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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못된고양이레오 Nov 08. 2022

E12. 루니는 루니를 낳고, 테베즈는 기적을 낳았다

왕좌의 게임

한 때 인터넷상에 유행하던 ‘낳고’ 시리즈가 있습니다

루니는 루니를 낳고,

베컴은 베컴을 낳고,

토레스는 토레스를, 이운재는 이운재를…

테베즈는 기적을 낳았다

하는 글이죠


어찌 보면 당연하게 느껴지기도 하지만

생각해보면 부모의 유전자를 받아 그를 닮은 새로운 생명이 탄생한다는 ‘유전’의 개념은 상당히 흥미롭습니다

생명의 진화에서 유성 생식의 등장은 정말 거대한 변화였겠죠

그러한 방향이 진화에 유리했기 때문이겠으나, 그 처음은 어땠을지가 문득 궁금해집니다




왕좌의 게임을 비롯한 수많은 판타지 세계관과 역사물에서 항상 의문을 갖던 부분이 있습니다


‘왕위는 왜 계승되어야 하는가’


오늘날의 관점에서 이야기하자면

아무리 훌륭한 지도자가 있다 하더라도 그 자식이 그만한, 

혹은 그를 넘어설 역량이 있을 것이라 단정 짓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선대와 비교받으며 그보다 못하다는 평을 받는 경우가 대다수이죠

그런데 왜 우리의 선조들은 왕위 계승이라는 제도를 택하였으며,

그러한 제도가 전 세계적으로 공통적으로 나타났던 것일까 하는 의문이었습니다


최근에서야 그러한 의문에 어느 정도 납득하게 되었습니다

신체 능력이 최우선시되던 시기의 인류에게 키 200의 어버이에게 200의 자손이 생기는 것을 보았다면,

그리고 그러한 혈통의 승계를 여러 세대 걸쳐 목격하였다면,

왕위의 승계는 정당한, 합리적 근거를 가진 판단이었겠죠

강호동은 강호동을, 추신수는 추신수를 낳는 것을 보았으니까요


이러한 우수한 형질의 승계에 대한 믿음

현대 과학의 발전에 이르러서야 확률의 문제라는 것이 밝혀졌기에

혈통 승계의 관습은 인류 공통의 문화로 자리 잡은 것이라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흥미롭게도 혈통에 대한 저의 고민은 

