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업의 생성과 소멸
우리나라의 직업 개수는 몇 개나 될까?
2015년 말 기준으로, 한국 직업 사전에 등재된 직업은 총 11.927개다.
처음 직업 사전이 발간되었던 1969년에 직업명 수가 3천여 개 정도였던 것에 비하면, 직업의 수가 정말 많이 증가했음을 알 수 있다. 실제로는 존재하는 직업이지만, 직업 사전에 등재되지 않은 틈새직업이나 신직업들을 생각한다면, 실질적인 직업의 수는 더 많을 것이다.
직업의 수가 변하는 이유는, 직업이 생성되고 소멸되기 때문이다. 필요에 따라서 새로운 직업이 생겨나기도 하고, 있던 직업이 사라지기도 한다.
그렇다면, 새로운 직업을 만드는 사람은 누구일까?
직업은 어떻게 만들어지는 것일까?
전화 교환원, 버스 안내원, 인력거꾼
과거에는 많은 사람들이 종사하던 널리 알려진 직업이었으나, 지금은 사라진 직업이다.
왜? 사라졌을까?
그 일이 더 이상 필요하지 않기 때문이다.
직업이란 제품이나 서비스를 사회(시장)에 공급하고, 그것을 통해 소득이 발생하는 것을 기본 조건으로 한다.
통신 기술이 발달하여, 지금은 교환원 없이 전화가 가능하다. 자동차의 보급으로, 사람들은 더 이상 인력거를 타지 않는다. 버스 요금 자동수납 시스템이 개발되고, 음성 안내가 시작되면서 버스 운행을 위해 버스 안내원이 해야 할 일은 없어졌다. 버스 안내원은 더 이상 존재 가치가 없는 직업이 되어버렸다.
웨딩플래너, 프로게이머, 바리스타
우리나라에 처음 등장한 지, 채 20년이 지나지 않는 직업들이다.
"웨딩플래너"는 한국능률협회 직업 전환센터에서 만들어낸 직업이다. IMF 이후 실직한 남편들을 대신해 일자리를 찾는 주부들이 많아지면서, 주부들의 인생 경험을 살려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일까에 초점을 두고 탐색한 끝에 , 외국의 직업 사례를 참고하여 웨딩플래너라는 직업을 만들었다. 교육 과정을 개설하고, 자격증을 만들고, 양성된 웨딩플래너를 배출하여 웨딩 시장에 보급하여, 현재는 전국적으로 수천 명의 웨딩플래너가 활동하고 있다.
웨딩플래너라는 직업을 만들 수 있었던 것은, "결혼 절차의 대행"이라는 새로운 시장을 발견하고, 시장을 개척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었다.
결혼을 하려면 신경 써야 할 것들이 많다. 결혼식과 하객 접대, 신혼여행, 혼수 구입과 신혼집까지 다양한 일들을 해야 한다. 이런 일들의 절차나 예산, 스케줄 관리 등 결혼에 관려된 전반적인 일들을 대행하거나 도움을 주는 것이 웨딩플래너의 역할이다. 과거에는 이런 일들을 개인이 알아서 했지만, 직장생활을 하는 신랑, 신부는 비용을 지불하고서라도 이런 복잡한 과정을 대행하는 서비스를 필요로 했고, 그런 필요를 인식하여 틈새시장을 공략한 것이 바로 웨딩플래너이다.
우리나라에 "프로게이머"라는 직업이 처음 소개된 것은 1998년이다. 한국인 최초로 블리자드사의 공식 게임 대회에서 우승한 신주영 씨가 "국내 1호 프로게이머"라는 타이틀을 달게 된 것이 프로게이머의 시초이다. 이 후로 이기석, 임요한, 홍진호 등의 유명 프로게이머가 배출되면서, 한 때 청소년들이 선망하는 직업 중 하나로 꼽히기도 했었다. 프로게이머는 "컴퓨터 네트워크에서 벌어지는 게임대회에 출전하는 사람"으로 소개된다. 과거에는 "게임을 하는 것"이 직업이 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지 못했다. 그러나 게임 문화 확산과 e-스포츠가 스포츠의 한 영역으로 인정받으면서 게임을 하는 것도 직업이 되었다. 스포츠 경기를 관람하듯이 게임 경기를 관람하는 시장이 생겨났기 때문에 생겨난 변화이다.
"바리스타"는 TV에 많이 등장하면서 이제는 우리에게도 익숙한 직업이다. 그래서, 원래 있었던 거 아냐?? 싶겠지만, 바리스타라는 명칭이 처음 사용된 것은 2007년이다. 드라마 커피프린스 1호점에서 주인공의 직업으로 커피 만드는 바리스타가 등장했고, 2008년 직업 사전에 등재되면서 바리스타의 수가 급속도로 증가하였다. 우리나라 바리스타 1호로 불리는 이동진 씨는 외국 유학시절 알게 된 바리스타라는 직업을 우리나라에 소개하고, 직업을 보급하는데 큰 역할을 하였다. 지금은 관련 자격증도 생기고, 대학에 바리스타 학과가 개설되기도 하였다. 2016년 현재는 직, 간접적으로 커피 관련 직업에 종사하는 사람이 18만 명에 이른다고 한다.
직업은 생겨나기도 하고, 소멸되기도 한다.
직업의 생성과 발전, 쇠퇴와 소멸을 이끄는 것은 시장의 수요다. 시장이 있으면 직업은 생겨난다. 시간을 절약하고, 복잡한 절차를 대행하려는 소비자의 필요성에서 시작된 웨딩 플래너, 게임 문화의 확산에서 시작된 프로게이머, 커피 시장의 확대에서 시작된 바리스타, 모두 시장의 필요에 의해 생겨난 직업들이다.
제품이나 서비스를 공급할 수 있는 "일거리"가 생긴다면, 그 "일거리"를 바탕으로 "새로운 일자리"가 생긴다. 즉, 새로운 직업이 생길 수 있는 것이다. 위의 사례들에서 보는 것처럼 웨딩 플래너, 프로게이머, 바리스타는 과거에 없었던, 새로 만들어진 직업이다.
직업은 특별한 누군가에 의해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창직은, 웨딩플래너처럼 기관 또는 정부의 주도로 의도적으로 이루어지는 경우도 있고, 프로게이머처럼 사회, 문화의 변화에 따라 자연스럽게 이루어지는 경우도 있다. 바라스타처럼 개인이 외국의 사례를 국내로 들여와 이루어지는 경우도 있다.
기관도, 정부도, 개인도... 시장을 발견한 누구도 "창직"의 주인공이 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