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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밸류비스 박혜형 May 11. 2021

아들은 '고수'

"엄마.... 엉~~~"

아이가 학원차에서 내리는데 옆에 있는 형이 자기 눈을 찔렸다며 훌쩍거리며 저를 보자마자 안기며 웁니다.

아이가 우는 모습을 보면 엄마 마음은 참 아픕니다. 일단 우는 아이를 진정시키고 왜 눈을 찔렸는지 물어보았습니다. 그랬더니 쭈니도 손가락질을 한 거 같긴 합니다. 자기는 눈 옆에 그랬는데 형아는 자기 눈을 찔렀답니다. 뭔가 장난치면서 손가락질을 한 듯합니다. 장난치다 보면 그럴 수도 있는 거니깐 눈이 많이 아프냐고 엄마가 집에 가서 자세히 보겠다고 달랬습니다. 그런데 쭈니가 하는 말이...


“엄마, 그 형아가 나쁜 말을 했어요.”

“응? 어떤 나쁜 말? 쭈니한테 나쁜 말을 한 거야?”

“네. 나쁜 말이어서 할 수 없어요.”

“엄마가 어떤 나쁜 말인지 알아야 되니깐, 그 형아가 뭐라고 나쁜 말을 한 거야?”

“바보래요.”

“뭐라고? 너한테 그런 말을 했다고? 그래서 넌 가만히 있었어?”

“그런 말은 나쁜 말이야 라고 했어요.”


요즘 아이가 학원 차량에서 고학년 형들이랑 같이 차를 타는데 형들의 행동과 말투가 썩 좋지 않은 사건이 종종 있었습니다. 다행히 학교에서는 별 문제가 없는 것 같아 보이는데, 학원 차량에서 만나는 형들이 한 번씩 쭈니 기분을 상하게 하는 말과 행동을 하는 듯합니다.

아이가 다른 사람으로부터 말과 행동에 기분이 상하면 엄마인 저도 기분이 무척 상합니다.

집에 와서 간식을 주며 일단 쭈니의 감정 상태를 완화시키고 어떤 대화가 오갔는지를 확인했습니다. 3학년 형이 몸무게가 몇 kg 이냐고 물었고(쭈니는 초등학교 1학년이지만 거의 3학년과 비슷한 덩치의 소유자입니다.^^), 쭈니는 정확히 얘기 해 주지 않아 일단 형은 기분이 상한 듯했습니다. 뭐 아이들 사이에서 어떤 말과 행동이 오갔는지 명확히 알 수 없지만 이번 사건으로 제가 고민이 되는 것은 앞으로 쭈니가 주위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말이나 행동에 상처를 받는 일은 분명히 또 생길 것이라는 것이고 이때 쭈니가 ‘어떻게 자신을 보호하고 대처하는 행동을 해야 하는 것일까’였습니다. 

다행히 쭈니가 그 말에 상처를 받은 거 같지는 않았습니다.

학교에서 담임 선생님이 나쁜 말을 하는 사람은 ‘하수’라고 가르쳐 주었기 때문이죠.

“엄마, 말에는 힘이 있어요. 나쁜 말을 하면 안 돼요. 나쁜 말을 하는 사람은 하수예요. 고수는 나쁜 말을 하지 않아요.” 

학교에서 담임 선생님이 나쁜 말을 하는 것에 대해 아이들에게 잘 교육시켜 주신 것 같아 참 감사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그래, 쭈니는 하수가 아니지? 나쁜 말을 하는 사람은 그 말을 하는 사람이 부끄러운 거야. 나쁜 말 하는 사람은 상대하지 마. 앞으로 버스에 앉을 때는 뒷자리에 형들이랑 앉는 것보다 앞쪽에 앉는 게 더 좋을 거 같아.”

“엄마, 앞자리에 자리가 없어서 뒷자리에 앉았는데.. 다음에는 앞쪽에 앉을게요.”

일단 대화는 이렇게 종료하고 쭈니는 간식으로 기분 전환을 했습니다.      

그러나, 제 맘 속에는 계속 고민이 남아 있었습니다.

얼마 전 놀이터에서 고학년 남자아이들이 노는 걸 본 적 있었는데, 솔직히 그때 저는 기함을 했습니다. 초등학교 4, 5학년 정도 되어 보이는 아이들이었는데 아이들이 쓰는 말이 너무 거칠었고, 말끝마다 시옷이 들어가고 무리를 지어 노는데 몇 년 후 우리 쭈니도 친구들과 저렇게 놀까?라는 생각을 하며 마음이 답답했었습니다. 주위 엄마들에게 고학년 남자아이들 노는데 이런 말을 하더라 하니 별로 대수롭지 않게 요즘 애들 다 그렇다고 하더군요.

남자아이를 키우는 엄마들은 그냥 마음을 내려놓고 아이들 욕하는 거는 둘째치고 사고만 치지 않으면 된다라는 마음으로 산다고 하더군요. 이런 말을 들으니 정말 씁쓸해지더군요.   

아이는 계속 커 나가면서 부모보다 또래와의 관계를 넓혀나갈 터인데....  쭈니가 만나는 모든 사람들은 제가 관여할 수도 없고 관여해서도 안 될 것이기 때문이죠.

그러면서 드는 생각은 앞으로 종종 이런 일이 생길 때마다 아이나 저나 감정이 상할 때 어떻게 대처하는 것이 좋을까? 한번 정리를 해 두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이 들었습니다.


