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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청년뷰 Nov 10. 2016

상암동 대나무숲

"청년들은 목소리를 내지 않아."
목소리를 내지 못하거나 문제제기를 하지 못하는 게 아닙니다.
한 번도 우리의 이야기를 누군가 제대로 들어준다거나,
우리의 목소리로 무엇인가 해결되는 경험을 하지 못해서입니다.
그래서 들어보려합니다.
청년view가 만난 우리들의 목소리, 거리에서 만난 이야기를 소개합니다.


상암의 저녁엔 늦게까지 일하는 직장인들, 오후 아르바이트를 마치고 집으로 향하는 사람들, 셔틀을 타고 이제야 퇴근하는 사람들 그리고 근처에서 늦은 약속을 함께 하기로 하는 사람들이 뒤섞여 거리를 채우고 있었다. 


우리는 사회의 관습 때문에 하지 못했던 말을 듣고자 팻말을 준비했다. 거리의 사람들은 늦게까지 커피를 쥐고, 발길을 재촉하며 말했다. “아직 퇴근을 못해서” 혹은 “야근하느라.” 늦은 시간이지만 그들이 돌아갈 곳은 휴식처가 아닌 일터였다. 고단한 상암동의 청년들에게 그들이 정말 하고 싶었지만, ‘하지 못한 말’을 들어 보았다. 상암동 대나무숲이 개장했다.


주말 있는 삶을 살기로 했니?



주말출근에 야근까지, 해도 해도 끝이 없는 업무에 지친 A씨는 그나마 업무가 줄어든 요 근래 주말에 쉴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녀의 주말계획을 들은 회사선배가 비꼬며 말했다. “주말 있는 삶을 살기로 했니?” A씨는 선배의 말에 순간 숨이 막히는 기분이 들었다. “당연하죠!”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턱 끝까지 차오르는 그 말을 뒤로 한 채 사람 좋은 웃음만 옅게 띄우는 게 최선이었다.      


언제부턴가 우리 사회에서 ‘정시퇴근’이라는 말보다 ‘칼퇴근’이라는 말이 더 일상적으로 쓰이게 되었다. ‘칼퇴근’이라는 말은 마치 근무 시간이 끝났을 때 정상적으로 퇴근하는 것이 마치 하나도 양보하지 않고 ‘칼 같이’ 퇴근해버리는 이기적인 행동인 것처럼 프레임을 씌운다.     



벌써부터 돈을 밝히고 그래



B씨는 22살, 사회초년생이다. 6개월 가량 카페에서 오후 파트타임으로 일해 왔다. 그리고 6개월째 되던 날에 그간 제대로 임금을 못 받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사장의 한 마디 덕분이었다.

 

“이번 주에 노동청에서 뭐 이것저것 확인하러 올 텐데, 주휴수당 받는다고 말하고 그래. 알았지?”     


‘주휴수당? 그게 뭐지?’ 처음 듣는 말이었다. 사장은 B씨에게 선심 쓴다는 식으로 이번 달은 주휴수당*을 챙겨주겠다며 조만간 노동청에서 사람이 나오기 전에 근로계약서를 다시 작성하자고 했다. 그는 집으로 돌아가 인터넷에서 주휴수당을 검색했고, 왜 그렇게 사장이 신신당부하며 노동청 이야기를 했는지 알게 되었다.       


* 주휴수당: 근로기준법상 1주일 동안 소정의 근로일수를 개근하면 지급되는 유급휴일에 대한 수당을 말한다. 1주일에 15시간 이상을 일하면 주휴수당을 받을 수 있다. 주·휴일에는 일을 하지 않아도 1일분의 임금을 추가로 지급받을 수 있는 것. (출처 : 한경 경제용어사전)     


그는 다음 날 출근을 하여 그동안 밀린 주휴수당을 지급해 달라고 요구했다. 그러자 사장은 몹시 불편하단 기색으로 말했다.      


“●●씨 그렇게 안 봤는데 정말 순진한 척 하면서 받아 갈 거 다 받아 가려고 그러네?”


B씨는 사장님이 “잘못됐다”고 말하고 싶었다. 아주 당연한 권리를 찾고 싶었을 뿐이다. 그리고 그날 B씨는 아르바이트 구직사이트에 B씨의 근무시간에 사람을 구한다는 구인공고를 보게 되었다.     



네가 떠나면 번거로워져   



C씨는 학생들과 교수님 사이의 다리역할이 되어주는 조교다. 스물셋이기 때문에 재학생 중에는 자신보다 나이가 많은 사람들도 여럿 있다. 시도 때도 없이, 심지어 새벽 2시에도 학생에게 문자가 오기도 한다. “조교님, 죄송한데 연습실 좀 대여 가능할까요?” 학생들은 그가 학교 근처에서 자취하는 것을 알고 있다. 그는 새벽에 자취방에서 나와 사무실로 들어가 자신의 이름으로 연습실을 대여한다. 


