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마 트레킹 그리고 궁궐 같은 호텔
옛날 청춘들은 호환, 마마, 전쟁 등이 가장 무서운 재앙이었으나, 현대의 청춘들은 무분별한 불량/불법 어른들을 시청함으로써, 비행 청춘이 되는 무서운 결과를 초래하게 됩니다. 우수한 어른인 대변인을 바르게 선택, 활용하여 맑고 고운 심성을 가꾸도록 우리 모두의 바른 길잡이가 되어야겠습니다. 한 명의 어른, 사람의 미래를 바꾸어 놓을 수도 있습니다.
[전편에 이어...]
뭐랄까? 안 힘든데 힘든 하루라고 표현하는 게 맞을 법한 그런 하루다. 일전에 깨달은 것처럼 이 여행은 당근과 채찍을 번갈아 가면서 맛보는 공식의 여행이다. 하지만 당근, 채찍의 교차 수열 조합은 여기까지 였다.
오늘이 당근이라면 앞으로는 계속 채찍, 채찍, 채찍의 일정이 기다리고 있었다...
쿠스코 이틀 차, 라마 트레킹과 짚라인 체험이 있는 날이다. 호텔 조식을 두둑이 먹고 질펀하게 똥도 한번 때리고 나선다. 해발 3,000미터 이상의 고산지대인 쿠스코에서는 고산병에 시달리는 사람들을 위해 호텔마다 산소 호흡기와 약을 준비해 둔다고 한다. 나는 다행히 고산병은 없는데 높아진 압력 때문인지 똥이 엄청 잘 나온다. 일일삼똥을 하며 배에 찬 압력을 분산한다. 남편은 이역만리 페루에서 이렇게 즐똥 하는데 변비에 시달리는 마누라도 오면 좋겠다 생각을 해본다.
<쿠스코의 호텔들은 고산병 증세를 보이는 투숙객을 위해 산소통을 준비해 두었다.>
블랙야크 일행을 싣고 쿠스코 외각으로 향하는 버스 차창밖으로 황량하면서도 이국적인 풍경들이 펼쳐진다.
해발 3,500m 이상 지역인지라 어딜 봐도 풍경은 끝내준다. 호흡이 조금 힘겨워서 그렇지...
라마 트레킹 가는 길에 있는 성스러운 계곡(Valle Sagrado de Los Incas)이 보이는 전망대에서 사진을 한 장 남긴다.
블랙야크 직원 분들과 페루 관광청 직원이지만 페루에 처음 와본다는 직원분의 모습을 보니 역시 이불 밖은 위험하지만 회사 밖은 어쨌든 천국이다.
한참 동안 포장도로를 달리던 차는 어느덧 비포장 도로를 달리기 시작했다. 울퉁불퉁한 비포장 도로를 얼마나 달렸을까? 주변에 아무것도 없는 산길 한가운데 우리 일행을 내리게 한다. 여기가 라마 트레킹의 시작 지점이라나...
전통 페루 복장을 한 몇몇이 우리를 반긴다. 그리고 그 옆에 있는 라마들.
이곳에 오기 전까지만 해도 라마 트레킹이라고 해서 라마를 타고 쿠스코 주변을 돌아보는 프로그램인 줄 알았다.
하지만 히말라야 오리지널(이지만 사옥은 양재동에 있는) 블랙야크와 페루 관광청은 사람들이 생각하는 그런 일반적인 관광 코스를 짜는 사람들이 아니었다. 듣자 하니 블랙야크는 자사의 홈페이지에 등산 기록을 많이 인증한 회원들 중 추첨을 통해 히말라야로 보낸다고 한다. 졸라 힘든 세상은 문밖에 있다...
라마를 타고 대평야를 누릴 거란 생각과 달리 앞서가는 열댓 마리의 라마의 둔부를 지그시 바라보며 끊임없이 걷는 트레킹이 시작되었다.
아... 이게 아닌데...
늦었다고 생각하는 순간이 진짜 늦은 거다. 처음에 봤을 때 마냥 신기하게만 보였던 라마도 계속 걷다 보니 앞에서 가든 말든 난 누군가 또 여긴 어딘가 모드로 걷고 있는 나를 발견하게 된다. 얼마나 걸었을까? 마을이 눈에 들어왔다.
산속에 위치한 허름한 시골마을로 안내된 우리들을 동네 아이들과 아줌마들이 맞아준다. 마을 한쪽에서 페루의 전통 직조 방식을 이용해서 수작업으로 옷가지 등을 만드는 모습을 설명해준다. 우리는 단체 관광객을 버스에 싣고 면세점 앞에 풀어놓는데 느낌은 왠지 비슷하면서도 사람들이 너무 소박해서 휴식도 취할 겸 관심 있게 바라보았다.
