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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대변인 May 31. 2016

닭쳐라 남미! -12-

한인학교, 한인성당, 한인사회

https://brunch.co.kr/@briefing/14


그나마 믿고 있던 분에게 한국을 떠나자마자 밑장 빼기를 당하고 몇 번 판이 엎어지다 보니 38 광땡인 줄 알았던 패가 이제는 망통으로 보이기 시작한다. 하지만 여기서 멈출 수는 없다. 나는 똥인지 된장인지 먹어봐야 맛을 아는 사나이 아니던가.


그래! 못 먹어도 고!


다시 힘을 내 한인학교를 가보기로 했다!



부동산에 계신 분은 만날 수 없었지만 이번엔 한인학교 이사장이라니... 무언가 서광이 비출지도 모른다는 한줄기 희망이 보이는듯하다. 한인학교는 부에노스 아이레스의 서쪽, 백구(109)라 불리는 지역에 있었다. 예전 109번 버스 종점이 있어서 '백구'라는 지명이 붙었다는 말도 있고 여러 가지 설이 있으나 나에겐 그다지 중요하진 않았다. 지도를 확인해보니 한인성당도 멀지 않은 지역에 위치해 있었다.


좋아! 한인학교를 갔다가 한인성당도 둘러보고 오면 되겠네!


교통도 지하철이 바로 연결되어 있어서 '아베샤네다' 보다는 찾아가기 수월했다.


당시 찍어놓은 한인학교 가는 경로


한인학교를 가기 위해 시내 지하철 플랫폼에 섰다. 열차를 기다리는데 어디선가 후덥지근한 바람이 불어온다. 눈가를 간질간질하게 만드는 기분 나쁜 느낌의 바람이다. 어디서 이런 엿같은 바람이 불어오나 했더니 역사 천장에 달린 대형 선풍기에서 불어오는 바람이었다. 누렇게 변색된 선풍기 본체와 날개에 붙어있는 먼지들이 얼마나 방치되었는지 짐작가게 한다. 부에노스 아이레스에서 지하철을 탈 때마다 느끼지만 다들 철도 박물관에나 있을법한 지하철들이 태연히 지하를 누비고 있었다. 시설들의 관리 상태도 한국이나 일본 지하철이야 지나칠 정도로 깨끗하니 그렇다고 쳐도 더럽기로 소문난 뉴욕 지하철이나 파리, 로마 지하철도 부에노스 아이레스 앞에서는 고개를 숙여야 할 것 같았다.


또 하나 느낀 차이점이라면 백구 지역으로 가는 지하철 열차 내부의 창문 대부분이 열려있었다. 그러고 보니 언제부턴가 우리나라 지하철은 창문을 열 필요가 없어진 것 같다. 예전 내 기억에는 분명 지하철도 창문을 열고 바깥바람을 쑀었는데... 창문 양끝에 있는 집게를 잡고 창문을 아래로 내리거나 비스듬히 여는 창문이 있었던 기억이 난다.


기억나시는가? (출처: 엔티_유키님 블로그 http://egloos.zum.com/ntyuki/v/1581882)


왠지 모르게 고풍스러운 느낌의 빛바랜 열차, 무심한 듯 새침하게 여기저기 벗겨진 페인트와 누렇게 녹슨 내부, 까다롭지 않다는 듯 부분 부분 깨져버린 플라스틱 좌석, 그리고 부모님과 함께 놀러 가던 어린 시절을 기억하게 하는 창문 열린 지하철은 풋풋했던 우리네 유년시절의 기억을 떠올리기에 충분하긴 개뿔! 지하 터널 속 먼지를 폐 속 깊은 곳으로 다이렉트로 전달해주고 있었다.


부에노스 아이레스(Buenos Aires=좋은 공기)라더니... 이건 결코 좋은 공기가 아니야...!!!


'크릉 크릉~' 열차와 철로 사이의 마찰음이 열려있는 창문을 통해 계속 나의 귓전을 때린다. 한국을 떠나는 순간부터 생각과는 달리 일이 진행되다 보니 어찌 보면 평범한 것 하나에도 신경이 곤두선다. 생리를 한 달 넘게 계속하고 있다면 이런 기분일까? 물론 나는 남자라 생리를 안 하지만 아마도 한 달간 생리가 멈추지 않는다면 지금의 내 기분일 것이라 유추해본다.



 

지하철로 30분 정도를 달려 다다른 '백구'지역, 왠지 지하철 출구부터 살짝 슬럼가의 냄새가 난다. 시내보다는 치안이 좋지 않으니 조심하라는 사람들의 조언을 듣고 원래부터 없지만 더욱 없어 보이게 차려입고 왔는데 내 모습과 물아일체가 되는 느낌이다. 아르헨티나에 오기 전 한국이나 유럽 국가들처럼 깨끗하거나 정비가 잘 되어있을 거라 기대는 하지 않았다. 하지만 곳곳에 포진해 있는 개똥이나 정비되지 않은 환경은 이곳이 '남미의 파리'가 맞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뭐 눈엔 뭐만 보여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내 눈엔 길바닥 곳곳에 포진한 개똥이 계속 눈에 들어왔다. 그렇게 얼마를 갔을까?

