토대도 동물과 자연에 대한 새로운 윤리 기준을 마련해야 한다. 그것은 동물, 자연, 외국인, 소수자... 나와 다른 타자를 배재하는 대신 최대한 아우르는 '새로운 우리'를 발명하는 일이다. 그리고 그 발명은 거창한 구호가 아니라 일상의 실천에서 시작된다." (73쪽)


첫 번째 인용구에서는 크게 끄덕였고, 두 번째 인용구에서는 마음이 뭉클했다. 이 책의 부제가 "당신도 연결되었나요?"인 이유가 이거였구나 싶었다. 비건을 말하면서 연결을 덧붙인 이유가 뭘까, 겉표지만 봐서는 감이 잘 오지 않았었더랬다. 73쪽에서야 저자가 말하는 연결이 뭔지 단단히 알아들었다.


저자는 말한다. 비건을 지향하는 삶이 단순히 동물복지 차원만은 아니라고. 세상에서 가장 약한 존재들을 보호하고 그들의 영혼과 통하는 일이라고. 나와 조금이라도 다르면 가차 없이 '우리'의 테두리 밖으로 밀어내는 한국 사회가 더욱 안타까워졌다.


난민을 비롯한 이주여성과 13년을 일하면서 대답을 찾아왔는데 <아무튼 비건>에서 답을 발견할 줄이야. 한국 사람들이 차이를 쉽게 받아들이지 못하고 작은 차이에도 알레르기 반응을 보이는 이유가 뭘까, 늘 궁금했었다. 같은 외국인이라고 해도 결혼이주여성은 그나마 우리의 테두리에 넣어주지만 난민은 어림도 없지 않은가. 같은 한국인이 어도 동성애자는 손사래를 치며 금 밖으로 밀어내기도 한다.  


저자는 이런 우리에게 '새로운 우리'를 발명해야 한다고 역설한다. 발견도 아니고 발명이다. 이제까지 없었던 개념이기 때문일 것이다. 동물, 자연, 외국인, 소수자까지 테투리 안으로 기쁘게 받아들이는 날이 과연 올지, 모르겠다. 여전히 전망이 어두워 보이기 때문이다.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가 세계를 긴장케 하는 마당에 중국과 엎어지는 코 닿을 거리에 위치한 한국은 긴장을 넘어 공포로 가득 차 있다. 뉴스를 보면 여기저기서 중국인 혐오가 터져 나온다고 한다.


아이러니하게도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로부터 상대적으로 안전한 몬트리올에서도 중국인 혐오를 직접 경험했다. 캐나다에 오면서 토론토에서 갈아탈 때였다. 환승 시간이 짧아 잔뜩 긴장해 있으면서도 마스크는 벗지 않았다. 13시간 내내 비행기에 탄 대부분의 사람들이 마스크를 쓴 채였으니 할 말 다 했다. 너무 답답해 잠깐 내렸다가도 뒷사람이 기침을 세게 하면 얼른 끌어올리곤 했더랬다. 토론토 공항에 내려 입국 신고를 하는 사람들 중에 유난히 아시아 사람들만 어른부터 아이까지 마스크로 무장한 상태였다.


재빨리 짐을 찾아 몬트리올로 가는 게이트로 향해 급히 서둘러 가면서 직원에게 길을 묻자,  마스크를 허겁지겁 끌어올리더니 손으로 방향을 가리키는 것이 아닌가? 순간 울컥해서 'I'm not Chinese.'라고 항변하고 싶었으나 공항이니까 더욱 긴장해서 그러려니 하고 가던 길을 재촉했다.


수요일쯤이었나 보다. 어학원에 가려고 오렌지선에 몸을 실었을 때였다. 타자마자 가운데 기둥 손잡이를 잡으려는데, 어떤 젊은 여성이 눈에 띄게 불편한 기색을 보이면서 자리를 옮겼다. 마치 내가 바이러스 덩어리라도 되는 것처럼. 속으로 놀라기도 하고 약간 서럽기도 했지만 따지는 것도 구차해서 참았다. 어학원 같은 반에서 앞자리에 앉는 말루스도 내가 기침을 하자 농담조로, 'Corona Virus?'라고 하길래 'Pas du tout'(전혀 아니야)라고 받아치며 웃었는데 그때랑은 또 다른 느낌이었다. 전혀 모르는 타인에게 아무 이유도 없이 의심받고 배척받는 기분은 뭐랄까, 좀 더러웠다.


이래저래 <아무튼 비건>을 읽으면서 최소한 적극적으로 채식을 지향하기로 마음먹었다.  동물을 '새로운 우리'의 영역으로 받아들이기로 한 것이다. 완벽주의를 버리고 시작하라는 저자의 조언에 따라 비건보다는 '세미-비건'이나 '페스코 베지테리언'으로 발을 떼려고 한다. 해산물이나 계란, 유제품 정도는 허용하는 채식주의를 말한다. 아직 요거트나 치즈를 포기하기에는 결심이 단단하지 못하다. 해산물도 문제가 많기는 하지만 그래도 아직 올리브 오일을 듬뿍 넣은 감바스는 포기하기 어려우니까.


원래도 고기를 즐겨 먹는 편은 아니었다. 아침부터 삼겹살을 구워 먹는다고 당당히 말하는 모 연예인을 보면 '왓더-?' 소리가 절로 나왔으니까. 덩어리 고기를 사서 지글지글 구워 먹는 경우는 몇 달에 한 번 있을까 말까 한 일이었다. 내가 10년 동안 대표로 일한 <에코팜므>에는 회식 문화가 거의 없다시피 했다. 혹시나 특별하게 기념할 날이라 하더라도 점심 브런치 정도로 끝내는 정도였다.


오래전부터 채식을 해오기로 유명한 이효리가, 채식하면서 어려운 점이 뭐였냐는 질문에 '만두는 포기하기 어려웠어요'했던 기억이 이상하게도 선명하게 남아 있다. 다진 고기인 데다 야채와 골고루 섞여 하얀 밀가루 옷을 곱게 입은 만두. 한 입 물면 육즙이 터져 나오는 만두에게 슬슬 안녕을 고해야 하다니, 만두러버로서 마음이 아려 온다. 바야흐로 '육즙'이라는 생생한 단어와도 결별을 고해야 할 때이다.    


지난 일주일은 대체로 성공적이었다. 소시지에 잠깐 무너지기는 했지만 말이다. 어제가 토요일이라 쥔장 언니랑  브런치를 먹으러 갔다가, 에그 베네딕트 세트에 따라 나오는 소시지를 차마 거부하지 못했다. 결국 입으로 넣지 못하고 싸 왔는데 오늘 아침에 먹고야 말았다. 괜히 더 싸고 더 기름지게 느껴졌다. 김한민 저자가 추천해 준 <Dominion>이라는 다큐에서 본 돼지들이 눈 앞에 아른거렸다.  너무 좁아 몸을 돌릴 수도 없는 공간에서 배설물에 뒤덮여 새끼에게 힘겹게 젖을 먹이는 모습이. 소시지와도 이별하는 연습을 할 때가 왔나 보다.   

<아무튼> 시리즈는 버릴 게 없다. 나도 <아무튼 —>를 쓰고 싶다.

 마음에 드는 카페 <Artisan Xavier>. 매일 같이 수프가 바뀐다. 야채수프+마키아토가 약 8,500원. 창밖으로 날리는 눈을 바라보며 뜨끈한 수프를 먹으면 기분이 놀놀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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