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케로 <스토아 철학의 역설>
학부 전공이 정치학이다보니, 학부 때에는 어쩔 수 없이 정치 철학을 자주 접할 수 밖에 없었고, 그 덕에 (강제적이긴 하지만) 사유도 한층 깊어졌다. 학자들의 첨예한 논쟁을 구경하며, 삶이란 정치란 무엇인가 고민하게 되었고, 옛날이나 지금이나 인간이 겪는 문제는 변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됐달까. 지금 생각해봐도 전공으로 정치학을 선택한 것은 잘 한 일이다.
학부를 졸업하고, 현업 적응하느라 바빠 철학이든 고전이든 접할 기회가 자연스레 줄어들었다. 생각보다는 체험을 통해 얻는 것들이 많았고, 인문학 서적보다는 경영서적에 좀 더 관심을 갖게 되었다. 사유할 수 있는 시간은 점점 줄어들고, “성공”의 레플리카에 매몰된 순간들도 떠오른다. 왜 이렇게 성공에 대한 집착이 커진 것인가.
밀어뒀던, “왜”에 대한 질문이 수면 위로 떠오르기 시작했다. 나는 왜 이 일을 하는가. 내가 왜 이토록 현업에서 성공 경험을 쌓고 싶은지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이 머리를 어지럽히니, 이를 먼저 경험한 사상가들의 해석이 다시금 궁금해지고, 그리워졌다. 그런 시기에 적절하게 들린 곳이 철학서점 ‘소요서가’였다.
그곳에서 여러 책을 구경했다. 학부시절 나를 괴롭혔던 철학자들의 이름이 보이는 것도 왜이리 반가운지. 신기하게 고향에 온 기분이 들었다. 서가를 기웃거리다가 이내 눈에 띈 제목이 있었는데 바로, 키케로의 <스토아 철학의 역설>이었다. 스토아 철학 자체가 주창하는 바가 역설적이기에 키케로는 이에 대한 철학전 논변이 너무 냉정하면 대중은 이를 따분하게 여길지도 모른다며, 수사학과 연설문의 형태를 적절히 활용하여, 스토아 학파가 주창하는 진리를 쉽게(?) 설파했다.
스토아 철학의 역설 여섯가지는 아래와 같다.
-첫째 역설 : 오직 훌륭한 것만이 좋은 것이다.
-둘째 역설 : 덕은 행복을 위해 자족적인 것이다.
-셋째 역설 : 죄들도 동등하고 올바른 행위들도 동등하다.
-넷째 역설 : 어리석은 자는 모두 미쳐 있다.
-다섯째 역설 : 오직 현자만이 자유롭고, 모든 어리석은 자는 노예다.
-여섯째 역설 : 오직 현자만이 부자이다.
사실 이 책에서 내가 관심있게 본 부분은 역설 그 자체라기보다는 키케로가 이 역설을 얼마나 와닿게 서술하는지에 대한 것이었다. 진리를 천상계에서 인간계로 보내는 노력이었다. 결국 진리가 빛을 발하려면, 실천으로 이어지게끔 독려해야하는 것 아닌가. 실천과 유리된 진리는 이 얼마나 허무한가. 아 물론, 실제 키케로는 연설가로는 훌륭했지만 정치가로의 평가는 좋지 않았다. 이 점이 재밌었던 부분이었고.
근데 뭐 대중을 움직이는 연설을 했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훌륭한 업적 아닌가. 내가 아는 개념을 그 누구나 이해할 수 있도록 설명하는 것은 대단한 일이다. 그래서 글 잘 쓰는 사람, 말 잘하는 사람이 귀하지 않나. 물론 나는 아직 멀었지만 말이다. 반대로 잘 읽힌다고 잘 이해된다고 그게 또 진리라 할 수 있을까? 그건 또 아닌 것 같고. 어렵지만, 동시에 즐거운 사유의 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