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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미성 Feb 13. 2018

첫사랑이 너인 걸

20년 후 깨닫는다는 건 슬픈 일이다.

1.

첫사랑이 너인 걸
20년 후 깨닫는다는 건 슬픈 일이다.

고백하기에 이미 지나쳤고,
추억하기엔 아직 못미쳤다.

이렇게 스스로 알아채지 못해 미결인 사랑은 날마다 짙멀어져 가는데,


다행인건 오늘이 너와
그래도 가장 가깝다.

그래서 매일,

가장 멀리, 또 가까이를 서성이며

사소하게 후회를 한다.



2.

내 이름의 여인숙을 우두커니 발견한 날

페미니즘 영화 강의를 들어가려다 말고

사진을 찍게 되었다.


저 안의 이름모를

나그네, 혹은 연인의

구원을 기도하는 마음이었다.


실상은

나의 사랑과 구원을

기도한 것인지도 모른다.


빌딩 주차장 아저씨가

뭐 좋은 게 있냐고

물어보실 때


저 여인숙 이름이

제 이름이예요.


그때 나는 깨달았다.

내가 저들 나그네처럼 낯선 골목에 서있다는 걸.



3.

네가 꿈에 나타난 오늘,

그저 바라보기만 하던,

네가 종일 그리울 줄 몰랐다.


왜 이제서야


처음으로 그립다고 느낀

오롯한 하루를

보낸 것이냐.

지난 눈빛을 알아차렸단 말이냐.


그래서 알게 되었다.


내 눈에서 내 마음까지

내 귀에서 내 마음까지

내 안에

달팽이처럼 고단하고 지루하게 느린 길이 있다는 걸.



4.

마치

달팽이가 지나온 터널처럼,

이 길은 뚫리고 말았다.


네가 나를 바라본 그 눈빛, 내가 오래걸려 알아챈 그 눈

빛.


이제

섬광처럼 단숨에 다닐 길이 되었다.


다시 먼, 또 가까운 훗날

다른, 또 같은 너와 마주친다면


20년 보다 훨씬

빨리 닿을 수 있겠다.



5.

내 남루한 시절이

연습이라 하기에는 죄송하므로


네게 공유되었거나, 생략되었기를.

아니면 숙련되었거나.


나, 네게로 갈까,

너, 내게로 올까.


몽롱함과 영롱함의 차이,

혼미인지 감격인지.

그 차이를 밝히는 선명한 조망이 있는 길.


다만

넌 나의 눈빛을 단숨에 알아주기를.


이 낯익은 새 길이

네게서 창조되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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