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슬랜드 - 달빛속에 걷는 설원(2)
첫날 밤늦게까지 길을 달려 에그리스타디르(EGLLISTATHIR)라는 큰 도시까지 10세기 중세 유럽을 침입한
스칸디나비아 바이킹족처럼 치고 들어 갔다. 무모한 도전이었다. 전륜구동이지만 작은 차로 동북쪽 지역의 산세도 모르고 기온이 어느 정도 떨어지는 지도 모르고 도전하는 것이 지략도 없이 도끼 한자루믿고 힘으로 적들을 부서버리는 바이킹족들의 전투 방법과 유사하다고나 할까. 지금은 따뜻한 집에 앉아 여행기를 쓰고 있지만 특히 지도에 표시된 검은선은 이번 여행에서 가장 치열하고 지루하고 무서웠고 자칫하면 귀중하지도 않은 목숨까지 담보로 잡힐 수 있는 그런 코스였다. 저 검은 선중에서도 45킬로미터가 산맥을 통과하는 비포장도로인데 현지인의 지름길이란 말을 듣고 그리로 접어 들었다. 그렇지 않으면 빙둘러 가야 한다는데 지금 생각해 보니 둘러 가더라도 좋은 길로 갔더라면 이런 복기는하지 않을텐데.
저 커다란 빙하지역은 해가 져서 보지도 못하고 계속 운전만 하고 가는데 마주 오는 차도 뒤따라 오는 차도 없다. 한시간에 차 한대 정도가 서로 마추쳐 지나가고 차가운 겨울 바람은 승냥이 울음 소리처럼 웅웅거리고
좌우로 민가나 촌락의 불빛도 없다. 이런걸 칠흙같은 어둠이라고 하던데. 간혹 3/4으로 이그러진 초생달만 희미하게 먼길을 밝혀 주는데 적막산중에 길만 하나 딸랑 놓여 있고 좌우로는 새까만 커튼으로 쳐저 있어 헤드라이트 불빛이 닿는데에만 영상이 보이는데 깊은 산속 영화관에서 길만 보여주는 재미없는 한편의 영화를 보고 있는 것 같다.
이런 현실감을 생생하게 전해주기 위해서 고개넘어갈 때 똑딱이로 차안에서 한컷했는데 길은 눈이 치워져 있는데 양쪽에는 전부 눈구덩이다. 자칫 잘못해서 저 구덩이로 차가 빠져 버리면 차안에서 누가 지나갈 때까지 꼼짝없이 갇혀 있어야 한다. 비포장도로라 빨리 달릴수도 없고 얄팍한 차바퀴를 생각해서 시속 20킬로로 서행하니 거의 두시간을 산속에서 보낸 셈이다. 한번은 고개가 가팔라 차가 조금 미끌어지길래 차를 세우고 나가서 길을 보니 길위에 모래와 흙등이 뿌려져 있는데 그 밑에는 얼음판이다. 겨우 가파른 고갯길도 넘어 서고 천천히 달리니 머리 속에는 만가지 잡생각이 다 떠오른다.
