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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미성 Jan 03. 2017

열쇠 맡은 자의 품격

국회 청소노동자 직접고용 소식에 부쳐

2009년 겨울부터 이듬해까지 국회에서 "해외도시개발 정책연구" 관련 조찬모임이 잦았다. 어느 날은 의원실 비서진의 실수로 의원회관 회의실 공지는 되었으나 국회사무처에 예약이 안되어서 절차를 밟느라 문 앞에 서서 기다린 일이 있었다.


문제의 회의실 앞 복도에 우르르 기다리던 중 마침 국회 청소근로자 아주머니 한 분이 청소를 마치시고 나와 우리가 보는 앞에서 '철컥'하고 거대한 열쇠 꾸러미로 회의실 문을 잠그셨다.

세미나를 위해 문 앞에 서있던 우리는 그 아주머니에게 사정을 말씀드리고 잠시 다시 문을 열어주십사 부탁을 드렸다.

그러자 그분은 난처해하셨지만 단호하게 거절을 하셨다.

"이 열쇠는 청소를 하기 위해 쓰는 열쇠이지 이렇게 아무 부탁이나 받고 열어주라는 열쇠가 아니다"라며.

정부부처의 공직자와 교수님들 보좌관들의 간곡한 부탁에도 미동도 없이 무심한(죄송하지만 아니 되올시다 하는) 표정으로 거대한 열쇠 꾸러미를 철컹거리며 묵묵히 잠긴 문 앞부터 복도를 닦으며 청소만 하셨다.


국회사무처를 통해 절차를 밟아 회의실 사용 승인을 서둘러 받은 후 담당 직원이 열쇠를 들고 달려와 회의실 문을 열어주었고 문 앞에서 기다리던 열댓 명의 자문위원들이 그제야 비로소 들어갈 수 있었다.


이날 나는 청소근로자 아주머니에게서 실로 아름다운 권위를 느꼈다.

'청소하라고 맡겨진 열쇠'의 소임에 충성하는 자세.

'목적이 아닌 데에 내주지 않는 열쇠'를 맡은 자의 자격.

이 분에게 맡겨진 열쇠는 그야말로 정직하고 안전한 권위에 완전한 소임을 다하고 있었다.


우리는 얼마나 우리에게 맡겨진 열쇠를 목적에 맞게 사용하고 있는 걸까. 자문을 하라고 제공된 정보를 치부에 이용한다든지, 행정을 하라고 제공된 지위를 정치적 발판으로 이용한다든지, 역할보다는 위세를 과시하는 데 익숙한 숱한 감투들, 지인이 실세가 되고 절차와 규칙이 혼돈되는 령들, 위기상황 생명을 살려야 할 그 짧은 골든타임 소통의 순간에도 vip심기를 경호하며 보고하려고 영상을 확보하는데 급급한 어느 먼 나라 통신의 기록들...


철컹 소리를 내며 멀어져 가는 이 아주머니가 내겐 오래 스승처럼 존재했다.


이 날 이후 나도 이 아주머니처럼 처한 상황, 맡겨진 권한에 대한 책임, 주어진 예산의 온전한 목적에 더 명료하려고 노력하게 되었다.

그분은 내게 생활 속 '충성'을 몸소 가르쳐 주신 흔한 '의인'이었다.


오늘 국회에서 반가운 소식이 들렸다.

7년 전 내게 묵직한 울림을 주셨던 그 충성스러운 아주머니가 원래 있으셨던 '출입의 자격'을 뒤늦게나마 '쯩(!)'으로 인정받으신 이분들 중에 꼭 계셨으면 좋겠다. 진심으로 존경과 축하를 드리고 싶다.

새로 받은 국회 출입증을 바라보는 청소노동자 <2017년 1월 2일 한국일보 보도>

사람이 마땅히 우리를 그리스도의 일꾼이요 하나님의 비밀을 맡은 자로 여길지어다

그리고 맡은 자들에게 구할 것은 충성이니라

[고전 4: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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