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대변인 Jun 04. 2016

닭쳐라 남미! -14-

자네 이런거 본 적 있나?

https://brunch.co.kr/@briefing/16


<전편에 이어...>


이제 다음 주부터는 본격적인 한인사회 진입이구나!!! 생각을 하고 영감님과 헤어졌다. 짐가방 하나 들고 아르헨티나에 온 지 40일, 짧다면 짧은 시간이지만 나에겐 인고의 시간이었다. 그렇게 부분 꿈과 희망을 안고 성당을 나서려는데 한 아줌마가 내 팔을 잡는다. 이거 한인성당에 오니 도움의 손길이 알아서 다가오는구나 생각도 잠시. 그녀가 물었다.


아까부터 지켜봤는데... 한국에서 왔어요? 아까 이야기한 그분 개인적으로 알아요? 개인적으로 아는 사이 아니면 조심해서 만나요. 웬만하면 돈거래는 하지 말고요...


응??? 1분 전까지 청운을 키워 나가던 나에게 이게 무슨 개뼉다귀 같은 소리더냐...




숙소로 돌아오는데 계속 그 아줌마 말이 머릿속을 맴돈다. 조심해서 만나라니... 돈거래는 하지 말라니... 외국 나가면 한국 사람은 한국인을 가장 조심해야 한다는 사실은 이미 경험한 바 있다. 대학생 시절 영국에서 어학연수할 때 한국인 방주인 한테 보증금 100만원 정도를 떼일 뻔하다가 지인들을 총동원해서 돈을 받고 나온 기억이 있다. 그때는 지인들이나 친구가 있었지만 아르헨티나는 도움을 줄 수 있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하지만 영감님 말고 조언을 준다거나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사람도 없었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 썅!

어차피 선택의 여지는 없었다. 그저 그 영감님을 최대한 경계하면서 만나는 것뿐. 


숙소 침대에 누워있는데 머리가 복잡해진다. 아... 어떻게 하라는 거야... 조용히 생각을 정리하고 싶은데 옆 침대에 여자들이 끊임없이 입을 놀린다. 내가 머물고 있는 방은 호스텔의 가장 저렴한 혼성 8인 1실 방이다. 나를 빼고는 다 여행객이라 끊임없이 투숙객이 바뀌는데 어쩌다 보니 당시엔 나 빼고 전부 여자인 상황이 되었다. 처음엔 이 조합이 천상의 조합인 줄 알았다. 남자 하나에 여자 7명이 한방에서 지낸다니. 오! 지져스... 할렐루야! 하지만 7명의 여자들이 서로 어울려 수다를 시작하는 순간 방안은! 수다 천국 묵언 지옥! 이 되었다. 예전처럼 내가 여행객이라면 같이 웃고 떠들겠지만 지금은 삶의 방향을 결정해야 하는 때인지라 그냥 좀 닥쳐줬음... 싶었다. 그런 내 마음도 모르고 호주, 벨기에, 오스트리아, 캐나다 등 각 대륙에서 온 20대 초반 여자들이 밤늦게까지 연예인 이야기, 놀러 다닌 이야기를 끊임없이 펼치고 자빠졌다. 당시 아르헨티나 이민이 생각대로 진행되지 않으면 이른바 'PLAN B'로 호주 또는 뉴질랜드 워킹 홀리데이를 가려고 미리 비자를 다 받아놓고 아르헨티나에 왔는데 호주나 뉴질랜드를 가도 이런 소란스러움을 또 겪어야 한다는 생각에 진저리가 났다. 예전 바르셀로나에선 방 하나에 남녀 20명이 뒤섞여 자는 곳에서도 좋다고 지냈는데 나도 나이를 먹어가나 보다...


당시 지내던 방 풍경, 우측 하단이 내가 쓰던 자리


닭의 목을 비틀어도 아침은 온다. 날이 밝아도 어떻게 좋을지 답이 없었다. 성당에서 만난 영감님이 내놓을 패가 어떤 건지 알 수 없지만 예전에도 말했듯 나는 똥인지 된장인지 일단 먹어봐야 하는 성격이다. 좋은 대안들이 있다면 내 상황에 따라 취사선택할 수 있겠지만 고를 수 있는 패 자체가 없었다. 돈거래만 안 하면 된다! 생각하고 영감님 댁에 찾아가기로 했다.


지내고 있는 숙소에서 지하철로 3~4 정거장 떨어진 시내 어느 건물 앞, 성당에서 본 영감님이 있는 집 앞에 도착했다. 지하철역에서 도보로 5분 정도 떨어진 대로변에 위치한 3층짜리 건물이었다. 1층에는 동네 마트가 들어서 있었다. 정원이 있는 주택에 살 줄 알았는데 건물 외관을 봐서는 그다지 좋아 보이지 않는다.


딩동~


마트 옆에 위치한 쪽문의 벨을 누르자 2층에서 영감님이 나를 맞아 주었다. 큰 기대 없이 계단을 따라 2층에 올라오니 밖에서 상상할 수 없었던 광활한 집이 펼쳐져 있었다. 대형 빌딩 로비에서나 볼 법한 높은 층고, 넓은 거실과 주방, 그리고 어디인지 보이지 않지만 계속 들락날락 거리는 영감님의 안방이 따로 있는 것으로 보아 2층에 방이 5~6개 정도는 있는 것 같았다. 그리고 3층에는 자신의 조카와 친구가 산다는 널찍한 방, 한국이 유학생에게 세를 준다는 또 다른 큰 방, 그리고 10평은 되어 보이는 화장실 하나, 그리고 옥상에는 영감님이 기르는 화초들과 젊었을 적 자신의 일터로 쓰던 공간이 남아 있었다. 듣자 하니 예전에 이곳 옥상에서 옷 공장을 운영하며 많은 돈을 벌었다고 한다.


자네, 한국에서 알고 있다는 교민분 이름이 어떻게 된다고?
내가 예전에 알던 분 같은데...



영감님이 책장에서 책을 하나 꺼내 건네준다. 아르헨티나 한인 교민들이 모여 발간한 문집이다. 페이지를 넘기니 한국에 계신 학원 원장님의 이름과 글도 함께 실려있었다. 이 영감님을 어느 정도까지 신뢰해야 하나 계속 의문이었는데 이곳에서 오래 활동을 한 분은 맞는 것 같다. 이야기를 들어보니 지금 살고 있는 집 건물과 맞은편 건물 등 부에노스 아이레스에 부동산을 다수 가지고 있는 재력가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집 안을 둘러보면 그 말이 결코 헛된말은 아닌 것 같았다. 눈으로는 문집을 보며 이 양반과 얼마큼, 어떻게 교류를 해야 하나... 고민하고 있을 때 영감님이 나에게 무언가를 내밀었다.


자네 이런거 본 적 있나?


영감님이 생전 처음 보는 '그것'을 나에게 들이밀었다. 이때는 몇 년 후 '그것'을 한국 연예인들이 너나 할 것 없이 들고 나올 것이라고는 전혀 예상치 못했다.


<다음 편에 계속...>  


매거진의 이전글 닭쳐라 남미! -13-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