 

아! 여기가 한인학교구나!!!


역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한인학교가 있었다. 생각보단 소박한 크기의 학교였다. 건물 맞은편에서 학교를 보고 한 번 심호흡을 했다.


친절한 간판: 아르헨티나 한국학교


쓰읍~~~


사람들은 나보고 넉살 좋고 아무데서나 잘 들이대는 뻔뻔한 인간이라고 하지만 새로운 무언가에 접근한다는 게 나에게도 말처럼 쉬운 것은 아니다. 더군다나 앞으로 내 삶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곳이라면 더더욱 그러할 것이다. 눈앞으로 보이는 반쯤 닫혀있는 학교의 철문이 더더욱 크게 느껴진다. 그간의 일들 때문인지 철문이 이곳에서 살고 있는 한인 교민들과 나를 막고 있는 장벽으로 느껴진다.


이번에도 또 소개해준 사람을 못 만나면 어떻게 해야 하나...



걱정반 기대반으로 건물 입구의 관리실 아저씨에게 조심스레 말을 걸었다.


안녕하세요, 여기가 OOO 이사장님이 계시는 한인학교 맞나요? 한국에서 온 지 얼마 안 됐는데 YYY 선생님 소개로 이사장님을 찾아왔습니다.


관리실 아저씨는  OOO 이사장님이 계시는 곳은 맞는데 이사장님이 개인 용무로 요새 학교에는 뜸하게 오신다는 말을 전했다.


조또...


이거 또 한인학교로 기약 없는 헛발질을 계속해야 하는 건가? 고민하던 중 아저씨가 묻는다.


1. 아르헨티나에 가족이 있는가?
2. 아르헨티나에 친척이 있는가?
3. 아르헨티나에 친구가 있는가?
4. 결혼은 했는가?



대답을 듣고 아무 연고 없이 아르헨티나에 혼자 오다니 용기가 가상하다 말하면서도 그의 눈빛은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그동안 계속된 헛발질이 안타까웠는지 아저씨는 정문 앞 학교버스 주변에 있던 다른 아저씨를 불렀다.


 ㅁㅁ씨, 이 친구가 한국에서 혼자 왔다는데, 이사장님 찾는데 요새 뜸하시잖아... 이 친구도 성당 다닌다는데?


소개를 받은 아저씨는 나를 반갑게 맞아 주었다. 이곳에 와서 받아보는 첫 번째 소개가 아닌가 싶다.


성당 다닌다고?


그렇다. 성당을 다닌다. 내가 아니라 우리 부모님이. 하지만 아버지는 예전에 냉담으로 돌아섰고 어머니만 다닌다. 하지만 지금 내가 찬밥, 더운밥 가릴 때가 아니다.


아...;;; 저희 부모님은 성당 다니시고요 저도 다니려고 알아보고 있습니다...;;;


내 비록 특정 종교를 믿는 교인은 아니지만 군대 훈련소 시절 교회, 성당, 법당을 오가며 믿음과 초코파이를 맞바꾼 관용과 넓은 포용력의 남자 아니던가. 이렇게 된 이상 오늘부터 나의 종교는 가톨릭이다!!!


한인성당은 가봤나?


안 그래도 한인학교 들렀다가 한인성당도 가보려고 했는데 솔직히 가도 아는 사람이 없어 어쩌나 고민하고 있던 차였다.


아직 안 가봤는데요, 안 그래도 찾아가 보려고 하고 있었습니다.(=이제 비빌 곳이 그곳밖에 안 남았습니다.)


정말이다. 진짜 비빌 언덕이 점차 고갈되고 있었다. 손 안에 패는 점점 줄어드는데 점수가 안나는 상황. '고'는 못해도 피박, 광박은 면해야 할 텐데 이대로 가다간 제대로 공사를 당하게 생겼다.


아? 그래?! 그럼 이번 주에 찾아오시게 내 대부님을 소개시켜 드리지!


오?! 이게 얼마만에 듣는 반가운 소린가? 내가 던진 패는 안 맞았지만 뒤집어 나온 패에 쌍피를 먹은 형국이다.


아!! 감사합니다!!! 그럼 주말에 성당에서 뵙겠습니다!



됐다!!! 비록 기대했던 한인학교 이사장님은 못 뵀지만 한인성당에 작은 연결고리가 생겼다. 이 고리가 앞으로 얼마나 나에게 도움을 줄지 알 수는 없지만 안 그래도 성당을 찾아가 보려고 했는데 아무도 아는 사람 없는 곳을 가는 것과 한 명이라도 아는 것은 천지차이지! 발걸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이번 주말부터는 일이 술술 풀릴 것만 같다. 주말에 헤매면 안 되니 한인성당을 찾아 위치를 확인했다.


부에노스 아이레스 한인성당


이번 주말부터 드디어 본격적인 아르헨티나 생활 시작이구나!


드디어 멀고 먼 이국땅에서의 첫 번째 문이 열리는 순간이다! 라고 생각했다. 이때까지는...


<다음 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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