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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텃밭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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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영웅 Jul 14. 2024

2024년의 텃밭일기 : 0714

  장마의 시간을 보내는 중이다.  장마라며 큰 비를 조심하라는 예보가 난무했다.  국지성 호우가 육지의 여기저기에 생채기를 냈고, 제주에도 어딘가에는 비가 쏟아졌을 것이다.  하지만, 일상의 영역이 거의 고정된 입장에서의 장마는, 호들갑이 반 이상의 느낌이다.  초기에 비가 사납게 내리더니 갑자기 예보가 바뀌면서 덥고 습한 남풍만 태풍처럼 불어댔다.  비가 온다는 예보는 실시간 중계처럼, 갑자기 바뀌어서 바람이 되곤 했다.  그러다 날이 흐려지더니 비가 오락가락 하는 수준의 우울한 날들이 이어지고 있다.  실시간 중계 수준의 예보는, 하루 또는 이틀 내내 비가 온다고 했지만 이내 구름만 있는 이미지로 순식간에 바뀌었다.  일상을 종잡을 수 없는 날들이다.  

  텃밭과 마당은 여름비에 하늘을 보며 무성해졌고, 태풍같은 바람에 옆으로 누웠다.  땅으로 흐르는 녀석들은 바람따라 줄기를 뻗었고, 지주대에 묶인 녀석들은 노끈과 지주대에 의지한 채 바람을 견뎌야 했다.  바람을 맞으면서도 높이와 부피를 키웠고, 맺어야 할 것들을 맺어냈다.  간혹 바람에 지주대가 꺾여버리면 옆으로 기운채 사람의 손길을 기다렸다.  오이망과 토마토 지주대는 얼기설기 지은 매듭이 다 풀려 구석으로 반 이상 기울어졌다.  기운 것들을 다시 세우고, 매듭을 다시 묶고, 바람에 좀 더 버틸 수 있게 노끈으로 추가 고정을 해 주었다.  바람골에 서 있던 사과나무는 바람을 이기지 못하고 결국 쓰러졌다.  일으켜 세우는데 밑둥 쪽에서 뚝 소리가 났고, 나무가 쉽게 움직여졌다.  회생이 불가함을 직감했다.  7-8년을 같이 했던 나무였다.  마음이 아팠지만, 이제는 떠나보내는 일에 담담해져야 함을 안다.  여전히 노력이 필요하지만 말이다.  


  비와 바람과 흐림 속에서 텃밭은 매일 풍성하다.  아삭이 고추는 넘치는 중이고, 애호박도 넘친다.  오이는 심심치 않게 매달렸고, 토마토는 생각보다 벌레가 끼지 않았다.  바질도 느리지만 아쉽지 않게 자랐다.  체중을 조절 중이고, 주중의 일상 때문에 집에서 식사를 제대로 하는 날이 별로 없다.  그러나 한두번의 저녁식사 자리에는 그날 거둔 고추가 작은 소쿠리에 넘치게 담겨나오고, 애호박은 전이 되어 상에 오른다.  쌈채소와 오이 가지도 나름의 준비가 된 모습으로 한 자리를 차지한다.  발사믹 소스에 토마토와 바질은 절임이 되었고, 잘 익은 무화과는 몇 조각 바로 먹고 남은 것으로 무화과 잼이 되었다.  한여름의 저녁식사는 너무 풍성하다.  나는 앉은 자리에서 고추를 예닐곱 개 고추장에 찍어 베어물었고, 물기 가득한 호박전을 입에 넣었다.  새콤한 바질 토마토 절임을 루꼴라와 같이 해서 후식처럼 먹었고, 쌈채소가 많다 싶으면 여러장 포개어 손 위에 놓고 밥 한 숟갈을 올린 뒤 고추장을 조금 얹어 입에 미어지게 넣었다.  고기를 좋아하지만 굳이 고기가 없어도, 방금 거둔 것들의 달달한 생기와 경쾌한 식감, 그리고 살아있는 듯 싱싱함이 충분한 만족을 주는 제철 식단인 것이다.  