전설의 고향에 단골로 등장하는 소복녀와 어릴적에 보았던 한국 초유의 공포영화 “월하의 공동묘지”, 흑백공포영화 “살인마” 등 이런 공포심을 유발시키는 영상들이 자연스럽게 앞뒤로 왔다 갔다 한다. 안피우던 담배도 한 대 피워보고 해도 그런것들을 지울 수는 없다. 조금 더 지나니 길 양편에 길 표지판으로 2-3미터 간격으로 세워 놓은 말뚝에 칠해논 하얀 야광 페인트가 헤드라이트 불빛을 받으면 하얗게 빛나는데 그게 머리없는 난쟁이 소복녀처럼 다가 오는데 진짜 이럴때 누가 갑자기 길 가운데로 뛰어 들면 십중팔구는 기절초풍할 것 같았다. 산길을 내려 갈 때는 저만치 헤드라이트 비치는 부분까지 길 표지판이 보이는데 꼬불꼬불한 것이 구절양장(곱창)이다. 내가 두 시간동안 산속에서 운전할 때 이런 무서움보다도 더 무섭게 상상한 것은 다른 두 가지다. 첫째, 차바퀴가 터지면 어떻게 하나? 둘째, 갑자기 차시동이 꺼지거나 엔진에 문제가 생겨 히터가 나오지 않으면 어떻게 하나? 다행히 여기서는 그런 문제는 생기지 않았는데 차바퀴는 마지막 날 기대한대로 문제가 생기더라. 두시간동안의 공포심, 기우, 배고픔, 피곤함을 극복하고 산아래로 내려와 저멀리 보이는 도시의 희미한 불빛을 보니 구조선을 만난 로빈슨 크루소의 웃음소리와 찌는 사막길을 건너 푸른 오아시스를 찾은 캐라반의 환호성같이 나도 기다란 안도의 숨을 여러번 토했다. 늦게 호텔을 찾아 지친 하루를 늦은 봄눈을 햇살에 녹이듯 말끔이 씻어 버렸다.
아침에 일어나 호텔 창밖으로 바라보니 눈들이 가득하고 길도 거의 빙판길이다.
해가 떠 있는건지 구름속에서 자고 있는 건지 하늘만 붉게 물들이고 가로등만 고개숙여 길을 밝히고 있다.
호텔 뒷 산등성이로 겨우 겨우 밝아오는 아침이다. 이곳의 하늘색이 시시각각으로 변한다.
아침빵을 호텔에서 엄청 단단하게 먹고 둘째날 달린 길이 노란색인데 진하게 칠해논 지역이 아이슬랜드 겨울경치의 백미다. 처음에는 나혼자 그렇게 생각했는데 뉴욕갈 때 마침 옆에 앉은 현지인에게 물어 보니 내 생각이 맞단다. 설원과 설산의 아름다운 경치를 배터지게 먹고 눈터지게 담고 보니 어제 저녁 지옥에 다녀온 그 추억을 깡그리 잊어 버렸다. 인간이 그 지겨운 오랜 시간을 살수 있는 이유는 단한가지 신으로부터 부여받은 축복인 “망각” 때문이란다. 잊어버림이 새로운 삶으로 나아가는 지름길이라는데 때로는 잊어 버려야 할 것들을 청산하지 못해 평생 가슴않이로 살아가는 사람도 있다는데……… 그렇게 살지는 않아야 하는데. 지금부터 겨울 아이슬랜드 백미를 사진으로 보여 주는데 조금 지겹더라도 인내를 가지고 보도록 해라. 그리고, 왼쪽윗부분 노란색 칠한 지역이 여름 경치의 백미라 하는데 언제 시간되면 여름에도 한번 가 봐야겠다.
도시를 벗어나 북쪽으로 올라 가는 길에 큰 호수가 있는데 뒷편에는 높은 구릉이 기차 고삐처럼 옆으로 길게 늘어서 있고 온통 눈을 뒤집어 쓰고 있다.
마침 호수 저편 산등성이 사이로 햇살이 반갑게 조금씩 얼굴을 내민다.
밥사발 엎어 놓는 것 같은 바위산이 막 솟아 오르는 아침햇살에 가린 구름밑에서 논다.
이런 바위산이 햇살을 받지 못하면 저런 푸른색끼가 많은 설산으로 변한다. 보기에도 을씨년스럽다. 해가 나오지 않으니 사진색도 거의 없다.
차가운 황량함뿐이다.
짓궂은 아침해가 겨우 한 쪽 눈만 살짝 떠 주어도 천지는 생명을 얻고 나른한 기지개를 켠다.
아침 햇살을 받은 설산이 세수하고 이뿌게 단장한 새악시같다.
흑과 백(EBONY & IVORY) – 영화제목이다.
EBONY & IVORY 2
차를 세우고 길위에 올라 저 산들을 바라보고 있으면 내가 산인지 산이 누군지 잠시 잊어 버린다. 왜냐하면 지금 이곳에는 산하고 나말고는 아무것도 없으니 누가 누군지 잊어버리고 잠시 착각에 빠진다는 이야기다. 때로는 저런 황량한 풍경에 반하여 내가 가야 할 길도 잊어 버리고 멍하니 산만 쳐다보고 앉아 있다가 문득 정신차려보면 지나는 바람소리만 남아 있을 뿐이다.
