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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밍이 Feb 21. 2024

자유롭게 사려깊게

리드 헤이스팅스, 에린 마이어, 『규칙 없음』

대략 만명.


예전에 그냥 궁금해서 유명한 회사들의 직원 수가 얼마나 되는지 찾아봤었다. 그때 깜짝 놀랐던 게 넷플릭스의 사원 수였다. 만명이 좀 넘는 규모. 세계적인 대기업이 이 정도라고? 테크 기업의 주가가 높을 수밖에 없구나 싶었다. 적은 수의 직원으로 엄청난 돈을 벌어들이니 말이다. 단 그 때는 그냥 테크 기업이라 직원 수가 적은가보다 했다. 아무래도 제조업처럼 많은 인력이 필요한 산업 구조는 아닐테니까.



이 책을 읽으면서 넷플릭스 사원 수가 유난히 적은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산업 구조적인 측면도 물론 크겠지만 회사가 의식적으로 작은 규모를 지향하는 거였다. 인재 밀도를 높이기 위해서 최고의 직원으로만 팀을 꾸린다고 했다. 생각해보면 나 역시 퍼포먼스가 좋은 동료들과 일할 때 의욕이 넘쳤고 새로운 시도도 많이 해봤던 것 같다. 반면 본인이 맡은 바를 다 하지 않으면서 불만만 많은 동료와는 말도 섞기 싫은 것이 사실이었다. 또 일은 잘하지만 다른 팀원들에게 도가 지나친 발언을 하는 팀원 역시 팀 전체의 분위기를 해쳤다.


내가 갖고 있던 또 다른 오해는 넷플릭스의 조직문화가 비인간적이고 공격적이라는 거였다. 넷플릭스 컬쳐 덱을 읽어보지 않은 상태에서 넷플릭스에서는 성과가 별로면 사람을 마구잡이로 자른다는 얘기만 주워들었기 때문이다. 넷플릭스에서 성과가 평범한 사람을 자르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 밑바닥에는 굉장히 사려깊은 문화가 깔려있었다. 단순히 한명 한명이 일을 잘하길 바라는 것이 아니라, 함께 같은 방향을 바라볼 수 있도록 수시로 맥락을 공유하고, 일을 잘 할 수 있도록 최고의 자유와 동료라는 환경을 만들어 주는 거다. 또 회사 차원에서 좋은 문화를 만들어나가고 있는지 들여다보기를 멈추지 않는다.


기업 환경에 깔려 있는 환상 중 하나가 비도덕적이어도 탁월한 성과를 내는 사람들에 대한 신화다. 동료를 비방하고, 무턱대고 해고하고, 독불장군식으로 결정하는 리더라고 해도 회사를 성장시키기만 하면 된다거나, 나아가 그런 사람이기 때문에 성과가 좋다는 식이다. 하지만 넷플릭스에서는 도덕적으로 일하는 것 역시 퍼포먼스의 일부로 평가받는다. 동료에게 무례한 발언을 하는 사람은 팀 워크를 해치기 때문이다. 피드백을 줄 때는 반드시 구체적인 액션 플랜과 함께 그 사람이 잘 되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아야 한다. 팀장은 자유롭게 팀원을 해고할 수 있지만 그 과정을 모두에게 투명하게 밝혀야 한다. 직원들에게 주어지는 자율성 역시 상당하다. 상사나 다른 동료들과 논의는 하겠지만 직원들은 자신이 맡은 일의 범주에서는 스스로 결정을 내린다. 팀원 간에 일정을 공유하면서 휴가도 무제한으로 자유롭게 사용한다.


비록 완벽하게 작동하지야 않겠지만 이 정도로 좋은 문화가 유지된다는 건 놀라운 일이다. 보통 회사들은 직원에 대해 불신을 갖고 상당한 수준의 통제를 한다. 회사가 잠시 규정을 유연하게 만든다고 해도 한 두명의 비양심적인 직원들 때문에 바보같은 규정들이 생기곤 한다. 반면 넷플릭스는 한 두명의 불량 직원을 감수하면서 다른 동료들의 자유와 창의성을 지켜주기로 했다. 이렇게 높은 수준의 자율성을 유지하기 위해 넷플릭스는 조직문화에 엄청난 자원을 투자한다. 회사가 만든 규정이 구체적으로 무엇을 의미하는 지를 다양한 사례와 함께 교육시키고, 직원이 스스로 결정을 내려야 할 때 무엇을 참고하면 좋을지 끊임없이 맥락을 공유한다. 또 회사가 의도한대로 조직문화가 조성되고 있는지 점검하고, 문제점이 발견되면 개선해나간다.


책의 마지막 부분은 글로벌 환경에서 넷플릭스 문화를 만들어 간 내용을 다룬다. 네덜란드와 미국, 싱가포르 간에 커뮤니케이션이 어떻게 다른지, 이러한 차이를 어떻게 조사하고 조정해 갔는지를 읽으며 ‘와 이렇게까지 한다고?’ 싶었다. 대부분의 회사에서 이러한 어감 상의 차이는 크게 신경쓰지 않기 때문이다. 넷플릭스가 얼마나 사려깊게 커뮤니케이션을 신경쓰는지 알 수 있는 부분 중 하나였다.


이 책의 제목은 ‘규칙 없음’이다.


프로덕트를 개발할 때 혁신은 무엇을 더하는 게 아니라 빼는 것에서 나온다고들 한다. 조직문화 역시 마찬가지이다. 간명한 프로덕트가 유저에 대한 깊은 고민과 공감에서 나오듯이, 조직에서 규칙을 없애기 위해서는 조직 구성원들을 깊이있게 이해하지 않으면 안된다. 어떤 규칙을 없애야 문제가 생기지 않고 오히려 퍼포먼스가 개선되는지 알아야 하기 때문이다. 불필요한 규칙 없이 모두가 자유를 누리기 위해서는, 구석구석 작은 부분까지 살피는 사려깊음이 있어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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