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서울 사는 로젠 Dec 07. 2023

08_마지막 수업

  

오늘도 나는 I'm, today, as well,

에메랄드빛 하늘이 환히 내다 뵈는 writing a letter to you

우체국 창문 앞에 와서 너에게 편지를 쓴다. before the window of postoffice

showing the emerald-like sky          

_유치환 <행복>


ㅣ이제 시작인데 어딜 가ㅣ


    통영에서 마지막으로 청마문학관에 데려가니 멀더는 충렬사보다 백만 배는 더 좋아했고, 유치환의 시 <행복>의 내용을 알고 싶다고 했다. 그로부터 3주 후에, 내가 당시 알고 지내던 뉴욕 유학생 출신 영어 선생에게 영역을 부탁하여 알려 줬다. 뉴욕에서 대학을 다녔다는 영어 선생은 본인이 한국 사람인데 한국말을 너무 몰라서 한국어 사전을 많이 찾았다는 메모와 함께 영역해 주었다. 무려 20년 전 그의 번역 작품인 셈이다. (by Leo) 

    이 시의 영역을 보여줄 때까지 멀더와는 몇 주 동안 수업을 하지 못하였다. 3주 만에 다시 만난 그는 동남아 지역 취재를 다녀왔다면서 라오스 엽서 3장을 가져왔다. 아마 내가 엽서를 부탁했었던 것 같다. 그리고는 <행복> 시를 영어로 보더니 매우 좋아하며, 갑자기 귀국 날짜가 잡혔고, 우리 수업이 한 번쯤 남았다고 한다. 집에 돌아가야 한다는 말을 들었을 때 "이제 시작인데 어딜 가~"라고 내가 말했다. 멀더가 완전 처음 들어보는 말인데? 그런 얼굴로 "무슨 말이에요?" 라고 되물었지만 알려주지 않았다. 그 말이 무슨 뜻인지 알려줄 기분이 아니었다.... 착잡했다. 이제 한국어 공부를 본격적으로 시작할 순간인데 중단을 해야 한다니... 이제 나의 콩글리쉬와 멀더의 이상한 한국말을 서로 알아들을 수 있게 되었는데! 그가 나에게 복사해 준 한국어 교재는 아직 남아있었다. 그 다음 주 멀더는 마지막 수업을 외부에서 하면 안 될까요?라고 문자했다.      

   석 달 하고 보름, 약 100일간의 짧은 만남이었다. 나는 서울에서 만난 첫번째 외국인 학생과의 한국어 수업을 마감해야 했다. 그가 신문사와의 계약 기간이 끝나서 미국으로 돌아가야 할 시간이 온 것이다. 지금이야 아침저녁으로 혹은 하루종일도 실시간으로 메세지를 주고받을 수 있지만, 국제통화료가 워낙 비싸서 이메일 만이 부담 없는 연락수단이었던 시절 2003년. 그때 미국은 나에게 그저 멀고 먼 나라였다.

   

    서로의 언어와 그 속에 담겨있는 문화를 조금 눈치챌 듯한 순간에 만남이 끝났다. 이 친구가 한국을 떠나면 다시 한국어를 접할 기회가 있을까. 그런 생각을 해봤으나 실제적으로 '앞으로 어떻게 한국어를 공부할 것인가'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지는 않았다. 멀더가 한국에서 일을 하고 돈을 벌고 있었지만 신문사나 일상생활에서는 영어를 사용했다. 이제 어디서 한국어를 듣고 말할 일이 있을까 싶었다.

    마지막 만남이니 수업 후에 홍대 앞으로 이동했다. 차를 같이 마시고, 그리고 바람 부는 추운 거리에서 작별하는 일만 남았다. 그런데 저녁을 먹으러 홍대 근처에 가니 그 자리에 그가 다른 친구들도 불렀다. 둘 다 한국 사람이었으나 한 사람은 미국 교포였고 다른 한 사람은 한국에 사는 사람이었다. 이렇게 넷이서 저녁을 먹었다. 마지막 자리를 해야하는 사람이 많으니 경제적인 만남인가? 아마 이때부터였던 것 같다. 한국에 살지만 서로 만날 일이 없을 것 같은 전혀 다른 영역의 사람들을 외국인의 소개로 알게 되는 만남들이 생긴 것은. 


ㅣ다른 문화의 해석도 각자의 몫?ㅣ


    처음 만난 한국사람이자 멀더의 친구들 그리고 나는 각자의 차를 주문했다. 멀더가 주문한 홍차가 나오니까 나보고 한 모금 먹어볼래? ( Do you want a bite?)라고 물었다. (영어는 왜 항상 반말로 들릴까.) 옆에 있는 미국 교포라는 친구가 각자 마시 싶은 차를 시켰는데 왜 그걸 왜 물어보냐? 고 의아한 표정으로 멀더에게 물었다. (음...나는 영어로 말은 정확하게 못하는데 듣는 것은 잘 들린다 희한하게) 멀더는 즉시 답하지 않고 있는 그 짧은 순간에 내 머릿속에는 또 많은 질문들이 스쳐갔다. (우리는 뭐 언제난 쓰는 말인데다 한 모금 먹어볼래는 외국어에도 있는 말인데...) 

    멀더와 내가 아무런 대답을 안 하고 있으니, 자신이 혹여나 처음 만나는 사람에게 무례한 질문을 던진 것은 아닌지 '친구사이니까'라고 바로 덧붙였다. (오히려 그 덧붙인 말이 우리와는 다른 문화의 지점인 듯하다_) 나는 이 긴 말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머릿속에서 영어 문장을 만들고 있었다. 그러니까 나는 그때 그 홍차 그릇이 유난스러워서 쳐다봤을 뿐이었는데, 멀더는 내가 마셔보길 원했다고 판단한 것이었다.  멀더는 친구의 말에 아무런 답을 하지 않고 나에게 홍차를 조금 따라주었다. '그냥' 이러면서. 그도 설명하기 귀찮았던 것일까 아니면 정말 나와 이른바 마지막 티타임에 의미를 두었던 것일까.   

                                                                         



     11월 말이었는데 겨울 한 복판처럼 추웠다. 바람 부는 추운 거리에서 작별했다. 나는 영어가 짧고, 멀더는 한국어로 말하고 싶었겠지만 그냥 짧게 반포옹하고 말았다. 언어의 문제를 떠나 멀더나 나나 신파(?) 스타일은 아니었다. 멀더가 나를 만나는 내내 나더러 한국 사람 같지 않다고 한 의미가 그런 건지는 모르겠으나 다음 주에 다시 볼 사이처럼 작별했다.


  



그리운 이여 그러면 안녕!

my longed one, than, farewell!






 

매거진의 이전글 07_노을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