저산은 내게 우지마라 우지마라하고 발아래 젖은 계곡 첩첩산중
저 산은 내게 잊으라 잊어버리라하고 내가슴을 쓸어 내리네
아- 그러나 한줄기 바람처럼 살다 가고파 이산 저산
눈물 구름 몰고 다니는 떠도는 바람처럼
저산은 내게 내려가라 내려가라하네 지친 내 어깨를 떠미네
(양희은의 한계령)
옛날 화산지대라 풀한포기 나무 한그루 없고 까만 화산재만 굳어 있다.
모든 것들이 시간적으로 정지된듯이 얼어 붙어 있다.
사방팔방을 둘러봐도 끝이 보이지 않는다. 여기서 인간들이 손댄 곳이란 저 멀리 보이는 길뿐이다.
그 길외에는 그 누구도 발을 들여 놓지 못하는 금단의 구역같다. 문득 이런 생각도 든다. 만일 어디서 죽을 자리를 본다면 여기가 적격이다. 이런 곳에서 조용하게 천천히 내가 기억할 수 있는 모든 것들을 반추해 보고 그런 낱낱의 기억에 꼬리표를 달아 연처럼 하나씩 지나는 바람에 날려 보내기도 하고 한개비 남은 담배가 다 타들어가면 재마저 부서져 바람에 흩어지는 것처럼 내 몸도 그렇게 산산 조각으로 이리저리 흩어져 이 산 저 산 자락에 편안히 누워 이런 황량한 풍광을 아무런 댓가없이 가질 수 있고 찾을 이 없는 이런 적막강산에 울어 주는 새소리도 없는 것이 그야말로 절대적인 고립이 가져다 주는 진정한 평화와 안식을 누릴 수 있지 않을까.
이런 멋진 길은 얼마든지 달려도 좋다.
또 이런 화산지대를 만나는데 이번에는 분출되는 수증기량이 많다.
이런 지역에는 눈이 거의 녹아 시커먼 화산토만 보인다.
옛날에 분출된 분화구같다. 평평한 정상을 자세히 보면 동그란 분화구 형태가 희미하게나마 보인다. 제주도 성산 일출봉도 이런 모습이 아니던가.
구릉 사이로 김이 모락거리는데 더운 수증기가 근처의 바위들 색상도 변해 버리는 것 같다.
이건 사진책에서 자주 보는 FRAME 이 아닌지.
지금 내가 보여주는 장면은 내가 차타고 가면서 보고 있는 주요 SCENE을 순서대로 보여주고 있는거다.
위 사진하고 비슷한 구도인데…. 좀 식상하지?
여기도 증기기관차가 있구나. 보니까 저런 장치로 발전시설에 이용하는 것 같기도 하다.
이 부근이 화산지대로 관광지인 모양이다. 휴게소같은 곳에 저런 안내판도 있는데 오늘 관광객은
나홀로다. 부근에는 작은 분화구들이 여기 저기 흩어져 있고 호수와 바위산들이 잘 어우려저 있다.
이 산중에 호수가 있다. 아마도 옛적에 분출된 분화구에 물이 차서 형성된 것 같다.
