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집에 한번 들르게, 그분 조심해서 만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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됐다!!! 비록 기대했던 한인학교 이사장님은 못 뵀지만 한인성당에 작은 연결고리가 생겼다. 이 고리가 앞으로 얼마나 나에게 도움을 줄지 알 수는 없지만 안 그래도 성당을 찾아가 보려고 했는데 아무도 아는 사람 없는 곳을 가는 것과 한 명이라도 아는 것은 천지차이지! 발걸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이번 주말부터는 일이 술술 풀릴 것만 같다. 주말에 헤매면 안 되니 한인성당을 찾아 위치를 확인했다.
이번 주말부터 드디어 본격적인 아르헨티나 생활 시작이구나!
드디어 멀고 먼 이국땅에서의 첫 번째 문이 열리는 순간이다!라고 생각했다. 이때까지는...
최대한 단정하게 차려입고 한인성당에 갔다. 군복무 시절 잠깐을 제외하면 일요일 아침을 종교시설에 허락한 적이 없는데 아르헨티나에서 성당이라니... 하지만 나도 먹고살아야지 않겠는가? 지금은 일단 어디든 비벼야지 찬밥 더운밥 가릴 때가 아니다. 주말 아침에 모인 성당에 모인 검은 머리 사람들을 보니 이곳이 한국인지 아르헨티나인지 구분이 안 간다.
교회에서 설교(?)를 들으며 앉아있으면 피부에 발진과 수포가 생길 것 같은 기분인데 성당은 다행히 그런 부작용은 일어나지 않았다. 그저 순서에 맞춰 옆에 사람들이 하는 데로 고개를 숙였다 올렸다, 기도를 드리는 척, 노래를 부를 때는 립싱크로 그때 그때 상황에 맞춰 몸을 움직였다. (먹고 살기가 이렇게 힘든 거다.)
별 탈 없이 한 시간의 미사가 끝나자 사람들이 어디론가 우르르 몰려나간다. 이럴 땐 그냥 사람들 가는 데로 물 흐르듯이 떠나가면 되는 거다. 지금 돌이켜보면 이렇게 물 흐르듯 삶을 살아가는 지혜를 한국에서 알았더라면 막무가내로 회사를 떠나진 않았을 텐데...
사람들에게 떠밀려 나온 곳은 본당 옆에 위치한 작은 공터였다. 미사가 끝나고 아르헨티나 교민들이 모여서 이야기를 나누거나 한쪽에서는 교인들이 제공하는 밥과 빵을 먹기도 하는 그런 공간이었다. 매의 눈의로 둘러보니 지난번 한인학교에서 만났던 아저씨도 한쪽에 서 있는 게 보인다.
안녕하세요. 지난번 한인학교에서 뵀던 대변인이라고 합니다...
누구신가? 하는 눈치였지만 인사를 하니 아저씨도 생각이 났다는 듯 반갑게(?) 인사를 나누었다. 그리고는 먼저 밥부터 먹자며 성당 한쪽에서 제공(이라 쓰고 염가에 판매하는)하는 밥과 국을 퍼다 주었다. 오늘의 메뉴는 육개장이다. 오! 이게 얼마만에 보는 한국 음식이냐?! 육개장을 그다지 좋아하진 않지만 오랜만에 본 한국음식+공짜 음식 덕분일까? 순식간에 밥그릇을 비웠다. 하얀 쌀밥으로 배속을 채워본 게 얼마만인지... 왜 사람들이 종교를 열성적으로 믿는지 알 것도 같다. 예전 우리가 못 먹고살았을 때는 이렇게 배불리 먹여주는 곳이 최고였으리라... 그렇게 밥을 먹고 나니 더 이상 내가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아는 사람도 없고 그저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앞에 앉아 있는 아저씨를 따라다니며 이 양반이 누군가 나에게 도움이 될 만한 양반을 소개해 주기를 기다릴 뿐이다. 밥을 먹고 다시 공터에 얼마쯤 나와 있었을까? 아저씨가 나를 누군가에게 인사시킨다.
이쪽은 내 대부님인 AAA 님일세, 세례명은 XXXX 이시고...
키가 160 정도 돼 보이는 작은 영감이었다. 살이 붙은 몸집에 앞 대머리인 그냥 어디서나 볼 수 있는 뚱뚱한 노인이었다. 노인은 나에게 물었다.
1. 아르헨티나에 가족이 있는가?
2. 아르헨티나에 친척이 있는가?
3. 아르헨티나에 친구가 있는가?
4. 결혼은 했는가?
아... 정말 지겨운 질문이다. 이럴 줄 알았으면 '나는 아르헨티나에 가족이 없습니다.' , '나는 친척이 없습니다.' , '나는 친구가 없습니다.' , '나는 미혼입니다.'의 스페인어 표현을 티셔츠에다 찍어서 입고 다닐걸... 그리고 밑에다가 이렇게 쓰는 거지 '나는 돈이 없습니다.' , '나는 돈이 없습니다.' , '살려주세요'
우리 집에도 얼마 전에 조카가 한국에서 넘어와 지내고 있네. 자네 어느 쪽에서 지낸다고? 내 집도 시내에 있으니 한 번 들르게...
오잉?!?! 이야기 듣기론 이분이 아르헨티나에선 꽤나 성공한 양반이라고 하던데 이런 양반이 집에 초대를 한다니... 지성이면 감천이라 했던가? 이제야 아르헨티나 정착의 길이 보이는 것 같다.
네!!! 그럼 주중에 한번 찾아뵙겠습니다!
기회는 찾아올 때 잡아야 한다! 그동안 얼마나 이런 기회를 굶주려 왔던가? 성당에서 받은 회보 한쪽에 이분의 집 주소와 연락처를 받았다.
이제 다음 주부터는 본격적인 한인사회 진입이구나!!! 생각을 하고 영감님과 헤어졌다. 짐가방 하나 들고 아르헨티나에 온 지 40일, 짧다면 짧은 시간이지만 나에겐 인고의 시간이었다. 그렇게 부분 꿈과 희망을 안고 성당을 나서려는데 한 아줌마가 내 팔을 잡는다. 이거 한인성당에 오니 도움의 손길이 알아서 다가오는구나 생각도 잠시. 그녀가 물었다.
아까부터 지켜봤는데... 한국에서 왔어요? 아까 이야기한 그분 개인적으로 알아요? 개인적으로 아는 사이 아니면 조심해서 만나요. 웬만하면 돈거래는 하지 말고요...
응??? 1분 전까지 청운을 키워 나가던 나에게 이게 무슨 개뼉다귀 같은 소리더냐...
<다음 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