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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울 사는 로젠 Feb 07. 2024

11_부천 판타스틱 스튜디오

   ㅣ옛 종로거리에서 두 번째 작별ㅣ


   부천 판타스틱 스튜디오는 TV 드라마 <야인시대>를 촬영한 세트장이었다. 1930년대부터 80년대까지의 종로와 명동, 청계천 일대 등 서울 거리를 재현한 오픈 세트장이었다. 20년 전에는 가전 대리점이 동네마다 여러 군데 있었는데, <야인시대>가 방영되는 시간이면 대리점에서 틀어놓은 TV 앞에 퇴근길 아저씨들이 집에 가다 말고 진열장에 둘러서서 드라마를 보시곤 하셨다. 나는 야인시대는 관심이 없었으나 드라마의 배경 세트장은 관심이 갔다. 서울에서 가까운 곳에 그 시대를 본격적으로 재현해 놓은 곳은 부천 스튜디오뿐이었다. 야인시대가 끝나고 다른 시대극에서도 그 세트장이 자주 보였다.  소설가 이상이나 소설속의 구보가 거닐던 그때의 종로거리에 나도 들어가 보고 싶었다. 멀더가 두 번째 한국 체류를 마치고 다시 집으로 돌아갈 때가 되어 작별 여행처럼 같다. (내가 가보고 싶은 곳에 외국인을 데리고 간 것이다.) 우리 사이에 빼놓을 수 없는 화제_영화를 이야기하기에 딱 어울리는 장소이기도 하다.  

   큰 기대는 하지 않고 우리가 살아보지 못했던 시대의 종로 거리를 거닐며 기념사진이나 남길 생각이었는데, 엣 모습의 선술집과 식당이 실제로 장사를 하고 있었다. 멀더가 한국에서 선호했던 메뉴가 그날 거기 있었다.  멀더는 점심때 물냉면에 맥주 한잔마시는 것을 가장 좋하했다. 가끔 한국어 공부를 마치고 낡은 술집에서같이  뜯어먹던 해물파전까지. 그날 국숫집에 물냉면은 없어서 아쉬웠지만 대낮에 평상에 앉아 갓 부친 해물파전에 맥주 한잔이면 서울을 기억하기로 충분한 메뉴였다. 식당에서 음식을 주문하고 평상에서 먹는 건데, 모든 것이 정겨운 분위기였다. 계속 왔다 갔다 하면서 여러 가지를 날라야 하는 데도 멀더는 매우 즐거워 보였다.  

2007. 06

    

    우리가 앉은 평상은 널빤지 나무가 사이사이 틈이 있는 스타일이었다. 마루가 다 붙어있는 것보다 시원해 보이는 것은 좋았는데, 멀더의 젓가락이 삐끗! 하더니 하필이면 그 사이로 쏙 빠진 것이다. 해물파전을 젓가락으로 자르려다 그렇게 되었다. 손에서 빠져나가도 보통은 그냥 걸쳐지는 것이 맞는데 그 좁은 틈새로 정확하게 빠지다니! 너의 재주는 엄청나구나. 푸하핫! 멀더가 '아-씨' (욕이 아니고 그냥 앗! 이 한 번에 발음이 안되어서?) 하고 웃더니 국숫집에 가서 젓가락을 다시 받아왔다. 그렇게 젓가락으로 자르면서 먹어야 한다고 분명히 누구에게 들었나보다.  보통 이런 웃긴 일은 연달이 일어나는 듯. 또 젓가락을 빠트리자 더 크게 웃더니 국숫집으로 다시 가지러 갔는데 아예 수저통째로 들고 왔다. 그것은 젓가락을 다시 달라고 계속 올 것 같은 느낌을 받은 국숫집 아주머니의 센스 넘치는 배려 아닌가!



    우리가 간 날 소설가 박태원의 '구보씨'가 올라탔던 전차는 운행을 하지 않았고, 또 이상의 '나'가 올라가 '날자'를 외쳤던 회신백화점이 있는 곳으로는 들어갈 수 없었다. 당일 촬영이 있었다. (아마 1945 드라마인가) 그런 것은 나만의 개인적인 아쉬움이었고,  멀더는 자신의 비자가 노동자 비자라는 둥 혼자 말하고 혼자 계속 웃었다. 영자 신문사 계약직이면 일반 사무직으로 화이트 컬러인데 블루 컬러 비자를 받은 것이 재미있다는 뉘앙스였나? 그런데 그게 그렇게 웃긴가. 나는 멀더가 타향살이를 계속하면서 심신에 이상이 온 것 아닐까 싶었다. 주변에 유학을 다녀오거나 거기 가 있거나 하는 사람들이, 혼자 벽이나 천장 보고 얘기했다는 둥 외로움에 절어 기이한 행동들을 하게 된다는 얘기들을 흔하게 들었기 때문이다. 고향 떠나 한국에 와있는 외국 사람들도 마찬가지겠지.  

     멀더에게 한국이 어떤 의미인지 한 번도 물어본 적은 없지만, 언젠가 이메일에서 한국이 자신의 두 번째 고향(Second homeland)이라고 한 적은 있었다. 한국을 떠나게 되어도 1.5년이나 늦어도 2년마다 한국을 방문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 말은 그냥 하는 소리는 아니었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늦어도 2년 안에는 계속 계속 한국을 찾아오고 있으니까.  

      


       

       부천 판타스틱 스튜디오는 판타지처럼 존재했다 사라졌지만, 우리의 만남은 계속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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