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이 내게 무엇을 원하는지 생각해본 적이 있다. 반대로 내가 세상에 무엇을 원하는지도 생각해 봤다. 물론 결론은 쉬웠다. 세상은 내게 관심이 없고, 나는 세상 속을 걸어 다니는 거 외엔 딱히 할 수 있는 게 없다는 것이었다. 나의 글은 누구를 위한 것일까? 나는 무엇을 위해 이 글을 쓰고 있는 걸까? 아무것도 알지 못하면서 제가 모든 걸 알고 있는 것 마냥 잘난 척을 하기 위해? 왜 이런 글이 쓰고 싶어 졌을까. 질문에 질문이 꼬리를 물고 늘어져서, 마치 끝이 보이지 않는 기차가 들어오는 것 같다.
오늘 산책을 하며 많은 꽃을 봤다. 이름을 알고 있는 꽃, 이름을 모르는 꽃, 사람들이 좋아하는 꽃, 사람들이 관심을 주지 않는 꽃, 수많은 꽃송이. 그 아름다움을 내가 글로 잘 전달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연분홍 빛 이름 모를 꽃송이와 새하얀 목련. 새하얀 꽃잎 안에 분홍빛이 감도는 이름 모를 꽃. 샛노란 산수유와 경쟁하듯 빛깔을 뽐내는 개나리. 모두 모두 아름다워서 눈이 부실 지경이었다. 결국 문장을 다시 읽어보니 그 아름다움이 전혀 전달된 것 같진 않지만, 그래도 어쩔 수 없다. 사실 그 아름다움이 궁금하다면 이런 글을 읽을 시간에 당장 밖에 나가 꽃을 쳐다보면 되는 거긴 하니까.
친구 하나가 군대에서 편지를 보내서 열심히 읽었다. 친구 하나라고 치부하기엔 내 가장 소중한 친구이지만. 너무나도 안타까웠다. 그리고 친구가 그리웠다. 사실 지금도 그립다. 지금 당장에라도 친구한테 전화를 걸어서 그 개 같은 곳에서 어떻게 잘 버틸만하냐고 말을 걸고 싶다. 하지만 그럴 수 없다는 게 안타깝다. 친구와 마지막으로 대화 한지 한 달이 훌쩍 넘었다. 보고 싶다.
친구 얘기하니까 떠오른 건데, 예전에 어떤 친구가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내 글은 읽기 쉽고 편해서 재밌다고. 왜 그럴까 생각해봤는데, 내 생각을 그대로 문장으로 옮겨 적는 거라서 읽기 쉽고 편한 게 아닐까? 나는 쓸모없는 망상이든 생각이든 아무튼 생각을 정말 많이 하고 그걸 글로 쓰고 싶을 때 글로 쓴다. 지금처럼. 그래서 지금 이 글을 읽는 사람은 분명 이런 생각을 할 것 같다. 이게 뭐지? 문단 별로 다 다른 얘기를 하고 있는데? 이게 무슨 글이지? 근데 나도 잘 모르겠다. 이런 글을 글이라고 할 수는 있는 걸까?
작정하고 이렇게 글을 써본 게 얼마만인지 모르겠다. 독후감을 제외하고 이런 식의 글을 쓴 건 정말 오랜만이다. 아마 1년은 넘은 것 같다. 솔직히 즐겁다. 얼마 만에 이렇게 생각 없이 글을 배설하는 건지. 한 번도 멈추지 않고 글을 이렇게 길게 쓰는 게 진짜 오랜만이라서, 이 감각이 너무나도 오랜만이라서 행복하다. 오랜만이라는 말만 세 번? 네 번 쓴 것 같다. ~한 것 같다는 말은 못 셀 정도로 많이 썼다. 정말이지 좋은 글이라고, 아니 글이라고 부르기도 뭐한 글을 써냈다. 꿈은 연기처럼 사라지고 공부를 하기 위한 동기마저도 세상 어딘가에 숨은 마당에 내가 지금 이 글을 쓰는 이유는 무엇일까. 행복해서?
많은 사람들이 으레 그렇듯 나도 재능 있는 사람이고 싶다. 공부든 글이든 운동이든 음악이든 뭐 하나라도 잘하는 사람이고 싶다. 하지만 내게 재능이 없다는 건 내가 가장 잘 알고 있다. 그렇다면 재능을 기르려는 노력이라도 해야 할 텐데 그것마저 귀찮다는 명목 하에 하지 않는다. 그저 지금처럼 한탄하며 불평하기만 한다. 아니면 아예 다 포기하고, 세상만사 다 제쳐두고 놀기만 하거나. 한탄과 불평은 이쯤 해두고 이제 좀 놀아야겠다. 다 쓰고 나니 제목을 뭐로 해야 할지 좀 고민되는데 제목을 안 쓸 수는 없는 걸까? 제목을 적지 않으면 글을 올릴 수 없다는 게 아쉽다. 여기까지 글을 읽었다면 정말 대단하다는 말을 하고 싶다. 이런 배설물을 끝까지 참으며 읽어주다니 좀 대단한 것 같다. 그리고 감사하다는 말도 전하고 싶다. 하지만 전할 수는 없으니 여기에 적는 걸로 끝내야 하겠지.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