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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텃밭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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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영웅 Mar 24. 2024

2024년의 텃밭일기 : 0324

  3월이다.  몸을 움직여야 할 시간이다.  텃밭을 바라보며 의미없는 상념을 펼치는 일은 이제 그만 하고, 머리 속에 가득 쌓아 둔 계획들을 이제 몸으로 풀어내야 하는 때가 온 것이다.  그것은, 솔직하자면, 약간의 귀찮음이다.  그러나, 커다란 기대 안에 섞인 약간의 귀찮음은, 움직임에 조금의 주저함을 만든다.  주저함은 생각지 않았던 조심성을 드러낸다.  생각했던 일들을 무턱대고 펼칠때 마주치는 난감을 때마다 누그러뜨리는 것이다. 


  파레트를 구해야 했다.  대략 30개 정도를 생각하고 있었다.  사료공장에서 일하는 지인이 운반까지 해 주겠다 말했지만, 다시 알아보니 파레트는 얼마든 가져갈 수 있지만 운반은 안된다고 했다.  운반할 트럭부터 구해야 했다.  그러자니, 멀리 있는 지인의 사료공장까지 갈 필요는 없어보여, 지역 중고거래 사이트에서 파레트를 검색해 보았다.  이것도 생각같지는 않았다.  그러다가, 트럭문제가 생각보다 쉽게 해결되었다.  트럭을 가진 다른 지인이 직접 트럭을 몰고 운반해주겠다 했다.  3월의 첫 주 토요일, 나는 진료를 마치자 마자 트럭을 가진 지인을 만나 같이 다른 지인의 사료공장에 가서, 파레트를 싣고 집으로 와서 부렸다.  세어보니 25개 남짓이었다.    

  어리둥절 긴장한 라이가 바라보는 마당에서 여기저기 널부러지고 쌓인 파레트를 하나하나 한 쪽으로 가져다가 길게 잘랐다.  오랜만에 사용하는 전기톱이었다.  받침이 있는 줄을 따라 자르는 작업이니 한 파레트에 3개의 틀이 나왔다.  이 작업의 목적은 틀밭을 만들기 위해서였다.  잘라낸 나무파레트로 구획의 경계인 틀을 만들 생각이다.  파레트는 생각보다 무거웠다.  그리고, 절단작업이 생각보다 복잡했다.  전동톱이 아니었으면 절대 할 수 없는 작업이었다.  약 20개의 파레트를 그렇게 절단했다.  절단이 어려운 온판이 덮히고, 깔끔한 파레트 두 개를 한 쪽으로 세워두었다.  라이녀석의 집 아래를 받치고 있는 오래된 파레트를 교체해주고, 하나는 그늘에 두어 녀석의 쉼자리로 만들 생각이다.  나머지 틀로 만들기 어려운 파레트 몇 개는 필요하다는 지인에게 넘겼다.


  이틀 동안 파레트 절단 작업을 했다.  필로티 그늘아래 작업한 결과물이 수북히 쌓였고, 나머지 틀로 사용할 나무들 역시 적절한 길이로 잘라 쌓아두었다.  자투리 나무들은 옆집에서 땔감으로 사용하겠다며 가져갔다.  남은 자투리 나무들을 나도 땔감으로 쓰거나 틀 만들때 부속으로 쓰려고 따로 모아두었다.  작업을 마무리하고 나니, 여기저기 마당을 뒤덮었던 파레트들이 모두 사라지고 이전의 마당 모습으로 돌아왔다.  마무리가 깔끔하면 기분도 든든하니 좋았다. 

  겨울을 난 텃밭 작물들을 거두었다.  무와, 쪽파와, 루꼴라가 전부였다.  모양이 제각각인 무와, 자라다 만 것 같은 쪽파와, 바닷바람에 산발한 생머리같은 루꼴라를 손질하는 일은 번거로웠다.  일단 무의 밑둥과 꼭지를 잘라 물로 씻었고, 아내는 자잘한 쪽파를 다듬었다.  요리에 소질있는 지인이 루꼴라를 원하길래, 산발하는 줄기들 사이에서 먹을 만한 잎줄기들을 골라 꺾어 봉지에 담았다.  지인에게 건네니 수제피자의 훌륭한 토핑이 된 모습을 사진으로 보내왔다.  어렵게 다듬은 쪽파는 파김치가 되었고, 무는 먹을 만한 것들을 골라 석박지를 만들었다. 


