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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시나비 Feb 11. 2020

몬트리올의 겨울, 낭만적 ep.4

<작은 아씨들>은 작지 않다.

주말을 맞이하야 시내 극장에 갔다. 


몬트리올의 첫 번째 영화관으로 베리위캄Berri-Uquam 역에서 2분 거리인 오데옹Odeon 극장을 점찍었다. 영화는 진즉부터 기다렸던 <작은 아씨들 Little women>. 2년 전부터 홀딱 빠져 버린 그레타 거윅 감독의 신작이라 기대가 충만했더랬다. 


그레타 거윅이 누군가? <프란시스 하>로 헐리우드에 단단히 눈도장을 찍은 후  <매기스 플랜>으로 진가를 확인시키고 나서 바로 감독으로 데뷔한 인물이다. 처음으로 메가폰을 잡은 <레이디 버드>는 첫 작품이라고 믿기 어려울만큼 수작이라 미국비평가협회상 감독상을 수상하기에 이른다. 연기면 연기, 영화면 영화. 그레타 거윅은 일찌감치 자기만의 세계를 구축해 놓은 듯 하다. 


눈 때문인지 원래 그런지, 극장은 한산했다. 기껏해야 내 앞에 서너명이 표를 사고 있을 뿐이어서 금방 표를 사서 2층으로 올라갔다. 한국에서는 핸드폰으로 예매를 하고 10분 전에 후다닥 날아가는데 캐나다에 와서 처음 보는터라 한 시간 전부터 대기를 탔다. 따끈한 쇼콜라쇼(Chocolat chaud, 핫초콜릿을 여기서는 이렇게 부른다)를 받아들고 <선량한 차별주의자>를 읽었다. 쇼콜라쇼에서 민트맛이 돌았다. 


3시 10분 전, Salle 7(7번 상영관)로 들어갔다. 표를 꼼꼼히 아무리 들여다 봐도 자리가 적혀 있지 않길래 앞쪽에 가서 앉았다. 언제나 그렇듯 영화는 앞에서 보아야 제맛이니까. 


예고편 몇 편과 광고 몇 개가 줄줄이 나오더니 드디어 영화가 시작했다. 그런데... 세상에... 시얼스 로난이 불어로 말하는 것이 아닌가! 이게 대체 무슨 일인가, 잠깐 정신이 아득했으나 '더빙이구나' 깨달음이 왔다. 표를 살 때부터, 상영관 입구의 포스터를 확인할 때부터 이 사태를 예견했어야 했다. <Little women>이 아니라 <Quatre filles(네 명의 소녀들)>이라고 불어로 적혀 있었건만. 그냥 불어권이니까 표도 포스터도 불어로 적어놓았겠거니 했지, 설마 하니 더빙을 해서 보여줄 줄은 상상도 못했더랬다. 


울고픈 심정이었다. '그냥 나갈까?' 싶은 마음이 간절했다.  내 불어실력으로는 내용을 다 파악하기 어렵기도 했고,  주인공들의 실제 목소리를 아는 마당에 어설프게 비슷한 불어 목소리로 굳이 들을 이유가 없었다. 게다가 원래 언어가 아닐 경우 뭔가 어색하기 그지 없으니까 말이다. 거리나 상점에서 마주치는 대부분의 몬트리올 사람들이 영어를 밥 먹듯 술술 하는데 어찌하여 힘들여, 돈들여 더빙을 한단 말인가. 불어 자막을 달면 될 일인 것을! 오호, 통재라. 통단한 마음을 금할 길이 없었으나 꾹 참고 앉아 있었다. 12.99달러가 아까워서. 


처음에는 흡사 초등 시절 토요일마다 빰빠바밤 빰빠바밤 빠빠밤 하고 시작하는 주말의 명화를 보는 기분이었다. 그래도 수 십 분이 흐르자 어느 정도 적응도 되고, 단 일주일이지만 어학원에서 빠른 속도의 듣기연습을 한 덕분인지 꽤 알아들었다. 게다가 위노나 라이더가 조Jo 역할로 열연한 <작은 아씨들>(1994, 질리안 암스트롱 감독)를 복습하고 온 터라 줄거리를 꿰고 있으니 흐름을 따라가기에는 충분했다. 


 둘 다 여자 감독이 만들었는데도 질감이 달랐다. 그레타 거윅은 질리안 암스트롱의 작품을 교과서로 삼아 아주 영리하게 재배열하고 이야기 방식에 변화를 주었다. 암스트롱의 <작은 아씨들>이 시간순대로 흐른다면, 거윅의 동명작은 과거와 현재를 계속해서 오갔다. 영화는 조가 뉴욕에 가서 작가로 필명으로 푼돈을 버는 장면부터 시작했다. 맨 처음 과거로 갈 때는 '7년 전il y a 7 ans'이라고 상냥하게 알려준 후로는 과거와 현재를 관객들이 스스로 구분하게끔 과감하게 불친절을 시전했다. 영화가 불친절한만큼 관객은 능동적으로 영화에 몰입해야 했다. 


두 세 장면이 특별하게 느껴졌다. 조가 편집자에게 자기의 요구 조건을 말하는 장면에서 정면을 바라보았다. 마치 관객에서 직접 이야기 하듯이. 영화 속에서 인물들끼리 자연스럽게 이야기를 주고 받다가 갑자기 정면을 보고 이야기하면 관객들은 흠짓 놀라기 마련이다.  마치 '이건 영화이고, 당신들은 지금 스크린을 통해 나를 바라보고 있어.'라고 깨우쳐 주듯 말이다. 이런 장치 역시 낯설게 하기를 통해 관객을 능동적인 해석자요 참여자로 만들어 준다고 하겠다. 더불어 조도 더욱 능동적인 여성의 모습으로 그려졌다. 


맨 마지막 장면에 이르러 거윅은 좀 더 장난을 부렸다.  조가 편집자와 책의 마무리를 놓고 실랑이를 벌이는 내용에 따라, 장면이 두 가지 버전으로 반복해서 나타났다. 로맨틱한 마무리와 현실적인 마무리. 결국 역으로 떠난 프레데릭을 조가 만나느냐 못 만나고 놓치느냐의 문제를 감독은 재치있게 같은 장면을 다르게 반복하면서 영화에 낯선 재미를 부여했다. 


자기 이름으로, 자기의 이야기를, 자기의 문체로 써서 당당하게 작가로 데뷔하는 조. 그레타 거윅은 고전의 뻔함과 지루함을 시간 배열과 말하기 방식, 차이를 둔 반복을 통해 조를 더욱 주체적이고 능동적인 여성으로 그려내는데 성공했다.  


불어 더빙 때문에 무너졌던 마음을 추스리기에 적절한 연출이었다. 그래도 영어 원본으로 다시 봐야겠다고 마음 먹었다. 매주 화요일에는 영화를 할인해 준다니까 다른 극장을 섭외해 봐야겠다. 마가린에 비빈 밥을 먹은 것처럼 느끼함이 가시지 않았다.   

몬트리올 첫 영화표. 좌석이 따로 없다. 1층에서 상영관으로 올라갈 때 옆 귀퉁이를 쭉 찢어준다.  나름 고전적.

우리의 영웅, 우리의 자랑. <기생충> 몬트리올에서도 상영중. 

이거슨 무슨 신문물인가! 프링글스 자판기라니. 한슬양이 보면 꺄악- 소리지르겠구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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