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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심민경 Jun 25. 2024

내가 그럴 자격이 있는 사람일까

이런 의구심에 충분히 자격이 있다고 등 떠밀어줄 선배가 필요하다면

곧 다음 주면 트레바리 팀에 크루로 합류한 지 1년이 된다. 작년과 다른 점이 있다면, 작년 보다 좀 더 책임감을 갖게 되었다는 것. 리더가 되었다는 것. 리더라... 초등학교 5학년부터 고등학교 3학년까지, 학급 대표 자리를 빼먹은 적이 없던 나지만 어느 순간부턴지 내 앞에 타이틀이 붙으면 멋쩍어 도망가고 싶어졌다. 내가 그럴 자격이라도 되는지. 크든 작든 책임을 요하는 자리 앞에 울렁이기 일쑤였다. 그러나 아무리 피하려고 노력해도 늘어나는 연차에 맞는 성과를 내야 하는 상황에서는 원하든 원치 않든 책임을 지는 일을 할 수밖에 없는 것 같다. 이런 일들이 쌓이면, 더 큰일을 할 수 있는 기회에 더 가까워지니까.


2016년 5월에 첫 커리어를 시작했으니 가만있자, 직장인이 된 지 8년이 넘었다. 8년 동안 네 번의 이직을 하면서 내가 정신 차리며 사수했던 믿음이 있었으니, 지금은 진부한 클리셰가 되었지만 커리어는 정글짐이라는 말. 뭐가 됐든 내 쓰임이 필요한 곳으로 가야겠다는 마음으로 이직을 했다. 정말 당연하지만 과거의 직무 경험이 지금 일에 아주 큰 도움을 주고 있고, 가끔은 내가 이곳에 오기 위해 그 많은 경험이 필요했던 것일까 싶을 정도다. 다시는 스타트업으로 가지 않겠다고, 울며 다짐했던 시기도 있었는데 정신 차리고 보니 또 스타트업에서 꿈을 좇는 것을 보니, 나도 참 신기한 사람인 것 같다. 트레바리라는 멋진 팀의 일원인 점, 나를 성장시켜 준 과거 팀들에 문득 감사하다.


올 초 1월, 우리 회사 대표인 수영 님의 추천으로 우연히『선 넘은 여자들』을 앉은자리에서 단번에 읽었다. 홍콩과 싱가포르를 무대 삼아 활약하는 워킹맘이자 리더들의 이야기를 엮은 에세이다. 왜 나영석 PD가 강력 추천했는지 알 것 같았다. 12명의 저자의 스토리를 읽다가 나도 모르게 눈물이 글썽였던 대목도 있었고, 무엇보다 결혼으로, 나를 낳고 양육하느라 강제로 경력 단절이 된 엄마가 생각났다. 아빠와 사내 커플로 만나 결혼했지만, 회사 에이스였음에도 당시 풍토상 일찍이 퇴사하며 경력단절이 되었고, 아빠의 발령으로 연고도 없는 춘천이라는 낯선 곳에서 나를 키웠던 우리 엄마 (맘카페도 없던 시절, 엄마는 외로워서 외할머니와 통화하느라 시외전화비 10만 원이 나왔다고 한다.) 시대가 달라졌다, 좋아졌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아이를 키우며 커리어도 퀀텀 점프하는 여성의 수가 부족하다는 것을 실감한다. 그렇기 때문에 쩌렁쩌렁 목소리 내주는 여성 선배들이 있음에 다행이고 감사했달까.


정말 감사하게도 이 책을 읽고, 트레바리에서 내가 가진 문제의식을 조금이라도 해결해 볼 클럽을 개설하게 되었다. [선 넘은 여자들]이라는 클럽이고, 벌써 3회 차를 지나 4회 차를 바라보고 있다. 나와 비슷한 연차, 비슷한 고민을 하는 여성들이 한 곳에 모여, 누군가 고민을 토로하면 이를 미리 경험한 클럽장님이 과감히 해보라고 등 떠밀어주는 아름다운 장면을 보고 난 뒤, 더 판을 키워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트레바리 아지트에서 수용할 수 있는 인원보다 더 많은 사람들을 모아서 그들의 삶을 밀도 있게 응원하고 싶다는 생각을. 물론 요즘 같은 시대에 책과 영상을 통해 응원과 자극을 받는 게 어려운 일은 아니지만, 오프라인에서 주고받는 신묘한 에너지를 간과할 수는 없는 것 같다.


입사 1주년 3일 후인 7월 6일에 『선 넘은 여자들』의 저자 일곱 분을 모시고, 선을 넘어보라 채근하고 응원하는 이벤트를 한다. 물론 이 강연에 온다고 갑자기 성공시대 시작되는 것은 아닐 테지만, 기회라는 것은 사건이 있어야 계기가 있어야 생기는 것 같다. 실력은 매일의 근면함이 차곡차곡 쌓이는 형태지만, 기회는 내가 어떻게든 접점을 만들어야 생길 수 있는 것이니 말이다. 이번 행사를 기획하며 주니어에서 시니어로 건너가는 '중니어' 여성들을 많이 생각했다. 괜히 쓸데없는 고민이 많아지는 시기, 생애주기상 결혼과 출산 계획 까지도 슬슬 걱정하는 시기. 함께 일했던 동료들이 슬슬 떠나가고, 커리어 고민을 털어놓을 수 있는 사람들의 수가 줄어드는 시긴의 여성들을 아주 많이 생각했다. 이날 내가 생각한 여성들이 와서, 좋은 에너지를 많이 받아갔으면 좋겠다. 특히나 어떤 선택과 도전에 있어서, "나는 그럴 자격이 있어."라는 생각을 꼭 했으면.


신청은 트레바리에서 -> https://trevar.ink/OXBX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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