  이제부터는 하염없는 삽질의 연속이다.  무념 무상의 삽질..  주말이면 시간이 되는 대로, 작업복에 장화를 신고, 마당에 라디오를 틀어놓고, 장갑낀 손에 삽을 들고 텃밭으로 들어갔다.  텃밭 구석부터 한삽 한 삽, 발로 흙 속에 삽날을 밀어넣으며 땅을 뒤집었다.  일 년에 한 번씩 반복으로 몸을 움직이며 몸에 통증을 쌓는, 조금은 힘든 작업이다.  기계를 쓰면 좋겠지만, 그럴 공간도 그럴 마음도 없었다.  그저 시간이 되는 대로, 무념 무상인 상태로, 정해진 방식으로 몸을 반복해서 움직여 작업을 한다.  오후 해는 등으로 내린다.  가로로 적당한 너비를 일렬로 뒤집으면, 한 삽 너비의 뒤로 살짝 이동하여 다시 오던 방향을 거슬러 가로로 흙을 뒤집어간다.  하다보면, 삽날에 걸리는 돌부리가 귀찮고, 무릎과 옆구리가 아파오며, 손은 물집이 잡히고 결국 터진다.  숨은 헉헉거리고, 몸의 열과 등의 햇살의 조합으로 몸은 땀으로 범벅이 된다.  힘들다.  그런데, 누구나 느끼는 감정일 수 있을 듯 한데, 마음이 편해진다.  혼자서, 아무 생각없이, 반복되는 노동을 한다는 것은 마음이 편해지는 일이다.  이상할 수도 있고, 당연할 수도 있는 일..  시간이 흐르고 있음은 라디오에서 흐르는 음악과 때가 되면 어김없이 나오는 광고로 알 수 있다.  나른한 오후 햇살아래 지루하게 반복되는 작업은, 아빠가 마당에 오래 나와 있다고 신이 난 라이도 지루해져, 햇살을 몸에 안고 드러누워 잠을 자게 했다.  가끔씩 삽날을 흙에 꽂아두고 마당으로 나와 장갑낀 손으로 녀석을 쓰다듬어주면, 금세 신이 나서 같이 놀자고 깔개로 쓰는 옷자락을 물고 흔들거나, 공을 물고 달려온다.  

  올해 틀밭 구성 작업은 예년보다 넓다.  그늘진 자리를 포함해 텃밭 구석 구석까지 모두 틀밭을 만들고 잡초매트를 깔 생각이다.  그러니, 한 번에 뒤집어야 하는 구획이 예년보다 1.5배는 늘었다.  뒤집은 적 없는 자리는 돌들이 여기저기 박혀서 삽날도 잘 들어가지 않았다.  그래도, 꾸역꾸역 해 나가서 작업을 마무리해야 한다.  생각으로 펼친 기대와 계획은 이렇게 땅 속에 박힌 돌부리들이 귀찮음과 주저함을 만들게 한다.  그럼에도, 나는 꾸역꾸역 삽날을 돌부리들 사이로 박아넣어 천천히 조심스럽게 땅을 뒤집는다.  뒤집힌 흙 속에서 깜짝 놀란 장수지네와 지렁이, 굼벵이들이 꿈틀거린다.  이들에게 미안함 역시 작업을 천천히 조심스럽게 한다.  잘라서 쌓아 놓은 나무틀들을 보고 있으면, 충분할 지, 틀로 적당할 지, 좀 더 다듬을 일은 얼마나 생길 지, 생각이 많아진다.  역시 생각했던 계획을 텃밭에 풀어내면서 단계마다 천천히 조심스레 해결해 나갈 일이다.  


  삽질은 아직 진행 중이다.  꾸준히 흙을 뒤집으니 대부분의 구역에서 작업이 마무리되었다.  이제 그늘진 구석자리의 구역만 뒤집으면 된다.  이 글을 다 쓰고나면, 바로 나가서 작업을 해야 한다.  기후가 달라지니 따뜻해진 날씨따라 모종심는 작업도 좀 빨라지지 않을까 싶다.  그러니, 작업을 좀 더 서둘러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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