시연과 휴식이 끝나자 다시 라마들이 튀어나온다. 1절만 해도 되는데 4절까지 끝내고야 말겠다는 그들에게 이끌려 일행들 모두 해발 3,000미터의 고산지대에서 라마 엉덩이 보고 걷기를 4절까지 끝내고 나서야 풀려날 수 있었다.
시계방향으로
1. 라마 트레킹 모습
2. 포토샵의 원조 아도베(adobe) 벽돌
3. 라마 트레킹으로 돌아보는 풍경
이쯤 되니 이번 여행의 콘셉트가 무엇인지 슬슬 알 수 있었다. 블랙야크 글로벌 야크 크루x페루 관광청의 여행 콘셉트는 바로
당근 & 채찍
아침 댓바람부터 4~5시간 정도 채찍으로 때렸으니 이제 본능적으로 당근이 나올 것이라 예상하고 있는 나를 발견한다. 나란 인간, 단순한 인간. 리마에서부터 페루 관광청과 블랙야크가 당근을 정성스레 준비했다는 것은 느낄 수 있었지만 오후에 새로운 호텔에 도착한 순간 생각이 조금 바뀌었다.
이 사람들 제대로 약 빨았다.
호텔이 아니라 무슨 중세풍 대궐 속에 우리를 풀어놨다.
쿠스코 시내를 벗어나 우루밤바 지역에 위치한 이곳은 알고 보니 18세기 수도원으로 쓰였던 곳을 호텔로 개조한 곳이라고 한다. 방 열쇠도 18세기 시절 모습 그대로를 간직하고 있다. 밤길에 호신용으로도 좋을법한 모양과 크기!
방문을 열고 들어가는 순간 지릴 뻔했다. 광활한 방의 크기에 놀라고 트윈 침대에 놀라고...
크흙 진짜 나 따위가 뭐라고 이런 호사를...
서울에서는 5평짜리 원룸에 사는데... 감개가 무량해진다. 페루까지 공짜로 여행 와서 이런 좋은 호텔에 머무니 무언가 성공한 모험가가 된 느낌.
블랙야크 회장님은 제주도에서 서울로 올라와 20대에 사업을 시작해 지금의 블랙야크를 이뤘다는데 같은 제주 출신인 내 아내는 간호대학을 졸업하자마자 육지로 올라와 병원을 전전했으나 결혼을 해서도 원룸에 살고 있다. 결혼 전 그녀가 살고 있는 원룸을 보고 그 협소함과 열악함에 놀라 빨리 그녀를 그곳에서 벗어나게 해주고 싶은 마음에 결혼을 했지만 지금은 나도 같이 원룸에 살고 있다. 결혼이 이만큼 위험한 것이다.
긴 트레킹 이후 오랜만에? 아마도 처음인듯한 여유 있는 휴식시간이 주어졌다. 휴식이라 하지만 사실 그동안 밀린 빨래를 하느라 푹 쉬지도 못했다. 결혼 전에는 여행 갈 때 속옷과 티셔츠들을 최대한 많이 가져가서 갈아입고 귀국해서 빨았는데 결혼을 하니 아내가 짐을 최소화하라 명령하는 통에 이틀 정도 빨래를 안 하면 다음날 입을 옷이 없는 상황에 처해야 했다.
출국 전 받은 티셔츠에 먼지와 때가 가득하다. 아... 이런 고급진 티셔츠를 꼬깃꼬깃 손빨래를 해야 하다니...
빨래를 대강 마치고 잠시 침대에 몸을 뉘어본다. 이게 얼마만의 휴식인지... 그러나 곧 얼마 안 있어 이렇게 한번뿐인 시간을 계속 쉬어도 되나? 하는 불안함이 엄습한다. 휴식을 위해 여행을 와도 쉴 수 없는 나의 초상이여...
<좌로부터>
1.Chicken, beef and shrimps brochettes 치킨, 소고기, 새우 꼬치요리
2.Spaghetti aglio e olio : 알리오 올리오 스파게티
3.fruits Macedonia : 과일 디저트
저녁으로는 페루에 와서 처음으로 음식명을 알 수 있는 스파게티가 나왔다. 이게 뭐 대수라고 매번 생소한 이름의 음식들만 듣다가 익숙한 이름을 들으니 마음이 안정된다. 사람은 누구나 이렇게 익숙한 것, 변화를 싫어하는 동물일지 모른다. 그래서 트럼프가 미국 대통령이 되는 파격 이후 주가는 그렇게 춤추었나 보다. 여태까지 페루에서의 여정 중 가장 힘들었던 하루가 이렇게 끝나간다. 이런 평화로움이 여행 내내 계속됐으면 좋겠지만 블랙야크x페루 관광청은 하루 이상 당근을 제공하지 않는다...
[다음 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