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필을 깎으며 생각하다
몇 해 전 유쾌한 친구로부터 선물 받은 낡은 연필깎이가 있다.
다양한 크기의 동그란 구멍 중 연필에 맞는 구멍에 연필을 꽂아 손잡이를 잡고 돌리면 뭉뚝했던 연필심은 제법 쓸 만하게 뾰족해진다.
나는 이 연필을 깎을 때 사각사각하며 나는 소리가 참 좋다.
마음이 뭉뚝해져있다고 느껴지는 날이면 묵은 연필 예닐곱 자루를 꺼내 이 연필깎이의 먼지를 닦아내고 핸드드립 커피를 내리듯 정성 들여 연필을 깎고는 한다.
뾰족한 연필심으로 세밀한 글씨며 그림을 끄적이다가 우리의 대화도 이처럼 분명하게 쓰이는 잘 깎인 연필 같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는 수많은 대화들을 하며 만난다.
아침에 일어나 가족과, 일터로 나가 파트너들과, 친구들과 또는 집 앞 편의점의 친절한 아르바이트생과 다양한 의사소통을 하는 대화의 연속으로 하루가 채워진다.
의사소통에는 다섯 단계의 레벨이 있다고 한다.
첫 번째 ‘인지의 대화’,
즉 “안녕하세요?”, “오셨군요!” 등의 ‘당신의 존재를 인지합니다.’라는 일상적인 소통의 관계다.
두 번째 ‘정보의 대화’,
가령 “하늘이 맑군요.”, “점심 뭐 먹었어?”, “내일 휴강입니다.” 등의 팩트를 주고받는 소통이다.
여기까지는 대부분의 마주치는 사람들과의 기초적 – 어쩌면 동물적 커뮤니케이션일 것이다.
세 번째 ‘지성의 대화’,
“이번 정부 정책은 양극화 해소에 도움이 되겠어.”, “너에겐 지금 자기개발서보다는 시집을 읽는 게 낫다고 생각해.” 등의 생각을 소통하는 단계.
즉 서로의 지성을 동원하여 집단 지식으로 협력하는 소통의 관계다.
네 번째 “네가 날 기억해줘서 난 너무 행복해.”, “오늘같이 비가 오면 괜히 우울해져.”, “보고 싶었어.” 등의 ‘감정의 대화’이다.
이러한 감정까지 나누는 사이라면 친구 관계라 볼 수 있다.
마지막 최고의 레벨이 ‘영적인 대화’ - 기도 중에 든 생각들, 하나님께서 부어주시는 마음이라 생각되는 지혜들, 뜬금없이 하게 되는 은유와 상징에 대한 이야기들.
즉 성령님의 개입으로 이뤄지는 영에 속한 대화라면 예수님의 제자들 사이에 흔히 경험하는 대화일 것이다.
영적인 대화에 앞서 우리는 3단계 ‘지식의 대화’ 관계에서 4단계 ‘감정의 대화’ 관계로 넘어가기가 그리 쉽지 않아 보인다. 감정을 드러내고 살피며 만져주는 관계란 꽤 긴 호흡과 기다림이 필요한데 그 침묵의 시간, 다름을 인정하고 서로의 간격을 유지해주는 안정을 갖기에 우리는 너무 일방적이거나 조급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러한 친구를 만나고, 사귀는 것은 나도 또한 그러한 사람으로 성장하게 되는 기적 같은 선물이다.
1972년 감옥에 갇힌 20년 만에 주님 앞에 부르심을 받은 중국의 전도자 위치만 니는 그의 저서 “하나님이 쓰시는 사람들의 특징”이라는 책을 통해 “하나님의 사역자로 쓰임을 받을 사람이라면 다른 사람의 말을 잘 들어야 한다.”라고 강조한다.
먼저 ‘그 사람이 하는 말’을 정확히 잘 들을 것,
그리고 ‘그 사람이 하지 않는 말’을 들을 것,
마지막으로 ‘그 사람의 영이 하는 말’을 잘 들을 것을 강조했다.
즉 ‘듣지 않고는 대화할 수 없다’며 듣는 이로서의 기본자세를 강조한 것인데 이 글을 읽으며 충격을 받았었다.
그동안 참으로 나는 미리 할 말을 입 속에 담아두고 상대의 말 중 내가 걸고 싶은 말을 기다렸다가 대꾸를 해왔던 버릇을 깨닫게 되었기 때문이다.
인정하기 싫지만 그동안 나는 상대와 듣기 위한 대화가 아니라 내가 하고 싶은 말만 해 온 셈이었다.
워치만 니의 이러한 통찰은 감옥 속 고요한 가운데 주님의 음성을 듣기 시작하며 비로소 깨닫게 된 것일까? 그는 자신의 편견이나 고집이 상대방의 말을 가로막아 방해하지 않을 때에야 그의 말을 온전하게 들을 수 있다는 것과, 온전하게 들어야만 성령님께서 동시에 하시는 말씀도 함께 들을 수 있다는 것을 깨닫고 일러주고 있다.
오늘 만나고 통화한, 또 카톡을, 문자와 메일을 주고받은 분들이 떠오른다.
그들로부터 나는 듣기 위해 얼마나 집중했을까. 참 부끄러운 것은 진심으로 들으려는 태도는 내 안에 그들을 진정으로 사랑하는 마음이 없이는 결코 가질 수 없다는 사실이다.
연필을 깎을 때에도 각 연필에 맞는 구멍에 꽂아 꼭 맞춘 상태에서 깎아야 흔들리지 않고 연필심이 안전하게 보호되듯, 그의 말을 온전하게 듣기 위해서는 내 인식과 진심을 오롯이 그의 생각과 감정에 집중해야 하며, 그래야 우리의 대화가 방해받지 않고 세밀해질 수 있을 터이다.
이 낡은 연필깎이는 레버를 돌리면 제법 바닥에 압착이 되어 웬만해서는 흔들리지 않고 묵직하게 잘만 깎아낸다. 한 자루씩만 품은 채 요동치 않고, 깎아주고, 그 속의 심지가 또렷해져 드디어 진하게 이야기할 수 있도록 사각사각 들어주는 묵직한 벗이여...
만약 대화에도 기술이 있다면 나도 이 투박한 연필깎이처럼 성령님께 압착되어 경청할 수 있는 정교한 기술을 갖고 싶다.
늘 나의 뭉뚝한 말을 경청해주는 고마운 분이 있다.
문득 그분께 영문 모를 연필깎이를 선물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