그가 상암에 온 이유는 음악방송을 구경하기 위해서다. 사실 그에게는 얼마 전부터 음악방송 프로듀서라는 가슴 벅찬 꿈이 생겼다. 그는 조심스레 교수님께 그 꿈을 말씀드렸다. 조교이기에 앞서서 자신의 선생님이기도 한 교수님이 그 꿈에 대해서 어떻게 이야기해주실지 기대감을 가지고.      


“그냥 지금 조교 일에 집중하자. 네가 떠나면 번거로워져.” 


청년들에게는 평범한 꿈 말고 ‘제대로 된, 자신만의 꿈’을 가지라는 주문이 주어진다. 그러나 막상 다른 일을 하고 있는 누군가가 진짜 꿈을 찾아보겠다며 나서면, “네 주제에 무슨”, “지금 하는 일이나 잘해라”, “네가 어떻게 나에게 이럴 수 있느냐”, “다른 일 하면 잘 될 것 같으냐” 온갖 말로 만류가 들어온다. 교수에게 조교를 그만두지 말 것을 요구 받았다는 C씨는 거듭 자신의 신상이 노출되지 않을지를 걱정했다. 



나 때는 돌도 씹어 먹었어    



30대 직장인 D씨는 직장 상사에게 몸이 안 좋다고 이야기했다가 “젊은 사람이 왜 아파?”, “나 때는 돌도 씹어 먹었어” 라는 말을 들었다. 아픈 것조차 눈치를 보게 만드는 사회의 시선이 그녀를 괴롭히고 있었다. 아프다는 말로 그녀가 원한 것은 대단한 것이 아니었다. 먼저 집에 가겠다거나, 잠깐 누워서 쉬겠다는 것도 아니었다. 주위 사람들로부터 위로 받을 따뜻한 말 한 마디면 됐는데, 주위의 시선은 따가웠다. 위로는 커녕 그녀의 상사는 비아냥거리며 핀잔을 주었다.      


청년이 주는 젊고 건장한 이미지가 청년들에게 항상 긍정적으로 작용하는 것은 아니다. 청년이라는 이유로 한 사람의 특성과, 개인의 다양성이 무시되는 사회에서 때로는 ‘청년스러워야 하는 것’이 청년들에게 큰 어려움으로 작용하기도 한다. 살면서 한 번쯤은 학교선배나 직장상사로부터 ‘내가 너 때는 안 그랬었는데...’,‘돌도 씹어 먹을 나이에~’ 와 같은 말을 듣게 된다. 우리 사회가 바라는 청년들의 모습은 어떤 모습인가? 자신의 아픔을 말하는 것조차 타인을 위해서 참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일까? 아니면 아프다는 말을 꺼내기도 힘든 수준까지 고통을 참아가며 꿋꿋이 일하기를 바라는 것일까?



△△씨는 왜 결혼 안 해?



“결혼 왜 안 해?”, “결혼 언제 해?” 부장님의 질문 공세가 이어진다. 분노가 치밀어 오른다. 하지만 겉으로 티낼 수는 없다. 직장인이니까. E씨는 부장님을 비롯한 직장동료들의 지나친 관심에 몸 둘 바를 모른다. 물론, 악의에서 하신 말이 아닌 걸 안다. 하지만, 주위에서 여자는 빨리 결혼을 해야 한다는 말들에 드는 압박감은 왠지 모르게 떨쳐내기 힘들다. 오늘도 “결혼 언제 해?” 라고 묻는 부장님께 “부장님 같은 남자 만날까봐요” 라고 통쾌하게 말하고 싶다.  



몸무게가 어떻게 돼?



F씨는 점심시간에 밥 먹을 때면 은근히 눈치가 보인다. 지난 번, 직장 동료가 한 말이 신경 쓰여서다. “몸무게가 몇이야?” 직장동료의 말에 밥맛이 뚝 떨어진다. ‘아니, 맛있는 음식을 맛있게 먹는 게 잘못된 건가?’ 라고 생각했지만 그래도 신경이 쓰여서 맨날 다이어트 생각이 든다. 그런데, 왜 여자의 몸무게는 항상 관심의 대상인 것일까? 여자는 많이 먹으면 안 되고, 살찌면 안 되는 것일까? 그녀는 ‘그만 관심 좀 가져’ 라고 말하고 싶다.



청정넷-기자단 청년view [사회밖청년들] 인터뷰 연재
: 글/사진. 김도윤, 맹진규, 이주형, 최유정
: 편집. 김선기 (fermata@goham20.com)
: 문의. 이성휘(seoulyouth2014@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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