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바나나 우유를 먹은 날이 기억난다. 부산 할아버지, 할머니를 보러 가는 기차 안이었다. 각종 과자와 음료수를 실은 카트가 내 앞에 멈춘다. 계란과 과자와 바나나 우유가 책상 위로 올라온다. 엄마가 바나나 우유에 빨대를 꽂은 뒤 먹으라고 건네준다. 신이 난 나는 빨대를 입에 물고 쭉 들이킨다. 처음 맛 본 바나나 우유엔, 내가 좋아하던 달콤한 바나나 맛이 없었다. 하지만 신기하게도 먹다 보니 점점 바나나 맛이 강해졌고, 정신을 차려보니 이미 빨대 빠는 소리만 입안에 맴돌았다. 그게 처음이었다.
뭐든지 처음 하는 것은 기억에 강하게 남는다지만, 바나나 우유를 처음 먹은 기억이 생생하다는 것도 신기하다. 첫 기억이 아니라 그냥 맛있게 먹은 단편적인 기억뿐일 수도 있지만. 그때 내가 몇 살이었는지는 잘 모르겠다. 대충 초등학생이 되기 전이었다는 것 말고는 추측하기가 힘들다. 방금 꾼 꿈처럼, 어렴풋한 이미지와 그 바나나 우유의 맛 만이 남아있기 때문이다. 처음 바나나 우유를 먹은 게 기차 안이었기 때문인지, 웃기지만 바나나 우유를 먹을 때마다 기차를 타고 싶어 진다. 기차를 타고 어딘가 멀리 여행을 떠나고 싶어 진다. 비가 내리고 눈이 내려도 좋다. 바나나 우유가 함께라면, 기차를 타고 어디든지 갈 수 있을 것만 같다. 내가 바나나 우유를 먹으며 탄 기차는 언제나 부산행이었다. 하지만 부산에 있는 것들을 떠올리면 그렇게 심심하거나 지루할 것도 없었다.
무뚝뚝한 표정으로 우릴 맞아주시던 할아버지를 생각하고, 귀엽지만 성가신 사촌동생들을 생각한다. 시퍼런 바다와 시퍼런 하늘을 떠올린다. 바람에 실려오는 비릿한 바다내음을 떠올린다. 그 비린내를 잔뜩 머금은 달달한 광어회를 떠올린다. 냉면 맛이 나는 밀면을 떠올리고, 사람이 가득한 해운대 바닷가를 떠올린다. 부산에 살았을 때 거의 매일 나다녔던 바닷가를 떠올린다. 그때 살던 아파트 단지에서 따먹던 오디 열매를 떠올린다. 부산 사투리를 가르쳐 준 친구들을 떠올린다. 풀을 찧고 돌을 만지작 거리며 소꿉놀이를 하던 주차장을 떠올린다. 죽은 비둘기에게 다 같이 모래를 덮어주고 나뭇가지를 꽂아 넣었던 놀이터도 떠올려 본다. 부산엔 그런 것들이 있었다. 내 어린 시절이 있었다.
이제 할아버지의 무뚝뚝한 표정은 내 기억과 사진 속에만 있고, 사촌동생들은 사춘기가 와 더 이상 나를 성가시게 하지 않는다. 바다는 여전히 시퍼렇지만, 하늘빛은 빛바랬다가 시퍼랬다가 들쭉날쭉하다. 바람에는 시멘트와 쓰레기 내음이 실려온다. 아이들은 더 이상 오디 열매를 따먹지 않고, 소꿉놀이도 하지 않는다. 놀이터 바닥엔 이제 모래가 아니라 고무가 있다. 나는 사투리를 잊어버렸고, 그 사투리를 가르쳐 준 친구들의 이름도 잊어버렸다. 달달한 회와 시퍼런 바다만이 여전히 내 어린 시절을 담고 있다. 생각을 못하고 있었는데, 하나가 더 있다. 바나나 우유도 여전히 그 맛 그대로다. 이름은 바나나맛 우유로 바뀌었지만.
지금 먹고 있는 바나나 우유를 다 먹으면, 그 모든 추억도 뱃속으로 꺼질 것이다. 하지만 다시 바나나 우유를 마시면, 불현듯 또 다른 추억이 켜질 것이다. 떠올리고 떠올리고, 또 떠올리다 보면, 어느새 그 시절이 내 눈앞에 있다고 느낄 것이다. 그리고 곱씹으면 곱씹을수록, 더 아련한 맛이 나겠지. 고작 바나나 우유 한 잔에 추억을 너무 많이 마셔 버렸다. 이렇게 많이 마셨으니 질려서 한동안은 안 찾지 않을까. 그러다 또 생각이 나면, 플라스틱 빨대를 꽂고 바나나 우유 한 잔 들이키면 그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