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기기 Mar 26. 2021

  세상이 내게 무엇을 원하는지 생각해본 적이 있다. 반대로 내가 세상에 무엇을 원하는지도 생각해 봤다. 물론 결론은 쉬웠다. 세상은 내게 관심이 없고, 나는 세상 속을 걸어 다니는 거 외엔 딱히 할 수 있는 게 없다는 것이었다. 나의 글은 누구를 위한 것일까? 나는 무엇을 위해 이 글을 쓰고 있는 걸까? 아무것도 알지 못하면서 제가 모든 걸 알고 있는 것 마냥 잘난 척을 하기 위해? 왜 이런 글이 쓰고 싶어 졌을까. 질문에 질문이 꼬리를 물고 늘어져서, 마치 끝이 보이지 않는 기차가 들어오는 것 같다.


  오늘 산책을 하며 많은 꽃을 봤다. 이름을 알고 있는 꽃, 이름을 모르는 꽃, 사람들이 좋아하는 꽃, 사람들이 관심을 주지 않는 꽃, 수많은 꽃송이. 그 아름다움을 내가 글로 잘 전달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연분홍 빛 이름 모를 꽃송이와 새하얀 목련. 새하얀 꽃잎 안에 분홍빛이 감도는 이름 모를 꽃. 샛노란 산수유와 경쟁하듯 빛깔을 뽐내는 개나리. 모두 모두 아름다워서 눈이 부실 지경이었다. 결국 문장을 다시 읽어보니 그 아름다움이 전혀 전달된 것 같진 않지만, 그래도 어쩔 수 없다. 사실 그 아름다움이 궁금하다면 이런 글을 읽을 시간에 당장 밖에 나가 꽃을 쳐다보면 되는 거긴 하니까.


  친구 하나가 군대에서 편지를 보내서 열심히 읽었다. 친구 하나라고 치부하기엔 내 가장 소중한 친구이지만. 너무나도 안타까웠다. 그리고 친구가 그리웠다. 사실 지금도 그립다. 지금 당장에라도 친구한테 전화를 걸어서 그 개 같은 곳에서 어떻게 잘 버틸만하냐고 말을 걸고 싶다. 하지만 그럴 수 없다는 게 안타깝다. 친구와 마지막으로 대화 한지 한 달이 훌쩍 넘었다. 보고 싶다.


  친구 얘기하니까 떠오른 건데, 예전에 어떤 친구가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내 글은 읽기 쉽고 편해서 재밌다고. 왜 그럴까 생각해봤는데, 내 생각을 그대로 문장으로 옮겨 적는 거라서 읽기 쉽고 편한 게 아닐까? 나는 쓸모없는 망상이든 생각이든 아무튼 생각을 정말 많이 하고 그걸 글로 쓰고 싶을 때 글로 쓴다. 지금처럼. 그래서 지금 이 글을 읽는 사람은 분명 이런 생각을 할 것 같다. 이게 뭐지? 문단 별로 다 다른 얘기를 하고 있는데? 이게 무슨 글이지? 근데 나도 잘 모르겠다. 이런 글을 글이라고 할 수는 있는 걸까?


  작정하고 이렇게 글을 써본 게 얼마만인지 모르겠다. 독후감을 제외하고 이런 식의 글을 쓴 건 정말 오랜만이다. 아마 1년은 넘은 것 같다. 솔직히 즐겁다. 얼마 만에 이렇게 생각 없이 글을 배설하는 건지. 한 번도 멈추지 않고 글을 이렇게 길게 쓰는 게 진짜 오랜만이라서, 이 감각이 너무나도 오랜만이라서 행복하다. 오랜만이라는 말만 세 번? 네 번 쓴 것 같다. ~한 것 같다는 말은 못 셀 정도로 많이 썼다. 정말이지 좋은 글이라고, 아니 글이라고 부르기도 뭐한 글을 써냈다. 꿈은 연기처럼 사라지고 공부를 하기 위한 동기마저도 세상 어딘가에 숨은 마당에 내가 지금 이 글을 쓰는 이유는 무엇일까. 행복해서?


  많은 사람들이 으레 그렇듯 나도 재능 있는 사람이고 싶다. 공부든 글이든 운동이든 음악이든 뭐 하나라도 잘하는 사람이고 싶다. 하지만 내게 재능이 없다는 건 내가 가장 잘 알고 있다. 그렇다면 재능을 기르려는 노력이라도 해야 할 텐데 그것마저 귀찮다는 명목 하에 하지 않는다. 그저 지금처럼 한탄하며 불평하기만 한다. 아니면 아예 다 포기하고, 세상만사 다 제쳐두고 놀기만 하거나. 한탄과 불평은 이쯤 해두고 이제 좀 놀아야겠다. 다 쓰고 나니 제목을 뭐로 해야 할지 좀 고민되는데 제목을 안 쓸 수는 없는 걸까? 제목을 적지 않으면 글을 올릴 수 없다는 게 아쉽다. 여기까지 글을 읽었다면 정말 대단하다는 말을 하고 싶다. 이런 배설물을 끝까지 참으며 읽어주다니 좀 대단한 것 같다. 그리고 감사하다는 말도 전하고 싶다. 하지만 전할 수는 없으니 여기에 적는 걸로 끝내야 하겠지. 감사합니다.

작가의 이전글 미하엘 엔데의 <모모>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