  멀칭을 했지만, 잡초들은 바늘구멍같은 틈새에서도 비집고 올라왔다.  부직포 바닥과 나무틀 사이의 틈에서 무리를 지어 올라왔고, 고정핀을 박은 매트구멍에서도 기어이 올라왔다.  검질을 매지 않겠다는 다짐은 그저 바램일 뿐이었다.  흐리고 더운 바람이 불던 날, 나는 골갱이를 쥐고 챙 넓은 모자와 긴 팔 옷을 입고 텃밭으로 들어가 틈새에서 자라나는 녀석들을 모조리 뽑았다.  흙에 수분이 유지되니 뿌리채 뽑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하지만, 틈새에서 자라나는 것들은 틈을 사이로 아래로는 뿌리가 넓고, 위로는 줄기가 무성해서 틈에 고정된 상태였다.  뿌리채 뽑는데 매트나 고정핀이 같이 들려 올라왔다.  하나 하나 뽑는 건 번거로운데, 그래도 멀칭에 넓은 면적은 아니라서 검질은 몇 시간 만에 마무리되었다.  마당에 무성하게 올라오는 바랭이들은 예초기를 돌려 이발하듯 짧게 쳐 주었다.  마당의 검질은 이제 손을 댈 수 없는 수준이다.  잔디는 곳곳에서 넓게 잠식당해 철마다 익숙한 잡초들이 마당을 차지하고 있다.  낮게 퍼지면 그럭저럭 두고 보지만, 여름에는 그럴 수 없다.  바랭이풀과 그 비슷한 종류들이 마당을 덤불로 만들어버릴 기세로 자라기 때문이다.  아침마다 치워주는 라이의 똥을 찾는 것도 어렵다.  일일이 캐낼 수 없으니, 예초기를 돌려 밑둥을 쳐서 편평하게 만들어주는 것이 가장 속편한 방법이다.  잔디를 다시 깔아야 하나 싶기도 하지만, 그럴 일은 없을 것이다.  만일 마당에 손을 댄다면 아마도 반 이상을 공구리로 덮을 것이다.  이 심정은 마당을 관리해 본 사람들이라면 공감할 것이다. 

  한여름의 제철을 식탁에서 느끼는 일은 감사하고 즐거운 일이지만, 생각보다 짧다.  한여름의 습하고 더운 공기를 참아내는 일은 버거워서 어서 이 계절이 지나갔으면 하지만, 이 계절이 지나가면 식탁에는 생기와 싱싱함이 줄어든다는 아쉬움이 생길 것이다.  이 계절의 식탁이 주는 감각과 느낌은 내가 텃밭을 하는 주요 이유 중 하나다.  이제는 내 몸에서 느낌이 점점 줄어드는 생기라던지 또는 생명력같은, 설명하거나 단정하기 어려운 것들을 외부에서 느끼려 본능처럼 움직인다.  그 중 하나가 이 계절의 텃밭이다.  장마가 지나고 찾아 올 8월의 폭염은, 식탁위의 제철 감각으로 이겨낼 수 있을 것이다. 


  더 이야기 해야 할 두 가지.  하나는 모종에 속은 일이다.  봄에 모종을 사서 심을 때 샐러리와 이탈리안 파슬리 모종을 세 개씩 구분해서 구입했다.  분명 이름표에는 구분이 있었는데, 사실 모종이 비슷해서 구분하기는 어려운 녀석들이다.  열심히 키웠는데, 결국 모두 다 샐러리로 자라버렸다.  모종가게 주인도 구분을 못했던 것이다.  화이트와인에 생선요리를 할 때 이탈리안 파슬리를 넣어보려 했는데, 그럴 수 없게 되었다.  샐러리를 좋아하는 아내는 그냥도 먹고 장아찌에도 넣어서 먹고 그러는 중이다.  아내가 좋아하니 그저 담담하게 만족할 수 밖에 없다.   

  두 번째는 사과나무가 죽어가고 있다.  마당에 사과나무는 두 그루였다.  하나는 텃밭 쪽에, 하나는 마당 돌담 아래에 심었다.  위에서 이야기했듯 텃밭 사과나무는 바람에 밑둥이 부러져 결국 거두어낼 수 밖에 없었다.  그런데, 돌담 아래 사과나무도 이파리가 마르고 갈색으로 변해가는 중이다.  줄기를 잡아보니 탄력없이 휘어진다.  집을 지은 후 이제까지 잘 지내던 녀석들이 이렇게 이별을 하고 있었다.  아무래도 너무 더워진 탓인 듯 하다.  다른 이유가 없다.  기후변화로 이제 제주에서는 사과나무는 뿌리내릴 수 없는 나무가 되어버린 듯 하다.  내 마당에서만 그렇다면 다행이긴 하겠지만, 죽어가는 특별한 이유를 찾을 수 없는 상황에서 의심은, 너무 더워진 날들 밖에 떠오르지 않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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