작중에서도 중요한 장면으로 표현되기도 하죠




왕좌의 게임은 훌륭한 작품입니다

다만 그 시즌은 얼추 6~7까지만 있는 것으로 하겠습니다


다만 지금도 뚜렷하게 기억에 남는 인상 깊은 장면들이 있습니다

‘피의 결혼식’이라던가 ‘서자들의 전투’, ‘블랙워터 전투’, 

‘북부의 왕’, ‘마운틴과 오버린의 결투’, ‘유노 나띵 존 스노’ 같은 장면들 말이죠


그중에서도 제가 최고로 뽑는 장면은 

‘Battle of the Bastards’ ; 서자들의 전투입니다

거인과 같은 판타지 요소가 가미되어있기는 하지만

창병, 방패병, 궁병, 기병 등의 부대 운영이나

팔랑크스 진형, 망치와 모루 전술 같은 부분을 잘 표현하였거든요

뿐만 아니라 보병의 시선, 일개 개인의 시점에서 바라본 전쟁의 모습을 너무도 잘 묘사해 냈습니다


몇 가지 장면을 함께 볼까요

서양 전쟁사의 전통에 따라 양 측 지휘관들의 설전과 선전포고로 전쟁은 시작합니다

다만 본 에피소드의 경우는 이전 히스토리들이 엮여있어 감정적인 신경전의 성격이 강한 부분이 있었지요


영상의 재미를 위해 자세한 설명은 생략하겠으나

전황은 흘러 포위 섬멸전이 진행됩니다

단단한 방패병과 긴 창을 내세운 중보병과 작중 야만인 위주의 경보병의 싸움이 진행되는데,

중보병의 밀집 / 포위 전진에 의해 퇴로가 막힌 야인들은 그야말로 학살을 당하게 되죠


후에 나타난 기병 부대로 인해 중보병의 전열이 무너지면서 전황이 크게 변하게 됩니다

방향 전환 어려운 밀집된 중보병의 후방을 공격하는 기병의 돌격으로 포위가 풀리게 된 것이죠


이 에피소드가 인상 깊은 이유는 전장의 흐름을 너무도 잘 보여주었기 때문입니다

특히 중장갑의 방패병 전열을 상대하는 야인들의 심리 변화를 잘 보여주었고

냉병기 시대의 기병의 역할에 대해서도 인상 깊게 보여주었어요

무엇보다 현장에서 직접 경험하는 것만 같은 흙먼지 냄새와 땀냄새와 열기, 피 비린내를 잘 전달했습니다




비슷한 이유로 좋아하는 만화 중에 ‘킹덤’이 있습니다

회차를 거듭할수록 산으로 가는 탓에 많은 비판을 받고 있기도 하지만

주인공이 아무것도 없던 보병 신분에서 시작하여,

승마하여 부대를 이끄는 지도자의 자리에 이르기까지의 신분 변화가 인상 깊습니다


보병의 위치에서 상대를 바라보는 시야와,

기병의 위치에서 상대 전력을 바라보는 시야를 잘 대비시켜 보여줍니다

시대상에 맞는지는 모르겠지만 전차나 다양한 공성 전술을 보는 것 또한 상당한 재미였습니다



다양한 미디어를 통해 우리는 ‘장군’의 시야에서 전쟁을 바라보곤 합니다

삼국지에서 반지의 제왕에 이르기까지

우리는 전쟁을 어떠한 숭고하고 장엄한, 가슴 웅장한 무언가로 생각하곤 하죠

그 높은 말에서 내려와 전열에 함께 섰을 때

비로소 우리는 우리가 얼마나 작디작은 존재인가 다시금 생각하게 됩니다

그제야 전쟁과 전투의 참혹함이 눈에 들어오게 되는 것이죠


최근의 영화들은 이러한 시야를 보여주기 위해 보병들의 위치에서 전쟁을 묘사하곤 합니다

그러한 묘사가 효과적으로 잘 드러난 영화가 ‘라이언 일병 구하기’였죠



전쟁 이야기와 영웅담은 고대로부터 훌륭한 교육 수단이었습니다

일리아드를 비롯한 서사와 영웅 신화 등은

주인공의 영웅적 면모를 부각하며 훌륭한 전사들로 길러냈죠


이러한 서사는 현대 미디어의 발전으로 변화합니다

한 때는 전장의 영웅을 집중하던 영화들도 이제는 개인의 불행을 비추는 방향으로 변화하고 있고

적을 죽이고 정복하는 데에 집중하던 게임들도 다른 선택지들을 부여하거나 그러한 행동에 대한 메시지를 담기 위해 노력하고 있죠

'갓 오브 워'의 전쟁의 신이 더 이상 신들의 노예가 아닌 것처럼요


다양한 시도가 이루어지면서 이야기는 더욱 풍요롭고 흥미로워집니다

결국 우리가 살아가는 재미 또한 하나의 이야기니까요



비록 와장창 엔딩이 되어버리긴 했지만 왕좌의 게임은 훌륭한 작품입니다


왕좌를 노리는 인물들의 서로 다른 생각과 전략,

각 가문들의 전략적 판단과 계산, 그리고 암수들,

개개인의 욕망의 충돌과 대의에 대한 믿음과 배신 등

단순한 잔혹성이나 외설뿐 아닌 수많은 생각할 거리들과 재미를 제공하고 있죠


아직까지 이 작품을 안 보신 분이라면 한 번쯤 접해보기를 추천드립니다

과장 조금만 더 보태자면 현대에 쓰인 삼국지라 생각하면 될 듯합니다

어찌 보면 웅장한 시작에 비해 마무리가 도무지 기억에 남지 않는 면 또한 비슷하네요


다만 이 점은 기억해주세요



테베즈는 기적을 낳았지만, 
왕좌의 게임의 엔딩은 공허함만 낳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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