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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변신 Apr 11. 2021

넬리

넬리 아르캉

  넬리 아르캉의 삶을 영화화한 작품을 보았다.


  얼마 전에 '길 하나 건너면 벼랑 끝'이라는 책을 보고 3주간 불면증으로 생활에 영향을 많이 받아서 책으로 보기는 그랬다. 영화를 보는데 맘에 들었다. 이후 e-book으로 책도 사서 읽었는데 필력도 대단하고 너무나 솔직해서 두렵기까지 했다.

  

  5년 동안 성노동자로 살아왔던 과거를 중심으로 불행했던 어린 시절의 원인이 되었던 어머니, 아버지 얘기를 많이 한다. 죽음이 자신의 종결이라는 이야기도 많이 한다. 부모는 사실 경제적으로 정신적으로 완성된 상태에서 되었으면 좋겠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가 많다. 그런데 아이는 부모에 의해 절대적인 영향을 받는다는 것이 너무나 안됐다. 


  넬리 아르캉은 작가로서 성공하고 유명인사가 되었지만 자살로 생을 마감한다. 일생을 침대에서 누워만 있었던 굼벵이 같은 생활을 한 어머니같이 되고 싶지 않다고 여러 번 책에서 얘기한다. 젊음을 잃고 자지도 않으면서 침대를 결코 떠나지 않는 어머니로 인해서 상처가 깊었던 것 같다. 거의 방임에 가까웠던 어린 시절을 보냈다.


  아버지는 어머니를 떠나지 않으면서도 젊은 창녀와 혼외정사가 이어져 왔고, 카톨릭 신자로서 비관적인 인생관과 인간에 대한 이중잣대를 들이댄다. 그냥 그린 아이의 그림도 어두운 세상을 묘사한 것이라고 맘대로 판단하고 종교적인 관점에서 모든 것을 판단한다.


  카톨릭의 엄격한 교육과 수녀님들의 차가운 태도도 넬리의 마음의 그림자를 더 크게 만들었다. 캐나다 퀘벡에서 태어났다고 하는데 캐나다는 우리나라보다 개방적일 것 같은데 퀘벡은 카톨릭의 영향권이라 그런지 우리나라의 보수성과도 닮은 점이 많은 지역 같다.


  여자로서 사회에서 요구받는 모순에 대해서도 명철하고 대담하게 묘사한다. 여자로서 느꼈던 열패감, 속상함의 원인이 명확하게 서술되어서 도움이 많이 되었다. 정확히 꼬집을 수는 없지만 심리적으로 많이 도움이 되었다. 재능도 많고 직업을 성노동자로 택한 것도 어릴 적 봐왔던 종교나 가정의 모순을 꼬집고, 부모님이 보고 자신에게 어떤 짓을 했는지 보여주고 싶었던 것 같다. 영문학을 전공한 것도 창녀 노릇을 더 잘하기 위해서라고 한다. 


  성노동자로서의 삶에 대해 시간과 공간 그리고 일어나는 사건들, 너무나 상세하게 묘사되었지만 인간의 심리에 대한 예리한 분석으로 인해서 많은 것을 얻게 되어 감사한 글들이었다. 인상 깊었던 내용은 끊임없이 외모에 대해 검열을 하는 여성들, 자신뿐만 아니라 다른 여성들의 외모를 판단하고 비교하고 외모로 인해 서로 위계를 정하기도 하고 남자들이 만들어놓은 원안에서 서로 경쟁한다는 것을 분석적으로 서술한 부분이다. 


  또 어머니의 노화와 사라진 아름다움에 대해서 많이 얘기하고 무력하게 누워만 있었던 것에 대한 분노를 많이 얘기한다. 우울증의 영향일 것이라는 추측이 드는데 내가 피곤하고 누워있을 때 아들과 딸이 어떻게 생각할까? 갑자기 겁이 나기도 했다.


  언젠가 아들이 "엄마는 느릿느릿하고, 신나는 일만 하려고 해."라고 말해서 가슴이 아팠다. 안 그래도 전업주부로서 돈을 쓰는 것이나 아이들과 체험학습을 하는 것에 대해 은근 검열하고 자책할 때가 있었다. 그리고 경제활동을 하지 않고 카페에 가거나 무엇인가 나를 위해서 하려면 부담이 있었는데 그 말을 들으니 가슴이 아팠다. 가사나 여러 가지에서 무능한 부분이 나를 힘들게 했는데 느릿느릿하다고 표현하니 아주 틀린 말은 아니면서도 겨우 버티고 있고 아이를 위해서 거의 내 모든 시간과 에너지를 내주는데 서운하기도 했다.


  자식은 부모를 바른 길로 인도하기 위해서 태어나는 것이라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아이들이 나를 어떻게 생각할까로 인해서 정신이 번쩍 날 때도 있다. 어쩔 때는 너무나 부담스럽고 생애 어느 때보다도 신체 정신적으로 탈탈 털릴 정도의 가사노동과 감정노동을 하고 있는데 억울하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런데 영화와 책을 보고 나니 나를 위해서라도 단정한 생활을 해야겠다는 마음이 들었다. 힘들다고 기진맥진 누워있는 모습이 아이들에게는 안 좋은 영향을 미칠 수도 있고, 그로 인해 아들과 딸이 엄청난 트라우마를 겪게 되면 그게 또 나의 문제가 될 수도 있다. 


  심리학 에세이에서 봤는데 인간은 소름 끼칠 정도로 환경이나 개인의 기질, 가족관계에 따라 통계가 나뉜다고 같은 길을 걷게 되는 시스템이 있다고 했다.  아름다운 외모, 작가로서의 재능, 명석한 두뇌를 갖춘 한 인간이 우울한 어머니, 부도덕하고 광신도인 아버지 밑에서 자랐을 때의 결론은 자살이라니... 성공이 이어졌는데도 넬리 아르캉은 죽음의 과정을 겪고 있는 것이라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는 것이 슬펐다. 그리고 정확히 꼬집어 말할 수는 없는데 심리적으로 많은 도움이 되었다.


  여자로서 겪는 일상적인 폭력의 불분명함. 처절함. 긴장감의 원인에 대해서 알 수 있었고, 일단 글을 너무 잘 써서 시원했다. 영화는 주인공의 과거와 넬리가 낸 4권의 소설의 주인공 캐릭터로 그려진 것 같은데 편집이나 음악 영상 모두 퍼펙트했다. 내게는...


  배설물에 살짝 깨끗한 흰 천을 씌우고 어디에서 냄새가 나는 거지 계속 불쾌했는데 이것이었구나 발견하게 해 준 느낌? 죄책감도 덜어지는 느낌이었다. 가끔 이야기를 나누고픈 친구가 없어서 그것이 절박한데 영화와 책이 친구가 되어주고 나를 조금 살려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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