매우 큰 분화구다. 해가 서서히 떨어지기 시작하니 빛이 약해 사진 해상도가 확연하게 떨어진다. 이럴때는 삼발이가 필요한데……
달과 6펜스. 내가 이 사진을 잡으면서 머리 속에 떠 오르는 제목이 달과 분화구가 아니고 달과 6펜스다. 영국 대문호 서머셋 모음의 소설제목인데 달은 예술가가 지향하는 정신세계를 대변하고 6펜스는 세속적인 물질주의를 상징한다. 소설 내용은 중년에 접어든 평범한 증권브로커가 그가 꿈꾸는 예술가(화가)가 되기 위해 안락한 삶과 풍족한 도시 생활과 가족을 버리고 가시밭보다 더 힘든 화가의 길로 들어 서는데 무명의 화가에게 돌아가는 삶이 어떠한지는 뻔한거다. 갖은 고생과 역경을 이기고 남태평양 타히티 섬으로 들어가서 타히티 원주민을 아내로 맞이하고 그림에 몰두하였지만 어려운 생활은 마찬가지였다. 그러다 결국 문둥병에 걸려 죽기 마지막까지 그림에 몰두하여 오두막집 벽에 최후의 대작을 그리고 숨을 거둔다. 그후 그가 죽은 후 그의 그림은 세상 사람들에게 인정받아 예술가로서의 명성을 얻을 수 있었다. 타히티섬 이야기가 나오니 언뜻 폴 고갱이 떠 오르는데 실제로 이 소설의 모티브가 폴 고갱의 생애를 참작해서 쓰여진 것으로 이 소설로 모음이 큰 명성을 얻었다고 한다.
폴 고갱(1848-1903)의 생애와 소설의 줄거리가 거의 일치한다. 단, 고갱은 프랑스 파리태생이고 소설의 주인공은 영국인이다. 고갱도 화가가 되기 전에는 증권거래소에서 풀타임으로 일하면서 그가 꿈꾸었던 화가로 입신하기 위해 시간나는대로 그림공부를 하여 요새말로 하면 국전에 입선하여 화가의 길로 들어 서는데 화가의 길이 세상이 자기를 알아주기 전까지는 피와 눈물로 얼룩지는 삶이라는 걸 잘 알기 때문에 요즘도 많은 부모는 자기 자식이 미대간다하면 말리는데 그 당시 고갱의 삶도 엄청나게 시련과 궁핍으로 생활했다고 한다. 처자와 헤어지고(이것도 소설스토리와 같다) 파리에서 그림그리면서 고흐와 만나 친분도 쌓지만 고갱에게는 특이하게 미개척의 땅에 대한 정열로 타히티 섬에 여행갔다가 남태평양의 색감과 타히티섬의 미개인들의 생활상이 마음에 들어 결국 타히티섬에 정착하여 그림에 몰두하는데 고갱도 소설 속의 주인공처럼 죽기전까지는 큰 명성을 얻지는 못하고 궁핍과 병과 싸우는 삶을 살았고 사후에 그의 그림이 인정받아 세잔느, 고흐와 함께 후기 인상파의 삼두마차로 이름을 남기게 된다. 고갱은 말년에 타히티 섬에서 좀 떨어진 도미니카섬으로 이주하여 그곳에서 생을 마감하게 된다.
(사족) 사진 속의 달 사이즈가 전체 구도에 비해 작다. 비뇨기과가서 확대수술을 받아야 하나?
작아도 내가 이번에 찍은 사진 중 젤 맘에 든다. 이 컷을 찍기 위해 차를 5번이나 세우고 찍었다.
오늘도 저물어 간다. 하루에 4-5시간정도 빛이 보이고 그 다음부터는 명부의 세계로 들어선다.
사진 감도를 최대한 올려 찍다보니 해상도가 많이 떨어질 수 밖에.(삼발이 타령)
한 폭의 파스텔화다. 실제로 파스텔로 칠하면 저런 색감이 나올 수 있을가?
달은 밝아지고 빛이 어두워 조리개가 크게 열리니까 달 형체가 뿌옇게 선명치가 않다.
여기까지가 둘째날 마지막 해 질때까지 고군분투하며 잡아 온 영상들이다.
(AKUREYRI 야경)
조금 더 달리니 아주 큰 도시가 물가에 있는데 밤야경이 산정호수에 비치는데 그것도 보기에는 일품이었다. 도시 이름이 AKUREYRI로 아이슬랜드 5대 도시에 드는 것 같다. 북부 해안가에 자리잡아 여름에는 주변 경치가 매우 뛰어 나다고 하는데 그것도 걍 다음으로 기약하고 여기서 하루를 접는다.-jh-