“쭈니야, 쭈니는 누가 쭈니한테 나쁜 말.... 음... 나쁜 말은 하면 안 되는데 엄마가 예를 들어서 설명하려고 하는 거야. 예를 들어 누가 바보, 멍청이 이런 말을 하면 어떻게 할 거야? 쭈니가 바보, 멍청이야?”

“아뇨. 저는 그렇지 않기 때문에 상대 안 할 거예요. 그런 말을 하는 사람은 하수예요. 세상에는 하수, 중수, 고수가 있는데 그런 말을 하는 사람은 하수예요. 엄마, 고수는 어떤 사람인지 아세요? 고수는 게임에서 이기든 지든 상관하지 않고 게임을 즐기고, 실패하면 다시 도전하고 노력하는 사람이 고수예요.”

오잉? 저는 생각지도 않게 쭈니한테 오히려 인생의 하수, 고수에 대해 배웠습니다.

“그래. 맞아. 나쁜 말을 하는 사람은 하수. 쭈니는 하수, 중수, 고수 중에 어떤 사람이야?”

“저는 고수예요.”

“그래? 쭈니는 고수야? 쭈니는 나쁜 말도 하지 않고, 게임을 즐길 줄 알고 져도 다시 노력하는 사람이야?”

“네. 저는 고수예요. 엄마, 존중이 뭔지 아세요?”

“존중? 존중이 뭔데?”

“존중은 친구의 부탁을 들어주는 거예요.”

하하하.... 아이에게 한 수 배운 아침이었습니다.      


혼자 노심초사하며 아이의 마음이 혹시 다쳤을까 우려했던 저의 마음에 아이가 오히려 더 마음 튼튼하고 씩씩하게 자신을 고수라 칭할 수 있어 참 대견했습니다.

‘믿는 만큼 자라는 아이’라는 말이 생각나더군요. 제가 제 아이를 믿는 만큼 아이는 알아서 잘 자라고 헤처 나가리라 다시 저의 믿음을 굳건히 하려고 다짐했습니다.      




조던 피터슨 교수의 <질서너머>를 읽는데 때마침 부모가 아이한테 하는 말 중에 이 구절이 딱 나왔습니다.

“이기고 지는 건 중요하지 않아. 중요한 건 게임을 어떻게 하는 거야!”
바람직한 경기자가 되려면 어떻게 행동해야 할까? 게임에서 바르게 행동하려면 어떤 인격을 갖춰야 할까? 사실 두 질문은 서로 연결되어 있다. 게임에서 올바르게 행동하려고 꾸준히 연습할 때만, 그런 인격이 형성될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그걸 어디서 연습해볼 수 있을까?
당신이 운이 좋고 정신이 깨어 있는 사람이라면 당신의 지위가 높든 낮든 모든 곳에서 배울 수 있다.


저는 운이 참 좋은 사람임을 알아차렸습니다. 아이를 통해 매번 이리 배우니깐요...

그리고 ‘바보의 유용성’이라는 내용을 접하며 제가 최근에 저의 능력의 한계성을 경험하며 저의 무지에 힘들어하고 있는 이 상황에 다시금 감사의 마음을 갖고 생각의 전환을 할 수 있는 계기를 가지게 되었습니다.  

내가 아는 것들과 친해지기보다는 모르는 것들과 친해지는 게 백배 낫다.
바보는 기꺼이 초보자가 되어 배우려는 사람이다. 이 때문에 카를 융은 바보를 대속자(흠결 하나 없는 온전한 사람)의 전신으로 보았다.
... 중략...
바보는 기꺼이 초보자가 되어 배우려는 사람이다. 이 때문에 카를 융은 바보를 대속자(흠결 하나 없는 온전한 사람)의 전신으로 보았다.
오늘의 초보자는 내일의 명인이 될 수 있다. 아무리 큰 업적을 이룬 사람이라 하더라도 더 큰 일을 이루고자 한다면 자신을 아직 성공하지 못한 사람이라 생각하고, 실력을 쌓기 위해 노력하고, 신중하고 겸손하게 현재의 게임에 참여하고 다음 행보에 필요한 지식· 자제심·수련을 개발할 필요가 있다.     


쭈니 덕분에 지금 현재의 게임에 제가 가져야 할 지식, 자제심, 수련을 개발할 필요가 있음을 더 알 수 있는 날인 것 같습니다. 5월이 시작되며 어린이날, 어버이날 등등 행사는 많고 해야 할 일은 많다 보니 저의 루틴이 조금은 흐트러진 5월 첫째 주였습니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레 감정의 동요가 있었는데 아들 덕분에 제가 가져야 할 초보자의 마음을 다잡는 하루가 되었네요... 정말 쭈니는 저를 깨우치기 위해 존재하는 특별한 아이인 듯합니다.

제 삶에 경험하고 있는 이 모든 것들이 초보자의 역할을 받아들인 뒤 그것을 초월하는 존재가 되길 바랍니다.

대원사 나무


어린이날을 맞이해 가족과 함께 캠핑을 갔는데 근처 대원사라는 절을 우연찮게 들렸습니다.

제가 배워야 할 필요가 있는 것만이 제 삶에 나타나는 것이겠죠.

매 순간 제 삶에서 배워야 하는 것들이 제 삶을 더 의미 있고 풍성하게 하리라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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