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늘과 그림자
1998년 나의 고등학교 학창 시절을 떠올리면 친구들로 꽉 찬 교실, 수업시간이나 쉬는 시간이나 대부분의 아이들이 책상에 엎드려 잠들어 있다. 그러다가 쉬는 시간이 되면 매점으로 질주하듯이 뛰었다. 매일 먹는 비슷한 과자를 종류별로 사서 먹었다. 그러다가 어느 날부터 매점에서 꽈배기를 팔았는데, 과자보다 방금 튀겨서 설탕이 묻혀 있는 꽈배기가 얼마나 맛있는지.., 어느 날 친구와 함께 점심시간에 꽈배기를 사서 먹으며 교실과 걸어오는데, 어떤 그림자가 나를 드리웠다.
학생부장 선생님! 꽈배기를 먹으면 교실바닥에 설탕을 떨어뜨리고 지저분해지는데 왜 그것을 사 먹었느냐! 학생이 왜 수업 준비는 하지 않고 매점이나 들락거리느냐! 등등 호통이 나의 정수리를 후려치는 느낌이었다. 학생부장 선생님은 나와 내 친구가 매점 앞에 있다가 꽈배기를 사 먹는 학생을 발견하면 즉시 교무실로 데리고 오라고 하셨다.
매점 앞에 처량한 기분으로 친구와 함께 꽈배기를 사는 친구들이 누가 있나 보고 있는데, 어떻게 해야 할지 마음이 복잡했다. 진짜 꽈배기를 먹는 친구가 있으면 데리고 가야 하나? 흘리지 않게 한자리에서 먹고 치우면 되는 것 아닌가? 내 친구가 꽈배기를 사 먹으면 어떻게 하지? 그 애를 데려갈 수는 없다. 그렇다고 선배를 데리고 갈 수도 없고, 모르는 어떤 후배를 데려가자니 미안하다.
앗! 그러다가 나는 옆의 옆 반에 얼굴은 알지만 친하지 않은 친구가 꽈배기를 먹고 있는 것을 발견하였다. 나도 모르게 꽈배기를 먹으면 안 되고, 학생부장 선생님에게로 가야 한다고 했다. 너무 많은 고뇌 끝에 나도 모르게 적합한 목표물이 나타나니 반사적으로 가서 얘기했는데, 그 아이는 굉장히 불쾌한 얼굴로 반쯤 먹던 꽈배기를 쓰레기통에 던져버렸다. 그 친구는 두말도 없이 학생부장 선생님이 계신 교무실을 향해 화난 발걸음으로 앞서갔다. 나는 더 이상 꽈배기 먹는 자를 관찰해야 하는 것에 대한 해방감, 그리고 친구에 대한 미안함을 안고 복잡한 심경으로 따라갔다. 우리 셋은 학생부장 선생님 앞에 서서, 학교에서 그런 것은 먹으면 안 된다는 것을 굉장히 엄숙하면서 단호하게 다시 한번 가르침을 받았다. 그리고 내가 데리고 간 친구는 이제 매점 앞에 서서 다른 꽈배기를 먹는 친구를 찾아서 학생부장 선생님 앞으로 데리고 오라는 지시를 받았다.
교무실 문을 나오면서 나는 “그렇다. 정말 학교에서는 꽈배기를 먹으면 안 되는 것이구나!”
라고 생각했다. 꽈배기 먹는 것을 또 시도했다가 다른 친구들이 먹는지 안 먹는지 염탐해야 하고, 행복하게 꽈배기를 먹던 친구 얼굴이 배신과 어이없음, 이어 분노로 뒤덮이는 모습을 봐야 하고, 학생부 선생님에게 이 긴 시간 혼나야 한다면 말이다. 또 앞으로 내가 학생부장 선생님에게 데리고 간 그 친구를 우연히 지나칠 때 내가 어떻게 대해야 할지 막막해서 앞으로는 절대 먹지 않는 것이 맞다고 생각했다.
이 꽈배기 사건은 학창 생활 에피소드일 뿐이고, 지금 나는 상황에 따라 감각 있게 행동하는 논리적이며 합리적인 판단을 내리는 어른이 되었다고 말하고 싶다. 하지만 이런 사고 과정은 지금도 나를 지배할 때가 많다. 옳고 그름을 생각하고, 주변 사람을 배려하기보다는 그냥 저 사람이 화나면 정말 문제가 커지잖아. 어차피 이길 수 없잖아. 이성적이고 착한 사람에게 나중에 상황이 이렇게 설명하고 사과하면 되지, 이 상황이 왜 이렇게 되었는지 생각하면 모두가 힘들어지기만 해…. 학창 시절에 나에게 드리운 마음의 그림자가 나의 의사결정의 방향을 정할 때가 많다.
수학 문제 틀린 개수만큼 당연히 드럼 채로 맞아야 했고, 매일매일 있는 영어시간에 단어 테스트 때문에 아침부터 마음을 졸였었다. 쉬는 시간에 만화책을 보다가 복도를 지나던 선생님이 분필 지우개를 던져 네이비색 교복 재킷이 하얀 가루로 뒤덮였었다. 그 선생님은 서울대에 갈 정도로 공부를 잘했었는데 고등학교 때 만화책을 보기 시작하면서 그렇게 되지 못했다고 했다.
어른은 아이들이 쉴 수 있는 시원한 그늘이 되어주어야 한다. 앞뒤 알 수도 없고 어쩔 수도 없는 논리의 덫을 놓아 아이들 마음속에 그림자를 드리우면 안 되는 것이다.
상상해본다. 지금 어른이 된 내가 고등학교 교실로 들어간다. 책상 위에 구부려 자는 나를 부드럽게 깨운다. 손을 잡고 조용히 교실을 나와 학교 교문을 나서면서 빠르게 걷는다. 최고 유명한 꽈배기 맛집에 가서 맛있는 달콤한 꽈배기와, 청포도 에이드를 사주면서 무슨 얘기를 하든지 미소를 지으며 진지하게 들어준다. 뮤지엄 산으로 가서 김환기 작품도 보여주고, 아름다운 건물과 자연을 보여준다.
그리고 다시 나를 다시 학교 교문으로 들여보내 준다. 그러면 한결 가볍고 반짝반짝 빛나는 표정이 된 나는 같은 교실, 같은 운동장, 같은 책도 다르게 보이고, 다른 생각을 하며 또 다른 꿈을 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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