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렇게 열심히 공부할 일인가?
열심히 공부할 일이다.
몬트리올에서 어학연수를 하는데 드는 비용은 결코 만만치 않다.
한 달 기준으로 조목조목 꼽아보자면 이렇다.
(CAD 1달러=약 906원)
어학원 비용: 1,000불(주당 18시간 기준)
숙소비용: 800~1,000불
교통비: 85.5불(한 달짜리 무제한 패스/ 카드 보증금 6불)
인터넷비: 35불(선불카드 1G 기준/ 유심 보증금 10불)
식비: 400~600불(참고로 나는 아침, 점심만 먹는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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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 계: 2,330~2,730달러(한화로 211만 원~247만 원)
문화생활을 하나도 안 하고 옷도 한 벌 안 샀을 때 이 정도니까 꽤 비싼 편이다. 돈을 벌지는 못하고 그대로 지출만 하는 상황이니까 최대한 아껴 써야 한다. 어학원 학비와 숙소비용만 합해도 이미 180~200만 원에 육박하는지라 정신 바짝 차리고 용돈을 존졸히 쓰지 않으면 예상 비용을 훌쩍 넘어가기 마련이다.
다행히 집세를 제외한 식료품비나 공산품은 한국과 비슷하거나 오히려 저렴하다. 교통비는 원래 1회에 3.5불(약 3,200원)인데 월 단위로 끊으면 85.5불(약 77,500원)이니까 은혜롭기 그지없다.
항공료를 비롯한 대부분의 비용을 모으느라 작년 1년 간 들어오는 일은 뭐든지 마다하지 않고 다 했다. 강의는 물론이거니와 추천사부터 번역, 여행안내, 공정무역 회사에서 파트타임으로 일까지. 돈이 통장에 꽂히는 대로 따로 빼서 차곡차곡 모아 항공료와 집세부터 마련했다. 2월부터 4월까지, 어학원 3개월 비용은 미처 다 모으지 못하고 나머지 2개월 분은 카드로 결제했다. 모으지 못했다기보다 중간중간 역마살이 도져 여행 다니느라 써 버렸다고 해야 맞겠다.
평소에는 등한시 하던 가계부를 구글 드라이브에 제대로 만들어 지난주에 쓴 비용을 죄다 기록했다. 무려 3,770달러(약 340만 원)! 물론 어학원 나머지 두 달 분과 한 달 치 월세, 유심비, 한 달짜리 교통카드 등 굵직한 항목들이 포진하고 있어 그러려니 싶었지만 철 없이 책도 사고 점심도 매일 사 먹은 게 후회스러웠다.
이번 주부터는 허리띠를 졸라매기로 했다. 100불로 일주일 살기 도전. 점심은 가능하면 집에 와서 먹거나 도시락을 싸가서 먹기로 마음먹었다. Artisan Xavier의 뜨끈하고 깊은 야채수프와 고소하고 진한 마키아토 에스프레소가 눈 앞에 아른거리지만 그것도 일주일에 한두 번만 먹는 걸로.
가계부를 정리한 후에 남편에게 슬쩍 문자를 넣었다. 용돈 30만 원으로는 부족할 것 같다고 쬐금만 올려달라고. 주당 100불로 간신히 막는다고 해도 36만 원이 넘으니까 말이다. 한국에서는 한 달 용돈이 15만 원이었더랬다. 거기에 교통비 8만 원, 통신비 8만 원 정도를 따로 지원받았으니까 결국 30만 원 약간 넘게 받은 셈이었다.
공식적으로는 그렇고, 내가 강의 알바를 해서 버는 돈 중에 일부를 떼어 일주일에 한 번은 혼자 맛있는 것도 먹고 사고 싶은 책도 샀었다. 기본적으로 생활비를 내가 운영하니까 가족 식비며 외식비, 문화생활비에 슬쩍 묻어갈 수가 있었다. 지난주에 왜 돈을 많이 썼나 곰곰이 생각해 봤더니만, 4인 기준으로 지출하는 버릇이 들어서 그런 모양이었다. 이제 당분간 오로지 혼자만을 위해, 용돈만으로 사는 법을 몸에 익혀야겠다.
이렇게 비싼 값을 지불하고 어학원에 다니면서도 지각과 결석을 밥 먹듯 하는 디에고와 발렌티나는 대체 왜 그러는 건지 안타까워졌다. 처음에는 이민자들을 위한 무료 수업을 제공받는 건가 싶었지만, 그런 학교는 별도로 있고 내가 다니는 어학원은 해당이 없다는 것을 알았다.
디에고, 발렌티나~ 얘들아 열심히 쫌 하자.
위고 선생님 vs. 로망 선생님
처음 Niveau 5반에 들어갔을 때 선생님은 위고였다. 수요일까지 가르치더니 겨울 휴가를 떠나버렸다. 그 자리를 로망 선생님이 4일 동안 메꾸었다. 둘을 비교하자면 이렇다. 위고는 캐나다 사람이라 캐나다 불어인 퀘베꾸아를 능숙하게 구사하고 본능적으로 틀린 문법을 잡아내지만 막상 문법 설명에는 약하다. 로망은 콜럼비아 출신으로 프랑스에서 공부를 했다. 발음이 좀 구리고, 프랑스 불어에 익숙해서 듣기 시간에는 자기도 좀 헤매지만, 문법은 아주 명확하게 설명해 준다.
재밌달까 불편하달까, 싶은 지점은 우리 반 대부분이 남미 출신이라는 거다. 외국어를 배울 때 모국어의 발성 방식이 엄청나게 영향을 끼친다. 남미 국가 중에 99%는 스페인어를 쓰고 유일하게 브라질만 포르투갈어를 쓴다. 과거 제국주의 시절에 어느 나라의 지배를 받았느냐에 따라 언어의 운명이 갈렸다고 하겠다. 안토니오 말로는 스페인어와 포르투갈어가 많이 다르다고 하지만, 결국 둘 다 라틴어에서 갈라져 나온 언어이니 불어와 뿌리를 같이 한다.
어원은 비슷하지만 발음 방식은 많이 다른가 보다. 고정적으로 틀리는 발음들이 있다. 예를 들어, 1인칭 단수 주어Je를 '쥬'가 아니라 '제'라고 읽는 게 대표적이다. 여기저기 곳곳에 포진한 'e' 발음이 가장 발목을 잡는다. 로망 선생님이 매번 교정을 해 주지만 계속 도돌이표를 찍는다. 사실 로망 선생님도 긴장하지 않고 말할 때는 어이없게 틀리니 말이다.
어제로 로망 선생님의 4일 치 수업이 끝났다. 시종일관 진지모드라 처음에는 좀 답답하고 재미가 없었지만 문법을 정성껏, 알아들을 때까지 설명해 주어 고마웠는데 아쉽다. 작은 선물이라도 할 걸 그랬나... 얕은 후회가 든다. 건조해서인지 연신 비벼서 벌게진 얼굴이 성인 아토피로 고생하는 것 같았다. 우리 딸도 아토피로 여태 고생 중이니 남일 같지 않았다.
"로망, 고마웠어요."
수업 시작하기 30분 전 Stratford 교실의 모습. 이미 안토니오가 와 있다.
나랑 제일 친한 반 친구들. 안토니오와 말루스. 둘 다 브라질에서 왔다.
어학원 입구. 수업 첫 날은 레벨테스트를 받으러 아침 7시 반까지 가야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