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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변신 Apr 10. 2021

부인의 시간

-나의 시간, 공간, 결정에 대해

  항상 외로웠다. 주위 사람의 숨결이 그립고, 그리웠다.

  내가 노량진에서 임용고시를 공부하던 시절, 일요일에 하숙집 근처의 노량진에 있는 교회를 갔었다. 잡티하나 없는 좋은 피부, 세련된 옷차림의 젊은 신혼부부, 진주 귀걸이를 한 품위있는 옷차림의 아기엄마, 바구니에 담긴 하얗고 뽀얗고 뭔가 기품이 있는 아기! 고귀한 분위기가 풍겼다. 츄리닝차림의 푸석한 피부의 나는 괜히 내 자신이 초라하게 느껴졌다. 내가 직업을 가지고, 가정을 꾸려서 저 부부처럼 외출하는 날이 올까? 가슴이 저미는 느낌과 함께 내 미래가 저런 모습으로 귀결되기를 기도했다.


  힘든 임용 입시공부의 끝은 불합격이었다. 비정규직, 학원강사, 기간제 교사를 전전하다 안정감을 느끼고 싶은 간절한 마음에 늦게 선을 보고 급하게 결혼을 하였다. 바로 임신이 되어 아기도 낳았다. 꾸준히 지속되어왔던 우울감이 임신을 하자 직장생활을 더 할 수 없을 정도로 심해졌다. 직장을 그만두고 아기를 낳았다. 교회 빠지는 것을 상상할 수 없는 친정엄마, 첫 아이가 50일이 되면서부터 매주 교회에 나갔다.

내 시간, 내 공간, 휴식시간을 커녕 씻을 여유조차 없고, 그나마 안정적이던 직장을 우울감을 이유로 그만두었다는 사실이 남편에게 미안하고 죄책감이 들었다. 아이의 먹고, 놀고, 자고의 패턴에 맞추어 혼이 나가 있다가, 남편의 주간, 야간 교대근무 시간에 맞춰 청소, 빨래, 설거지, 식사준비를 하고, 주말에는 교회에 갔다. 교회에 나가면서부터 사역예배, 토요일 청소, 주일예배는 당연하게 요구되었고, 나는 나에게 미안함을 가지기보다 제대로 하는 일 없이 바쁘기만 한 나 자신의 능력을 자책했다.

어딘가에 홀린 듯, 여전히 초라한 차림으로 여기 저기 다니면서 내 마음은 점점 초조해지고, 내 결정으로 이루어지는 것은 거의 아니 아예 없었다. 내가 상상했던 우아한 가정주부의 모습이 아니었다. 나의 의·식·주와 육아의 질은 상당히 낮았다.


  다시 그 시절로 돌아간다면, 내 시간, 공간의 분류와 모든 결정을 내 의지와 철학대로 하고 싶다. 남편이 생계를 지원해주니까, 엄마는 나를 키워주고 힘들 때 많이 도와줬으니까로 대충 합리화하면서 내가 원하지 않는 색깔로 나의 삶을 그리지 않을 것이다. 나는 무슨 색깔을 좋아하는지 자체도 모르게 되어 버렸다. 그냥 남들이 하는 보통의 것들을 채우고 싶어서 덤벙대며 결정했던 것들로 삶을 채우고 싶어했고, 목이 마르면 탁한 물이라도 당연하게 받아 마신 듯한 생활을 했다. 탁한 물을 정제하고 정수하는 방법이 있었을텐데...


  20년대 나혜석도 나와 같이 고루한 생각을 하고 살지는 않았다. 시대와 현실을 보고 어느 정도의 타협을 하고 그렇게 까지 고달프게 살지 말라고 위로해주고 싶기도 하지만, 그 시대의 나혜석은 자신만의 의견과 철학과 문제해결을 스스로 해나갔다. 2020년대를 사는 나는 대학교육까지 받고 수많은 책을 읽어도 그냥 참고 마는 편하게만 살려는 나는 무엇인가? 무임금의 누구라도 개인시간이 필요하다. 감옥에 사는 죄수라도 운동시간, 휴식시간, 취침시간은 있다. 그리고 그 안에서 주어진 자신만의 시간은 본인이 결정하고 자기만의 신념으로 옥중생활을 하는 사람도 있다.

본인의 의사와 결정권을 잃으면 모든 것이 무너지고 후회와 미련만 남는 삶이 된다. 이것을 깨달은 것이 지나간 시간의 보상일까? 앞으로는 절대 다른 사람의 철학과 신념에 휘둘리지 않고, 나만의 시간, 공간을 만들어 나갈 것이다. 그것이 나를 후회없이 살게 만들 것을 알기에...

지나온 시간에서 행복한 시간들도 많았다. 그러나 남에 의해 배경색이 정해지고, 남이 묻혀주는 색깔의 붓을 들고 그려진 라인만 그리는 삶은 재미도 없고, 나만의 작품이 나오지 않는다. 이번 달은 나만의 여행계획을 세우고 싶다. 혼자 갈 것인지, 아이들도 함께 갈 것인지, 장소, 시간 모든 것을 내가 결정할 것이다. 이번 여행이후 내 인생여행도 내가 결정할 것이다.


#육아#일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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