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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못된고양이레오 Mar 09. 2019

E02. 떠나야 할 때를 안다는 것

브로콜리 너마저 - 졸업 (2010)

네 인생에 가장 큰 울림을 줬던 음악이 있느냐 한다면,

브로콜리 너마저의 '졸업'이다.

살면서 마주하게 되는 다양한 이별의 순간에 큰 위로를 주는 곡이고

거꾸로 그 이별의 순간들을 회상하며 현재의 위안을 주기도 하는 곡.



고등학교 야자시간 정말 숱하게 들었던 앨범임에도 지금 다시 들으면 또 새롭게 들리는 맛이 있다.

앨범 단위 음악을 듣다 보면 딱 느낌이 꽂히는 한 두 곡이 있기 마련인데, 정말 신기하게도 매번 들을 때마다 꽂히는 트랙이 달라지는 앨범이다.

그야말로 거를 타선 없는 앨범.


델리스파이스 '고백'과 마찬가지로 인디음악에 별로 관심 없는 사람들도 한두 번쯤은 카페에서, 방송에서 들어봤을 '사랑한다는 말로도 위로가 되지 않는'부터

제목부터 뭔가 알 것 같은 느낌이 오는 '변두리 소년, 소녀',

갓 신입생 티를 벗은 대학생이 듣는 선택교양 같은 '커뮤니케이션의 이해' 등

서점에서 목차를 훑어보다 부제가 재밌어서 책을 꺼내 들게 되는 그런 맛이 있는 앨범이 아닐까 싶다.

제목만 잘 뽑혀 실망하게 되는 부실 도서가 아닌 내용까지 알차고 실한 명반.


앨범의 시작과 끝처럼 '열두 시 반'부터 '다섯 시 반'까지, 그러니까 새벽 감성으로 감상하면 더욱 좋은 앨범이다.

삭막한 도시에 살아가는 청년의 마음을 잘 담아내면서도 과하지 않게 담담하게 이야기하는 듯한 느낌.



무엇보다 브로콜리 너마저가 갖는 장점은 윤덕원의 작사인 거 같다.

"넌 내게 말했었지 / 내게도 날개가 있을까"

"세상이 원래 그런 거라는 말은 할 수가 없고 / 아니라고 하면 왜 거짓말 같지"

"어디쯤 가야만 하는지 벌써 지나친 건 아닌지"


음악을 들을 때 별로 가사를 듣는 편은 아니지만, 이상하게 만큼 잘 들리고 귀 기울이게 되는 음악들이 있는데 브로콜리 너마저, 그리고 윤덕원의 음악이 그러하다.

윤덕원의 '비겁 맨'도 가사가 상당히 좋다.




2018/2019 도서 시장을 잠식해버린 '~지만, 괜찮아' 시리즈


서점 매대에 보면 신기하리만큼 놀라운 현상이 벌어진다.

90년대 비디오방을 보고 있는 듯한 만화 주인공들이 잔뜩 깔린 모습을 마주하게 되고, 놀라우리만큼 똑같은 작명법을 가진 책들(보통 '무엇 무엇, (쉼표) 무엇 무엇'의 방식으로 구성된다) 그리고 페이지당 몇 안 되는 활자의 공간 낭비 구성.


딱히 책을 좋아하지도 않고 출판업계의 사정 같은 거에 관심도 없는 바이지만, 어느 순간부터 서점의 이럼 모습과 xx차트의 모습은 동일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책이 더 이상 독서의 대상이 아닌 소유의 대상이 되었듯, 음악 또한 듣는 대상이 아닌 보는 대상으로 바뀌었고

일단 매대 첫 줄에만 놓이면 된다는 것이 일단 100위권 안에만 들면 된다는 것과 오버랩되는 현상.

윤종신의 '100위 차트 폐지론'이 지지를 받는 것을 보면 많은 사람들이 동의하는 듯하다.



굳이 이런 이야기까지 끌어오는 것은 2018/2019의 음원 시장 역시 어떠한 사정에 의해 출판 시장과 같은 길을 걷고 있지는 않은가 하는 우려에서이다.

출판 매대에 일단 깔아 두면 베스트셀러가 되는 것처럼 일단 음원 차트에 넣기만 하면 성공한다는 소위 '노하우' 때문에 얼마나 많은 좋은 음악들이 묻혀 있을지, 또 얼마나 많은 미래의 음악이 좌절하고 있을지.




뭐 아무튼 간에 다시 브로콜리 너마저의 이야기로 돌아오면, 이 앨범의 하이라이트는 '졸업'에 있다.


살다 보면 다양한 졸업을 마주하게 된다.

그것이 누군가가 말하는 '새로운 시작'을 향한 희망찬 졸업이던, 덧없던 과거를 뒤로 넘기는 홀가분한 졸업이던, 더 이상 돌아오지 않을 과거를 아쉬워하는 졸업이던.


고등학교에서 대학교로, 미성년에서 성년으로의 졸업은 아무 생각이 없었다.

그냥 하라는 대로 하고 살았고, 하지 말라는 거 하지 않고 살았으며

소위 말하는 착한 학생이고 싶었고, 그렇기에 눈 앞에 놓여있는 것만 바라보고 살았다.

되돌아보면 정말 아무 생각 없이 살았던 거 같다.

제 딴에는 열심히 살고 대단한 일 하고 있다 생각했을는지 모르겠지만


여느 친구들과 다를 바 없이 군대를 갔다.

가야 하니까 갔고, 갈 때가 되어서 갔다.

하라는 대로 했고, 나올 때가 되어 전역을 했다.

홀가분한 졸업이었다.

기다리는 사람들이 있었고, 돌아갈 곳이 있었다.


어디로 가야 할지를 몰라 방황을 했다.

어렴풋이 어느 길로 갈지를 생각은 하고 있었지만,

'어디쯤 가야 하는지'를 알 수 없었다.


사촌동생이 졸업을 했다.

인고의 굴레를 끊고 보다 좋은 곳으로 갔기를.

그리고 곧이어 친할아버지가 떠나셨다.


딱히 이렇다 할 종교관은 없고

다양한 이야기를 간접적으로만 접하고 있지만

생의 고를 끝내는 졸업에는 부디 행복한 시작만이 있기를 바란다.


살면서 마주하게 되는 다양한 형태의 졸업이 있지만

그 모두가 익숙함의 끝과 생경한 시작이라는 점에 막연한 두려움이 있는 것 같다.

"이 미친 세상에 어디에 있더라도 행복해야 해"

이 한 마디가 모든 졸업을 겪는 사람들에게 위안이 되기를.




뜬금 없지만 '졸업'은 '동물농장' 같은 앨범이다. 언제나 플레이리스트 한 편을 자리잡고 있을 명작


한곡 한곡 버릴 곡이 없는 '졸업'이지만, '변두리 소년, 소녀', '울지 마', '환절기', '졸업'만큼은 꼭 한번 들어보기를 권한다.

가급적이면 '12시 반'부터 '5시 반' 사이에.


그리고 시간이 지나 한 번쯤 다시 생각이 날 때 또다시 들어보기를 권한다.

그때 듣는 음악은 이전과 같지만은 않을 것임에, 명반을 듣는다는 것의 즐거움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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