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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지 않는 시간도 글의 일부다

by 꿈꾸는 나비


이번 주 내내 첫 번째 초고를 완전히 다른 구조로 바꾸는 작업을 하고 있었다. 문장을 해체하고, 흐름을 바꾸고, 전체 맥락을 새로 엮어가는 일이었다. 그땐 분명 더 나아지는 길이라고 믿었지만, 이상하게도 다 바꾸고 나니 오히려 어색해졌다.


글이 말을 잃은 것 같았고, 내 글이 아닌 것 같아 점점 작아졌다. 혹시 내가 망쳐버린 건 아닐까, 그간 애써 쌓아 온 것이 전부 흐트러진 건 아닐까. 그 불안이 올라오자 손끝이 멈췄다. 더는 고칠 수 없었다.


그래서 이번엔 흐트러진 초고를 그대로 둔 채, 잠시 글과 거리를 두기로 했다. 완전히 쉬는 것보다 복잡하게 얽힌 생각들을 천천히 정리해 볼 시간이 더 필요하다고 느꼈다. 글에서 멀어져 있는 시간이 지금 나에겐 더 중요한 일이었다. 어제저녁엔 친구를 만나 오랜만에 긴 수다를 나눴다. 쓸데없는 말도 하고, 사소한 일상을 나누고, 마음속에 응어리졌던 감정도 풀어냈다.


놀랍게도 그런 시간이 나를 다시 환기시켜 줬다. 글을 붙잡고 있던 손을 놓자 그제야 비로소 다시 나를 돌아볼 수 있었다. 생각해 보면 나는 자주 '글이 완벽해야 한다'는 강박에 매여 있었다. 기승전결도, 메시지도, 독자의 감정도 한 번에 다 담아내야 한다고 믿었다. 그렇게 애쓰는 시간 속에서 오히려 중요한 것을 자주 놓치곤 했다. 무언가에 억지로 매달려 있는 동안 글 바깥에서 자라고 있던 장면들을 보지 못했던 것이다.


"고요는 사유의 첫 조건이며,

사유란 자기 자신과의 대화이다."


– 한나 아렌트, 『정신의 삶』



그렇게 한 발짝 물러서자 조금씩 다시 보이기 시작했다. ‘무엇을 써야 하지’가 아니라 ‘지금 나는 어떤 마음을 갖고 있는가’라는 질문이 더 선명해졌다. 쓰지 않는 시간도 글의 일부다. 그 시간 안에서 에피소드가 만들어지고, 문장의 결이 다듬어진다. 완성도를 향한 집착보다는 나의 리듬을 존중하는 것이 더 필요한 때가 있다.


어쩌면 글은 붙잡는 것이 아니라 놓아주는 시간 속에서 자라는지도 모른다.



나비의 끄적임에 잠시 머물러주셔서, 감사합니다.


[사진출처]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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